우리 상혁이에게는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별것 아닌 것에 나름대로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주말마다 걸려오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으면 온갖 잡다한 것 까지도 시시콜콜 보고를 하고
새로 배운 노래도 불러 드리고 하면서 재롱을 떨곤 했는데
가끔은 할머니가 '엄마는 뭐 하시니?' 물으시는지 그 때마다 들리는 상혁이의 대답은 한결같다.
"엄마는 요리하고 있어요."
^^;;
내가 밥을 하건 김치를 썰건 상혁이의 눈에는 이 엄마가 요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보다.
아마 할머니도 처음엔 우리가 꽤나 잘 해먹고 사는 줄로 아셨을것이나 가끔씩 서울로 올라 오셔서 진실을 알게 되시고는 그런 상혁이를 기특하고 귀엽게 봐 주셨다.
다른 식구들에게는 밥을 하는 아내이고 엄마였으나 우리 상혁이에게만은 날마다 요리를 해주는 근사한 엄마였다.
새로 산 일기장에다가는 이렇게 글씨도 또박또박 쓸 줄 아는 상혁이.
근데 글씨에 신경쓰느라 맞춤법에서 실수했단다.
그래도 괜찮아~.
이 글씨 정도면 명필 한 석봉의 엄마가 된 기분이라고 나도 녀석을 기분 좋게 해 준다.
이전 일기장에다가는 이렇게 썼었다.
꼬박꼬박 일기를 다 읽으시고 코멘트를 적어 주시는 선생님께 죄송하지도 않는지.......
앞으로 계속 글씨를 이쁘게 쓰면 크리스마스에 토마스 기차를 사주기로 했다.
선물하고픈 석봉이 엄마의 바램이 이루어지기를.
아이가 글씨만 제대로 써줘도 엄마는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니 자연 간식거리 하나에도 한가지 정성이 더 들어가게 마련.
이제까진 그저 북채에 칼집 넣고 소금,후추 뿌리고 버터위에 로즈마리잎을 몇개 따서 얹어주었을 뿐이었는데
이번엔 보태어 알미늄 호일을 감싸서 요리하는 엄마의 환상을 깨뜨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정도면 둘이서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아이들.
난 맛도 못 봤다. 아니 안 봤다.
자연스레 음식을 하다 보면 미리 질리게 되기도 하지만 별로 육식을 안 좋아하는게 그 이유이기도 하다.
닭다리를 잡으면서 하나가 "엄마는 안 드세요?"
"응,너희나 맛있게 먹어."
"왜요? 같이 드세요."
"실은........................... 독을 탔어."
"꽤애애액!!! 그래도 난 엄마가 넣은 사랑의 독이라면 먹을거야. ㅎㅎㅎ"
열심히 집어먹던 상혁이도 한 마디
"엄마가 안 드시니까 입맛이 안나네."
하나가 힐끗 쳐다보더니 얼른
"유상혁, 너 지금 6개 다 먹었거든?"
"아니~ 그냥 그렇다는 거지. ^^"
엄마가 올린 자신의 일기를 보고 부끄러워하는 상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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