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만도 여러 곳의 공연장엘 갔으나 늘 친구들이나 아이들과 함께였고 엄마랑은 이번 연극이 처음이다.
결혼 전엔 그래도 간혹 재미있는 공연은 함께 보러 다녔었고 내가 같이 가지 못하면 친구분들이나 이모들과의 자리를 마련해 드렸었는데 이번 연극은 나도 보고싶어서 함께 가기로 미리 약속을 잡아 놓았었는다.
시부모님이 떠나신 수요일.
마음같아선 보름동안 긴장속에 사느라 친정엄마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쉬고 싶었으나 남편의 강권으로 저녁 무렵 대학로로 향했다.
연골막이 끊어져 오랜동안 치료를 해서 겨우 다시 걷게 된 엄마.
위태위태 조심스러운 걸음을 옮기는 엄마는 어느새 내게 팔짱을 끼고 계셨다.
끼었다기보다는 서먹한 듯 살짝 얹은 엄마의 팔.
엄마와 나는 사이가 가까운 편이었는데도 성인이 되어서는 껴안는다거나 하는 신체적 접촉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돌아가신 할머니와는 퇴근 후 이불속으로 차가운 손을 넣어 녹이는 척하면서 젖가슴을 만지는 장난을 치고 얼굴도 부비고 입도 맞추었는데 그 때마다 더럽다고 외면하시면서도 웃음을 흘리셨던 모습이 생각난다.
어릴 적엔 엄마의 따뜻한 손에 내 손을 파묻고 힘차게 앞뒤로 흔들려지며 시장엘 다니던 기분좋은 추억이 있는데 자라면서 엄마와 거리가 생긴 것도 아니었건만 왜 엄마의 가슴속에 손을 넣거나 껴안을 생각은 어째서 안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엄마와의 이유(離乳)가 확실하게 이루어져서일까?
난 아직도 완전하게 독립하진 못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딸의 자살을 앞둔 모녀의 마지막 밤' 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룬 마샤 노먼의 연극 '잘자요, 엄마(원제: night mother)'를 우리 엄마는 어떻게 보셨을까?
공연이 끝난 후 엄마는 탤런트들은 모두 날씬한 줄 알았더니 나이는 어쩔 수가 없는가보다며 첫 감상을 얘기하셨다.
그리고 "저런 얘기는 흔한것 아니냐? 그런데 여기저기서 많이들 우는 것 같더라.
내 옆의 아가씨도 훌적 훌쩍 우는걸 보니 아마 환경이 비슷한가 봐." 라는 말로 나를 웃게 만드셨다.
연극은 기대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무대 왼쪽엔 유리창이 있는 평범한 거실,그리고 오른쪽엔 주방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으로는 제시의 방문이 보이고 이층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시계가 하나 걸렸다.
그 시계는 살아움직이는 시계였고 시계 바늘이 8시를 가리키자 되자 무대의 불이 꺼졌다.
불이 들어오면 여기저기 널부러진 뜨갯거리가 있는 거실 풍경이 들어오고 엄마인 델마는 소파에 발을 올리고 tv의 코미디 프로를 보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온 딸 제시는 태연하게 자살을 하겠다고 하고 엄마인 델마는 또 싱겁게 그러라고 응대를 하지만 곧 제시의 그 말이 농담이 아닌 것을 알아채고는 딸의 마음을 돌리려 하지만 제시는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고 대신 오늘 밤은 엄마와 나,둘만의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작되는 둘의 이야기,그 동안 꺼내놓지 못했던 가슴속 진실한 응어리들이 터져 나오는 시간이 8시 30분 부터이다.
시계가 9시를 넘어가면서 딸과 엄마의 이야기는 종말을 향해 가지만 "night mother." 후에 들리는 한 방의총성이 유난히 크게 들린다는 것 말고는 극에 별다른 클라이맥스가 없어서 좀 싱거웠다.
손숙씨와 서주희는 이미 연극무대에서 만났었기에 이번엔 나문희, 황정민조를 택했다.
나문희씨는 내가 좋아하는 큰 웃음을 가진 배우이지만 여기에서는 캐릭터 설정이 불분명해서 혼란스러웠다.
황정민이라는 배우는 처음 보는 배우이다.
하지만 연기가 참 섬세하고 사뿐한 몸놀림을 가진 배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헛갈려 했던 델마의 성격은 아마도 나의 개인적 추측과 달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델마는 간질이 있는 이혼녀 딸을 데리고 사는 엄마인데 내 눈엔 딸에게 의지해 사는 엄마로 보였다.
그래서 델마가 제시의 잠긴 방문을 두드리며 절규하는 "난 네가 내 것인 줄 알았어." 라는 마지막 대사는 공연 내내 가늘게 이어주고 있던 감정선을 한 번에 끊어 놓았다.
내가 제대로 본 것인지 잘못 이해한 것인지 손숙,서주희를 다시 한 번 봐야 할 것 같다.
공연 자체보다는 마지막에 무대 인사를 하는 두 배우의 포옹이 더 감동적이었다.
나도 언젠가 우리 엄마를 꼭 껴안고 한 마디 하고 싶은데 그 한 마디가 무엇이 될지 아직은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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