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만지기(children)

순수남.

hohoyaa 2011. 1. 24. 21:05

상혁이는 겨울에 태어났다.

상혁이가 태어난 그해 겨울에도 유난히 눈이 많이 왔었다.

 

 

신생아인 동생이 엄마와 집에 돌아왔어도 같이 놀아줄 이 없던 어린 하나는 눈이 많이 온 그 해 겨울,

아파트 광장에 쌓인 눈에 파묻혀 놀았다.

 

 

 

 상혁이는 어려서부터 장난감보다도 청소기를 더 잘 갖고 놀았다.

기어다닐 적에는 청소기를 만지고 올라타고 하더니 걸음마를 하면서부터는 자기가 청소를 하겠다고

우기기에 고사리같은 손에 쥐어 주었다가 청소기가 박살나기도 했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요즘에도 이 엄마가 피곤하다하면 팔도 주무르고, 어깨도 주무르고,

설겆이만이라도 자기를 믿고 맡겨주면 안되겠느냐고 은근히 투정하는 페미니스트이다.

어제 일요일엔 갑작스레 눈이 많이 쏟아지길래 상혁이더러 밖에 나가 놀라고 했다.

옆에서 하나는 애가 무슨 강아지도 아닌데 엄마는 왜 맨날 눈만 오면 상혁이를

밖으로 나가 뛰어놀라고 등을 떠다 미느냐고 한다.

내가 그랬나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상혁이는

눈이 오는 날을 좋아한다.

 

어제도 신이나서 나가놀다가 다시 들어와서는 빗자루를 찾는다.

우리 집밖에 있던 프라스틱빗자루는 누가 집어가서 없고 수수빗자루가 있는데

그걸로 눈장난을 하면 망가져서 다시 쓸 수가 없다고 했더니 난감한 표정이다.

빗자루없이 그냥 놀면 안되겠느냐고 했더니 상혁이는 자기가 놀려고 하는게 아니라

엄마의 돈을 아껴주려는 것이란다.

내 집앞 눈을 안쓸면 벌금을 물어야할테니 자기가 쓸어야 한다나~.

짐짓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빗자루대신 프라스틱쓰레받기라도 들려 내보내야겠더라.

 

 

 

부엌창문으로 내다보니 열심히 눈을 주워담고 있다.

 

 

한번 또 한번...

 

 

꾹꾹 눌러 다지기도 하고.

 

 

 

열심히 눈을 담아 나르다가 허리 한번 펴고 보니 눈이 끝도 없이 내리누나.

 

 

치워도 치워도 금세 다시 쌓이는 눈, 눈, 눈.

이 많은 눈을 언제 다 치울까?

 

 

한참이 지나고 빨갛게 언 볼과 얼어서 곱은 손으로 상혁이가 돌아왔다.

"실컷 놀았니?"

"아뇨. 제가 놀러나간게 아니라니까요. "

"아참 그렇지, 왜 벌써 들어왔어?  더 치우고 오지."

"내가 눈을 치우고 있는데 경비 아저씨가 야단치셔서 그냥 들어왔어."

"경비 아저씨가? 추운데 놀고 있으니까 집에 들어가라고 하셨나 보지."

"그게 아니고 난 끙끙대고 눈을 치우고 있는데 여기서 눈갖고 장난치면 안된다고 딴데 가서 놀으라고......"

"그럼 눈을 치우고 있다고 말씀드리지~."

"말대답한다고 기분나빠 하실까 봐 그냥 '네.' 그랬어."

"잘했어, 그정도 치웠으면 됐어."

아파트의 눈을 혼자 다 치울 작정을 했는지 중간에 쫒겨 들어온 것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홀로 눈치우는 유상혁군을 올 겨울 순수남으로 명하노라. ㅡㅡㅡ 눈의 여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