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모래같은 여자, 모래가 되어갈 남자.

hohoyaa 2010. 10. 12. 19:18

 

 

 

 

일본 작가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

 

파삭하고 형체가 없는 듯한 여자,모래로 만든 여자.

욕구도 없고 감정도 없고 희망도 없고 절망도 없는 여자,모래의 여자.

그녀가 사는 마을은 거대한 개미지옥이다.

함정을 파놓고 우연히 길을 지나던 무언가가 구멍속으로 빠져들면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도록

잡아 가두는 개미지옥.

 

난 늘 어긋난 길을 가곤했다.

내가 살아온 길이 그렇고 세상을 보는 눈과 내가 읽는 책의 관점도 그렇다.

젊은 시절 아니 더 어린 시절에도 엄마는 곧잘 내가 시한폭탄같다고도 하셨었다.

가슴속에서 울렁이는 실체모를 욕망, 헛된 욕망.

지쳐서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있는 높은 이상. 엄마는 그것을 알아 보았다.

 

이 모래의 여자를 읽으면서

단조로운 생활에 염증을 내다가 한두번 높이뛰기를 시도해 보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리벽-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편 내 스스로의 합리화를 위한 방편으로 만든-에 부딪혀 곧 언제 그랬냐는 듯 환경에 적응해 버리는 내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무엇인가를 나는 늘 고대했다. 

개미지옥처럼 깊은 수렁을 만들어놓고 무엇이든 걸려 들어 나의 평이한 생활에 금이 가도록 도와줄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기에.

 

젊음을 소형비행기 조종석에 앉은 파일럿의 머플러처럼 마구잡이로 흐트려 날리다가

이제는 육지에 안착했다고 믿고싶은 중년의 나이에 문득 내가 그 모래사구에서 파삭하게 살아가는

모래의 여인은 아니었나 되돌아본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내가 이렇게 허물어졌다고

내가 원래 이렇게 메마른 여자는 아니었다고

나는 결혼의 늪에 빠진 다른 여자와 다를게 없다고 늘 변명했지만

실체를 알고보면 나의 늪-개미지옥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삶은 다름아닌 남편이었다.

 

처음 남편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나와 충돌도 많이 했다.

자신의 합리적인 세상으로 나를 인도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했다.

가르치려고도 했고 이해시키려고도 했으며 때로는 윽박지르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모래 구덩이에서 물을 발견한 남자처럼 남편 역시 나의 개미지옥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은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남편이 발견한 물, 그것은 내가 블로그를 통해 세상을 만나는 빈약한 숨소리가

대기중에서 화학작용을 일으킨 것일지도 모르겠다.

좁다면 좁은 세상,모래 구덩이 안에서 두사람은 각자 자신이 주체적인 삶을 산다고 위안하며

이제는 그 모래구덩이가 더욱 안전하도록 물을 주며 다지고 있는 우리의 삶이다.

 

우스운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도 주인공 남자는 새마을 지도자가 되어

물을 모아서 우물을 만들고 자신의 과학지식을 동원해 모래로 실리콘을 만들어

모래 구덩이를 개미집처럼 확장하지는 않았을런지.

 

 


모래의 여자(세계문학전집 55)

저자
아베 코보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1-11-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요미우리 문학상,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 수상작. 곤충 채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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