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만지기(children)

난 짐승남이 좋다.

hohoyaa 2010. 4. 21. 19:10

사춘기라지만 아니 사춘기라서 더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알아주고 이해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하나는 수시로 문자를 보내 온다.

학교에 가는 동안에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간에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기분이 어떤지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또는 배고프니 뭔가 먹을게 있느냐는둥 여러가지를 써서 보내온다.

 

어느 날,내 핸드폰을 갖고 이리저리 만져보던 상혁이가 샐쭉해진다.

이유인즉슨 엄마가 누나와는 문자를 많이 한다고 자기가 전화하면 맨날 알았으니까 끊으라고 하더니 누나랑은 주고받고 주고받고 아예 통화목록에 누나만 있다고 그 화면을 보여 준다.

그리고 언제부터 누나이름을 사랑하는 딸로 바꾸었느냐고 자기는 이름만 덩그러이 적어 놓고 누나한테는 하트도 달아주었다고 짐짓 투정을 부린다.

 

 

에고~ 녀석아. 이건 누나가 바꾼거지 엄마가 바꾼게 아니야. 

그리고 누나가 문자를 보내오면 엄마가 답신을 줘야하는 그런 내용이라 엄마도 문자를 보낸것이고

네가 집에 오는 길에 전화하는 내용은 집에서도 엄마와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니까 끊고 부지런히 오라는 것이지. 네가 괜히 전화통화에 신경쓰다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서 엄마가 얼마나 걱정인데.

 

그랬더니 상혁이는 자기도 이름을 바꾸겠단다.

그리고는 내게 전화기를 들려준다. 누가 찍히는지 보라고.

 

 

엥?? 방실이? 아무리 잘 웃어도 그렇지 남자애가 무슨 방실이?

벙글이가 낫겠다.

 

상혁이는 그런가?하면서 다시 바꾼다.

 

 

이번엔 짐승남.

나, 뒤집어졌다.

짐승남의 분위기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녀석이 여친도 아닌 엄마 전화번호부에 짐승남이라는 자취를 남기다니.

하나에게도,남편에게도 내게는 짐승남이 전화를 한다고 했더니 누군지 궁금해하다가 실체가 상혁이임을 알고서는 모두 웃어버렸다.

 

 

오늘 일기예보에는 저녁에 비가 온다고 했었다.

우산을 가져갈까 말까 망설이다 별로 늦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나갔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 액정을 보니 짐승남이다.

"어흥(이건 짐승남에게 보내는 엄마의 포효소리)~~!!"

"ㅎㅎㅎ 엄마, 거기 어디에요?"

"왜? 지금 들어가는 길이야.넌 태권도 안갔니?"

"엄마,엄마 우산 안갖고 나가셨죠?" 통화하는 와중에 문을 여닫는 소리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상혁아,비도 별로 안오고 엄마옷에 모자가 달려서 괜찮으니까 그냥 집에 있어."

"엄마,지금 어디에요?"

"엄마 지금 롯데마트를 지났어. 넌 그냥 집에 있어."

"아니에요. 제가 우산갖고 나갈게요."

"괜찮다니까....... 태권도는 갔다 왔니?"

"엄마 모셔다 드리고 가면 되요."

"에구....... 괜찮은데...(이 정도면 짐승남의 고집이 절대 꺾이지 않을 것이니 내가 포기하고 말지.)그러면 버스 정류장앞 마트있는데서 기다려."

"엄마, 저 지금 버스내리는 곳에 있어요.그러니까 마트쪽으로 가지 말고 제가 있는 정류장으로 오세요." 

상혁이가 우산을 들고 나와 있는 것을 알아서인지 그 동안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퇴근길에 비까지 오니 버스가 막히고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상혁이를 생각하니 태권도 시간에 맞추지 못할까 걱정이 되기도 하다가 비오는 날 엄마가 우산들고 학교앞에서 기다리면 아이들의 마음이 이렇게 푸근하겠구나 싶은게 지난 날 직장에 다니느라 우산들고 아이들 학교앞에 가본 적이 없는 이 엄마는 뒤늦은 자책을 하게 된다.

엉금엉금 기어서 버스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상혁이의 파란 점퍼가 눈에 들어온다.

엄마가 비에 젖을까 냉큼 앞으로 나온 것이다.

그런 상혁이를 보니 고맙고 듬직해서 절로 어깨에 팔을 두르게 된다.

녀석,우산을 두개 들고 나오면 될 것을 하나만 들고나오더니 이 엄마를 우산속으로 끌어당기느라 허리를 자기쪽으로 당기는 품새가  영낙없는 짐승남의 터프함이다.

"엄마는 괜찮으니까 이제 너는 도장에 가봐라."

"아니에요,엄마 비맞으면 안되니까 제가 모셔다 드리고 갈께요.도장은 조금 늦어도 되요."

"가까운 거리니까 엄마가 모자쓰고 뛰면 되. 넌 그냥 태권도에 가."

"안 돼요.그러면 엄마, 아빠 되요.(아빠처럼 대머리가 된다는 말이다.)"

"하하 그래? 아빠가 둘이면 좋지 뭐~."

"아무리... 아빠가 둘인 것보다는 그래도 엄마가 한 명쯤은 있는게 낫지."

그렇게 나의 짐승남은 결국 아파트 현관앞에까지 나를 에스코트해주고 자기 갈 길로 떠났다.

 

내 곁에 있는 한 짐승남, tv속 열 짐승남 안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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