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지기(feeling)

돼지엄마와 대왕대비마마

hohoyaa 2008. 12. 1. 12:33

중학교에 입학해서 즐겁게 일 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고 보니 슬슬 성적이 걱정되는 우리 딸.

더구나 이번에 짝꿍이 된 남자애가 수학 영재라면서 한 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한 편으론 모르는 수학 문제를 물어 보면 되겠다고 좋아했었다.

1학년 때는 맨날 친구 문제로 울고 불고 하더니 전교 1,2등을 다투는 아이들이 있는 반에 배정이 되고나니까 자연 관심사도 공부쪽으로 기운다.

이제껏 우리 부부는 하나의 시험 성적표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다.

그저 맑고 밝고 건강하게 중학교 3년을 지내고 남들 다 가는 평범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또 대학은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가면 좋겠다는 뜬구름 잡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나 역시 늘 편하게 집에서 공부하고 시험 전날에도 9시면 잠을 자야하는 습관때문에 큰 욕심을 내질 못했었다.

 

2학년 중간 고사를 치르고 온 하나는 자기가 반에서 *등이라며 잘한건지 못한건지 이 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에 그 정도면 잘하는 것 같아서 "네가 그 정도로 공부를 잘 했었니?" 하고 되물었다.

하나는 성적표에 등수가 안나오기에 원래 그런 것인 줄 알고 선생님께 여쭤 볼 생각도 못했는데 자기 반에서 1등하는 아이가 궁금해서 "하나는 몇 등정도 해요?"라며 선생님께 하나의 등수를 여쭈어 보았고 그 결과를 하나에게 알려 주었다고 한다.

"어? 등수가 나오긴 나오는 거였어?"

"엄마, 다른 엄마들은 선생님께 전화로 물어 본대요. 엄마가 안 해서 그렇지."

"뭐 그런다고 달라지는게 있겠어? 공부는 너하기 나름인데.넌 엄마가 그렇게 관심갖고 물어 봤음 좋겠어?"

"심하면 안 좋지. 근데 엄마 나 고등학교 어디로 가요?"

"글쎄...선생님이 알아서 해 주시지 않을까?"

"오늘 수업시간에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대해 얘길 하는데 내가 그냥 일반 고등학교에 간다니까 옆에 있던 짝꿍 J가 날더러 너 정도면 ㅇㅇ고에 갈 수 있는데 왜 일반 고등학교에 가느냐고 하더라구요."

"ㅇㅇ고? 그런 학교도 있니?"

"그런가 봐. 엄마도 그 학교 몰라요? 내 짝 J네 엄마는 돼지 엄만데 걔는 상산고 간대."

"뭐??? 돼지 엄마? 몸이 좀 뚱뚱하신가? 아니면 학교에 간식을 많이 넣어 주는 엄마야?"

"아이고~~ 참! 우리 엄마는 못 말려. 엄마, 정말 돼지 엄마가 어떤 엄만지 몰라요?"

"글쎄 돼지 엄마라. 아이를 많이 낳아서 자녀 교육에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입시 정보를 꿰뚫고 있는 발빠른 엄마를 부르는 말이래요. 그래서 걔는 초등학교부터 수학영재 교육을 받았대요."

"그래? 상산고가 어디에 있는 학교야?"

"전주에 있대나 봐."

"그럼 걔네 집이 전주야? 지금 서울에 유학 와 있는거야?"
"아니, 그 학교가 수학 영재를 받는 학교래. 그래서 걔는 국어나 다른 과목 점수는 좀 낮아도 수학은 만점이야."

"그으래? 그럼 걔는 수학 영재란 말이지. 좋겠다. 수학을 잘해서.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너는 명랑 영재, 국어 영재잖아. 그런 영재 받아주는 학교는 없대니?"

"ㅎㅎㅎㅎ엄마도. 난 영재학원도 안 다녔는데 뭐.내 짝 J 는 이미 초등학교부터 유명 사립 다니면서 준비했다던데? 게다가 초등학교부터 학원도 다니고.걔네 엄마가 돼지 엄마라 그렇게 미리 미리 알아서 다 준비시켰대."

"그럼 나는 뭐지? 느릿느릿 거북이 엄만가? ^^:"

"엄마는 어쩜 공룡엄마일지도 몰라.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구 시대의..ㅋㅋㅋㅋㅋ"

그제서야 뒤늦게 인터넷을 뒤져 보고 조카가 늘 얘기하던 자사고에 상산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상산고는 학창시절 내 책꽂이에 늘 꽂혀 있었던 수학 정석의 저자 홍성대 선생이 세운 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그 수학 영재로부터 고무적인 말을 듣고 자신의 등수를 자각하게 된 하나는 자기에게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목표가 생기긴 했다.

 

결혼을 늦게한 나는 하나의 친구 부모님들과는 그래도 나이 차이가 심하진 않은데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상혁이와 비교를 해보면 내 나이가 확실히 많긴 많은 나이이다.

어느 날 상혁이는 학교에서 돌아 와 현관문을 열며 "대왕대비마마. 다녀 왔습니다." 했다.

난 또 누구 흉내를 내는가 싶어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엄마 나이를 얘기하는데 한 아이가 자기 엄마 나이를 말하자 아이들이 왕비마마라고 했고 또 다른 아이의 엄마에게는 대비마마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혁이는 속으로 '우리 엄마는 더 많은데.......' 하면서 나이를 대니까 아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대왕대비마마'라고 했다며 싱글벙글이다.

하나는 초등학교 때 아이들과 엄마 나이 얘기가 나오면 "그냥 너네 엄마랑 비슷해." 라는 말로 위기를 모면했고 상혁이는 "엄마 나이가 많아서 일찍 돌아가실까 봐 걱정이에요. 엄마 오래 오래 살아야 해요." 하면서 눈물바람이었는데 모처럼 나이 많은 엄마 덕에 친구들에게 인사를 받고 나니 어깨가 으쓱했는가 보다.

 

요즘 누나가 학원엘 다니는 바람에 얼굴도 제대로 마주치질 못하는데 상혁이는 은근히 그게 부러운 눈치다.

그래서 틈만 나면 자기도 수학 학원에 보내 달라며 동네 어귀에 있는 학원의 안내장을 주워 오기도 하고 누나가 다니는 학원에 같이 다니면 안되느냐고 조르기도 한다.

그 때마다 초등학생은 학원 안 다녀도 된다고 아무리 이해를 시켜도 상혁이는 누나가 마냥 부러운가 보다.

하나 역시 상혁이에게 "누나도 초등학생일 때는 학원 안다니고 실컷 놀기만 했어.그랬더니 지금 공부하는게 너무 재미있는 것 있지.그러니까 너도 실컷 놀아.나중에 못 놀았다고 후회하지 말고."

하나의 짝 J네 엄마라면 지금 이 시기의 귀한 아들에게 미래의 비젼을 제시하고 공부를 시켜야하는데 고루한 대왕대비마마인 나는 그저 아이가 안쓰럽고 애틋해서 품안에 안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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