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만지기(children)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hohoyaa 2008. 11. 26. 19:59

 

 

상혁이는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늘 선생님께로 먼저 간다.

운동장에서 놀다가 가방을 잃어버리거나 버스 카드를 잃어버렸을 적에도 선생님께 먼저 가서 도움을 청한다.

선생님이 주신 500원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와 다음 날 아침에 선생님께 갖다 드릴 500원을 확실하게 챙긴다.

학교가 파했다고 전화를 해야 할텐데 핸드폰의 배터리가 방전되었으면 선생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내 가슴을 쓸어내리게도 했다.

학부형인 나는 선생님의 전화번호가 뜨면 심장부터 뛰는 새가슴인데 상혁이는 선생님이 빌려 주셨다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했다.

 

 

요 산만한 녀석은 학교 준비물을 잘 몰라도 선생님께 문자를 쳤다.

내가 알기에 아직 어린 딸이 있는 꽤 바쁜 직장맘이신 선생님은 시간에 관계없이 즉시 답장을 주셨다.

 

지난 빼빼로 데이에는 상혁이가 운동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서 버리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5학년 형아가 보더니 땅거지라고 놀렸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분이 난 상혁이는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서 일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며(여기서 밝혀야 할 것. 상혁이는 말이 빠르지도 않고 나름대로 차분하게 조목조목 설명을 하는데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절대 그 이야길 끝까지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집에선 늘 상혁이가 말을 시작하면 모두들 긴장이 되고, 이 이야기가 언제 끝날까하면서 꾹 참고 참았다가 종국에는 알았으니까 결론이 뭔데?하며 중간에 끊기가 일쑤고 상혁이는 늘 그게 불만이란다.) 어떤 형아가 나쁜 말을 한다고 했더니 선생님게서는 그러냐고, 이름이 무언지 아느냐고 물으시는데 잘 모르겠기도 하고 또 선생님이 좀 바쁘신 것 같아 일단 전화를 끊고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그 형아를 만났는데 이름표를 보았단다.

순간 반짝하던 상혁이.

 

얼른 선생님께 문자를 쳤단다.

 

답장.

 

 

상혁이는 자기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고 늘 답을 주시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2학년이 되어 학부모 면담에도 못 갔었는데 다른 일로 학교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선생님은 상혁이를 칭찬해 주셨다.

요즘 아이들은 거두절미하고 단문으로 얘길 하는 바람에 무슨 얘긴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상혁이는 차근차근 처음부터 이야길 한다고 그 점이 좋은 점이라고, 이 엄마가 듣기 좋은 이야길 해 주셨다.

또 상혁이가 1학기 내내 칠판 지우는 당번의 임무를 너무 잘 해주고 있다고 덧붙여 이야길 해 주셨다.

칠판 지우는 당번을 자원해서 하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처음에는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하면서도 약속이 지켜지질 않아 힘들었는데 상혁이가 그 일을 맡고 부터는 얼마나 성실하게 잘 하는지 1학기 동안 계속하고 있다고,책임감이 강한 아이라 하셨다.

녀석~! 청소 당번이 그렇게나 좋은지. ^^;;

나중에 상혁이에게 물어보니 교실 이동 수업에도 칠판을 지우고 가느라 늘 헐레벌떡하면서도 자기는 그 일이 너무 재미있고 좋단다.

2학기가 되고 당번이 바뀌어 상혁이는 자기가 좋아하던 그 자리에서 그만 내려와야 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은 잘 하고 있어?”

“아뇨~! 쉬는 시간에 칠판은 안 지우고 놀거나 여자 애들은 자기 친구랑 얘기만 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나가서 지웠지.”

“풋. 넌 그게 그렇게도 좋아? 귀찮지도 않니?”

“아뇨? 난 좋은데. 난 더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하셔서 할 수 없이 가만히 있지만 그래도 가끔씩 내가 나가서 지워. 그러면서 당번한테 칠판도 안 지우고 뭐하냐고 하면 애들이 나와서 같이 지우기도 하고.”

그렇게나 속절없는 상혁이.

정작 선생님은 이런 일로 상혁이에게 대놓고 칭찬하진 않으셨으나 상혁이는 어떻게든 선생님을 도와 드리고 싶어 열심히 지우고 또 지우고 했단다.

 

선생님께 칭찬받는 걸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흥분된 목소리가 들리면 그 날은 선생님께 칭찬을 들어 상으로 비타민을 받아오는 것이 틀림없다.

나도 칭찬을 많이 해서 우리 아이들을 춤추게 만들어야 하는데.......

옆에서 슬쩍 엿보던 상혁이는 내게

"엄마, 그러니까 아무리 칭찬할 게 없어도 억지로라도 칭찬을 해 주세요. 그래야 우리가 더 잘하죠. "

요즈음 내 블로그는 상혁이에게 올인하는 분위기.

하나야, 오해 하지마. 그저 돌아 다니는 사진을 정리한 것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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