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하였으나 하나 아빠의 공연스케쥴 때문에 아이들은 별하는 일 없이 하루 하루를 보냈다.
상혁이는 날마다 태권도장에 가서 딱지치기에 열심이고 하나는 늦으막히 일어나 빈둥거리며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다가 읽겠다고 사 놓은 책은 보지도 않고 상혁이 앞으로 사 준 책들을 뺏어 읽으며 키득거린다.
하루종일 같이 있다 보니 아침에 제 때 안 일어나거나 여기저기 다니면서 어질러 놓는 통에 나는 절로 짜증이 나고 날씨 탓만 한다.
방학을 하면 데려 가려고 했던 곳이 많았으나 날이 너무 더워서 아이들 역시 꼼짝하길 싫어하고 하나는 어서 방학이 끝나 학교에 갔으면 싶다더니 불현듯 목포에 다녀 오면 어떠냐고 묻는다.
방학 전부터 할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되면 언제 방학을 하느냐,방학을 하면 놀러 오라는 할아버지 말씀이 마음에 걸린단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 뵈어야 할것 같단다.
순간 무엇인가 내 마음을 쿵하고 울린다.
며칠 전에도 두 분이 상경하실 날짜를 잡았다가 어머님 건강이 안 좋으셔서 취소가 되질 않았던가.
그렇다면 당장 찾아 뵙고 안부를 여쭈어야 할텐데 나는 날도 덥고, 우리가 안 가는게 두 분뿐 아니라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시는 큰 형님을 도와드리는 일이다 싶기도 하고 일단 남편이 시간 내기가 힘들다는 핑계로 불편한 자리에 편하게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만 내려 보내기에도 그렇고 남편 없이 우리 셋이서만 목포로 갔다.
밑반찬이며 몇가지 반찬을 만들고 깐풍기 용으로 닭 3마리 분량을 사서 뼈를 발라내고 떠나는 날 아침에 미리 튀겼다.
소스를 만들어 담으며 어쩌다 한 번 이렇게 수선을 떠는 막내 며느리는 늘 부모님 곁에서 한 집안의 맏며느리 노릇을 톡톡이 하고 계신 큰 형님께 죄송스러웠다.
목포행 KTX 출발을 기다리며.
고향이 서울인 나는 늘 기차에 대한 향수가 있다.
수학 여행 때 난생 처음 기차를 타 보고 상상으로만 했었던 기차 여행에의 환상은 깨져 버렸으나 여전히 기차역은 흥분되는 곳이다.
셋이 가면서 4인용 좌석을 예약했더니 그나마 자리가 편하다.
새마을호보다도 못한 고속철도.
누나가 책을 꺼내니 상혁이도 덩달아~.
책을 얼마나 읽겠다고 집을 떠날 때마다 너무 많이 챙겨 가려고 해서 이번에도 딱 2권으로 제한했다.
셋이서 조용하게 책을 읽으며 가는 여행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도시락을 먹고 희희낙낙 놀다가 그래도 명색이 기차 여행이니 삶은 계란 한개씩은 사 먹어야 할 것 아니냐는 하나의 말에 카트를 세웠다.
그러나 고속철도에는 삶은 계란이 없네.
대신 군것질 거리 약간을 사서 조촐한 기차여행의 기쁨을 누리게 해 본다.
우리 구염둥이와 한 장.
하나야, 네 책은 너무 두꺼워 ...
자리만 차지하고 ...
역에는 큰 엄마가 나와 계셨다.
반겨줄 이가 있는 곳. 그 곳이 고향이다.
목포 본가에 도착해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엄마도 함께.
<목포 해양 축제>
저녁을 먹고 큰 엄마와 함께 하당으로 갔다.
몇 년전에 와 본 곳이었는데 그 풍경이 사뭇 달라져 있었다.
목포의 명물 갓바위에 설치한 교각과 조명으로 인해 그 일대가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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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야시장인줄로만 여겼었는데 특이하게도 세계 각국의 토산품과 먹거리 그리고 능숙한 한국어로 농담을 하며 물건을 팔고 있는 외국인을 보니 해양 축제가 다시 보인다.
나중에 거리를 활보하는 외국인중 '000대사관' 이라는 표찰을 단 이들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목포시와 각국 대사관에서 후원을 하는지....
시끄럽고 술판이 벌어지는 야시장과는 달리 시간이 늦으면 문을 닫고 다음을 기약하는 뒤가 깨끗한 풍물시장이 좋았다.
우리 어렸을 적엔 이런 모자를 베트콩 모자라고 했었는데.
누나가 한마디 했는지 표정에 살짝 원망이 깃들어 있다.
으흠~! 좋아.
밀림으로 출발!
하당의 큰 집에서 자고 아침에 다시 목포시내로 오는 길.
일부러 구경시켜 주신 여객 터미널이다.
여기에서 제주로 가는 씨월드호가 뜬단다.
목포에 갈때마다 늘 살뜰하게 챙겨 주시는 다정하신 큰 엄마 .
내가 시집가서 처음 맞는 추석에도 친정 엄마 보고 싶을거라며 전화하라고 챙겨 주신 '친정엄마'같은 형님이시고 아이들이 커가면서는 아이들에게 그 사랑을 나눠 주셔서 아이들도 큰 엄마를 엄청 좋아한다.
서울 산다고 맞벌이 한다고 제대로 하는 것도 없이 손님 노릇만 하고 오는 막내 동서를 늘 너그럽게 감싸주시는 큰 형님.
이번에도 우리 오면 봉숭아 물 들여주시겠다고 준비해 놓고 계셨다.
손이 기름하니 이쁜 하나는 열손가락 모두에 손가락이 짧아 오종종한 내손가락엔 양쪽에 2개씩 애교 물을 들였다.
울 친정 엄마께서는 큰 형님이 시어머님 맞잡이라며 끝까지 어른으로 섬기라 하셨는데 그 이전에 이미
형님께 많은 은혜를 입어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 한다.
큰 형님이 계셔서 명절에도 시댁 가는 길은 두렵지 않다.
상혁아, 우리 나중에 저 배타고 제주도 가자~.
침대칸도 있다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같이 가는거야. 재미있겠지? *^^*
<돌아 오는 길>
손자 손을 잡고 걸으시는 아버님.
어디서 저런게 나왔을꼬? 하시며 대견해서 바라보시던 손주가 벌써 이만큼 자라 할아버지와 함께 말동무를 하며 걷는다.
상혁이는 할아버지와 헤어지는게 싫은가 보다.
86세이신 아버님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유달산을 오르신다.
웬만한 젊은 것(?)들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당당하시고 우리 집안의 버팀목이시니 그 그늘아래 쉬었다 가는 짧기만 한 시간이 상혁이는 못내 아쉬운 것이다.
때아닌 몸살감기로 배도 못타고 ......ㅜㅡ;
할아버지가 그렇게 태워주고 싶으셨던 외달도 가는 배는 하나가 아픈 바람에 취소하고 집안에만 있었다.
하나는 자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서운하셨을거라며 걱정이 많다.
자신의 몸보다도 할아버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릴 정도로 컸구나, 우리 하나.
누나가 아파하니까 자기도 너무 추워서 감기 걸리겠다고 해서 손수건 2장으로 팔을 가릴 수 있게 약식 케이프를 만들어 주었더니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한 상혁이.
큰엄마가 역까지 들고 나와 건네주신 과자를 한두 개씩 거내 먹는 재미로 서울을 가겠지.
큰엄마 고맙습니다. ^^
상혁이도 몸이 안 좋긴 안 좋은가 보다.
내무릎에 머리를 대게 해 주었더니 한참을 잤다.
서울까지 잤다.
하나는 기절직전이다.
엄마는 갖고 간 책을 다 읽고 따로 할 일이 없으니 이렇게 프라이버시 침해하는 사진만 찍고 있다.
싱그런 여름 들판.
회색 콘크리트 사이를 통과하는 자동차 여행과는 그 배경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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