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사람을 닮은 집,세상을 담은 집-서윤영

hohoyaa 2012. 6. 11. 17:26

**마당을 꿈구며

 

한평의 땅이 생긴다면 오밀조밀 텃밭을 일구고 싶다.

그 이상의 땅이 생긴다면 작은 오두막이나마 나의 집을 짓고싶다.

 

70년대 아파트 건설붐이 불면서 비교적 일찍부터 아파트생활을 해오던 서울내기 나에게는 땅냄새가 늘 그리운 냄새로 남아있다. 비오는 날 흙이 패이는 마당대신 검은 아스팔트가 더 짙은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아온 탓인지 자동차여행을 할 적에도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를 좋아한다.

고속도로를 따라 여행을 하다보면 지방 어느 도시나 모두 비슷비슷한 모양의 아파트가 도로변에 들어선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는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곳이 전라도인지 경상도인지 어촌인지 산촌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좀더 느릿한 국도를 택하면 개발이 덜된 중소도시의 속살을 만날 수가 있다.

강원도의 돌길,충청도의 갯내음,남도의 황톳길,파란 하늘만큼이나 청량한 동해의 파도소리....... 

인적드문 길을 가다가 맞닥뜨리게되는 마을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논밭의 형상은 또 얼마나 다채로운지.

더하여 그런 동네는 저녁시간에 지나고 싶다. 운이 닿으면 어스름 땅거미위로 뽀얗게 피어나는 밥짓는 연기를 볼 수도 있기때문이다.

그렇듯이 내가 좋아하고 실제로 보았던 집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작은마을인데  머릿속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지었다가 허물었던 나의 집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내가 보아왔던 서양영화속의 한장면이었거나 소설책에서 묘사된 내용이 비현실적으로 시각화가 이루어져 실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추상적인 집의 모습에 그치고 만다.

 

집은 모름지기 집주인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그야말로 집주인을 닮은 집이어야하는데 그만큼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집이란 곧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대변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유독 유행에 민감하다.

집도 예외가 아니라서 시대에 따라 우리의 주거문화도 많은 변화를 겪었고 좁은 땅에 살다보니 집이 곧 권력이고 같은 아파트라도 평수에 따라 혹은 층수에 따라 집주인의 능력을 말해준다.

그리고 부동산은 곧 투자로 이어지므로 당장은 집을 사면서도 나중에 되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에 가장 일반적인 좋은 집의 조건을 충족시키려 애를 쓴다.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즈음에 건축으로 전과를 하여 이미 몇권의 책을 세상에 낸 건축학도 서윤영이 쓴 '사람을 닮은 집,세상을 담은 집'은 일반적인 겉포장이 화려한 집이야기가 아니라 동서고금의 건축물을 횡적으로 종적으로 아우르며 집속에 담긴 시대상과 인간의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거양식이 근대화되고 대다수의 국민이 아파트에 살게되면서 가장 공을 들이는 공간이 주방이 되어 모델하우스 구경을 하다보면 누구나 주방에서 오랜동안 서성이게 된다.

명칭도 세월을 따라 부엌이라는 말대신 입식부엌, 그에 한걸음 더 나아가 주방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갖게되었지만 실은 오히려  난방과 취사 두가지 주요기능을 지녔던 부엌이 취사라는 한가지 기능만을 강조하는 주방으로 위상이 격하된 것이라 한다.

 

책을 읽으면서 주방과 함께 으뜸공간 마당에 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생활의 편리함은 차치하고라도 마당의 위상은 생각보다 높은 것이었음을 알게되었다.

흔히 어른들이 아파트를 싫어하는 이유중 하나는 마당이 없어서였다.  혼례나 장례에 이르기까지 집안대소사가 모두 마당에서 이루어졌고 하물며 왕의 즉위식이나 세자책봉식등 국가적인 행사역시 근정전 앞마당에서 이루어졌으니 당연히 마당이 집안의 으뜸공간이랄 수 있겠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침조례나 입학식,졸업식을 하던 학교 앞마당-운동장도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전천후 강당이 들어서는 바람에 그역할이 축소되었다.

 

더불어 아파트에서는 주부의 핵심공간인 주방과 마주한 가장 가까운 공간인 거실이 마루겸 마당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데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된 그  이면에는 바로 이런 공간들의 기능축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방이 현대화되고 tv에 보이는 것처럼 세련된 주방의 멋진여성이 되고 싶은 주부에게 마주보이는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시부모의 존재는 자신의 위치를 절감케하는 부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파트를 싫어하셨던 어른들도 그런 위기감을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고보면 중정(中庭)이라는 마당이 지닌 고유의 가치는 실내공간을 음으로 보고 마당을 양으로 보아 음양의 조화를 이끌어낸 풍수지리학적 의미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세대와 세대간 소통의 장이었으며 갈등의 완충지대로써의 역할에 있었을 것이다.

현대의 집은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다보니 그런 공간이 절로 없어져버렸고 결국에는 소통의 장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마당이 지닌 가치는 하늘을 양껏 들여놓을 수 있었던만큼이나 큰 것이었음을 마당을 잃어버린 지금에서야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집이라는 공간을 건축학적으로만 바라보던 시야가 조금은 다양해지고 넓어졌음에,

오랜만에 좋은 책을 접하게 되어 책읽는 즐거움을 만끽하였음에 후기를 남긴다.

나중에 집을 짓게 되면 가족구성원들의 개성과 동선을 고려한 실내공간도 중요하고 좋은 먹거리를 위한 텃밭도 중요하지만 눈길 머무는데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그런 마당을 만들고 싶다.

 

 

 


사람을 닮은 집 세상을 담은 집

저자
서윤영 지음
출판사
서해문집 | 2012-04-30 출간
카테고리
기술/공학
책소개
집의 역사에 얽힌 인간 개인의 욕망을 분석하다!사회를 비추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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