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벼르던 '블랙스완'을 보고 왔다.
영화가 끝나고 객석에 앉아 무언가 가슴속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지난 겨울 보았던 '윈터스 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늘 영화를 보러가기 전에 포스터와 제목만으로 미루어 영화를 짐작해 보곤한다.
하지만 '윈터스 본'이라니.......'겨울의 뼈'라고 하기엔 대놓고 직접적인 제목이 아닌가 싶어
그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다가 하나에게 어떤 영화일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다.
바쁘게 등교준비를 하던 하나는 무심하게 책상위의 mp3를 챙기며
"윈터스 본? 겨울의뼈? 아마도 주인공에게 시련이 닥치는 영화인가 보지?" 했다.
아! 그래. 그렇겠구나.
윈터스 본이 아직 상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 흥행은 별로 안된 것 같다.
영화는 내내 진지하다.
아버지가 사라지고 어린 두 동생과 엄마와 함께 남겨진 주인공 리. 리의 엄마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기에 실질적인 가장은 17살 소녀인 '리 돌리'이다.
온 세상에 맞서는 것보다도 폐쇄적인 작은 마을 전체에 맞서는 것이 더욱 힘든 법이다.
여주인공 제니퍼는 그 무표정하고 경직된 얼굴로 사춘기 소녀가장의 연기를 잘 해냈다.
영화의 초반에서였던가? 하도 오래 되어서 기억도 나지 않지만,
리는 잿빛 겨울 하늘과 얼어서 뻣뻣한 무채색 빨래를 배경으로 걷고 있었다.
그녀가 쉬지 않고 걷는 동안 일련의 사건들이 줄거리를 이루고 마지막에는 밝은 색상의 빨래가 너울거렸다.
시련의 계절 겨울을 견디니 마침내 봄이 온 것이다.
그 겨울동안 그녀는 스스로가 강해져서 가족을 지켜냈다.
'블랙스완'은 막연하게 다중인격이나 정신분열이 있는 주인공 이야기가 아닐까 추측했다.
예고편 속 거울의 이미지라던가 포스터에서 보이는 갈라진 얼굴이 균열된 자아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남자 백조이야기를 다룬 '매튜 본'의 '빌리 엘리엇'의 감동을 간직하고 있기에 검은 백조의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했다.
발레리나 '니나'로 분한 '나탈리 포트만'을 보면서 자꾸만 '오드리 햎번'이 생각났는데
나탈리의 슬픈표정에서 오드리 햎번이 자꾸 묻어 나는것 같았다.
발레를 했던 오드리 햎번이 이 역을 했어도 더욱 비감하고 멋지게 그리고 우아하게 소화해 냈을 것이다.
블랙스완의 니나는 아버지가 없는 결손가정에서 자랐다.
원치않는 임신으로 자신의 꿈을 접은 왕년의 발레리나 엄마가 니나에게는 엄격한 사감이자 단 한명의 멘토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 불완전한 정신의 소유자이며 딸에 대해서는 편집증적인 면도 보인다.
굴속같이 어두운 집안에서 간혹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울음소리는 엄마의 들썩이는 어깨너머에서
들려온다. 이런 신경쇠약직전의 모녀가 이 영화의 미스테리에 골격을 이룬다.
그렇게 원하던 '백조의 호수'타이틀 롤을 따낸 니나는 백조와 흑조 일인이역을 해야하는데 자신의 천성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흑조를 표현하지 못해 강박에 의한 망상에 시달린다.
윈터스 본의 리가 강인한 정신력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반면
유리같이 깨지기 쉬운 니나는 그 망상에 무릎을 꿇고 스스로 만족감을 느낀다.
어찌보면 결말의 '나는 완벽했다'라는 마지막 대사가 발레리나로서의 성공을- 관능적인 흑조와 자살하는 백조의 역에 동화된- 예감하는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이성을 잃고 환상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라 생각하니 애처로웠다.
두 주인공중 과연 나는 어느쪽에 설 것인가를 되물어보았더니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지대에서 그럭저럭 살다 갈 것이라는 상당히 슬픈 현실에 맞닥뜨려졌다.
윈터스 본의 내면강한 소녀도 아니고 블랙스완의 니나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술에 몰입시킬 열정도 없다.
요즘은 늘 언어의 빈곤함을 느끼게 된다.
나이들어가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 블로그나 충실하자.
'어루만지기(feel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0) | 2011.03.18 |
---|---|
후니마미님 보세요. (0) | 2011.03.16 |
와우~! 만원 벌었어요. (0) | 2011.03.03 |
여고생누나가 화들짝 놀란 초등5학년 보건교과서 (0) | 2011.02.26 |
만두를 빚다가 "제명이 됐어요~." (0) | 2011.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