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혁이는 비교적 늦게 컴퓨터를 알았다.
7살이 되기까지 컴퓨터는 아빠, 엄마, 누나만 하는 것이라고 잘도 속여 왔었다.
누나인 하나도 그다지 컴퓨터에 매달리지는 않았고, 상혁이에게 굳이 한글을 일찍 가르치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씨가 많은 컴퓨터 화면이 참 낯설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되어 학교 차원에서 인터넷 학습이란 것이 있어서 날마다 드나들며 공부를 하게 되니까 차차로 그 네모난 상자 안이 요지경속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때때로 전화를 하는 상혁이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는 때가 있었다.
이유를 물어 보니 자꾸 나쁜 생각이 든다고 한다.
왜 자기는 좁은 길을 두고 자꾸 넓은 길로 가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자기 기도를 안 들어 주신다고 한다.
이러다 자기는 어쩌면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한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렸는데 자꾸 반복하는 말속에 무슨 뜻이 있는가 싶어 유심히 귀를 기울여 보니 인터넷 학습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주니어 네이버’가 눈에 들어오고 그 아이콘을 클릭하고픈 유혹을 이겨 내기가 그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그 때마다 30분만 하고 공부해라~, 하면 곧잘 알아들었기에 별 염려를 안 했다.
방학동안 이벤트 학습을 하느라 어느 주에는 게임을 전혀 못하고 보내는 주도 있었다.
하나와는 달리 컴퓨터 사용자나 감시자가 엄마, 아빠 말고도 누나가 한 명 더 있으니 그만큼 시간을 얻기가 힘들었던 게다.
잠자는 시간인 9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상혁이 방에서 쿵쿵 이상한 소리가 들려 온다.
방문을 살짝 열어 보니 상혁이는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쓰고 가슴을 탕탕 치며 흐느끼고 있었다.
“왜 그래, 상혁이?”
“헉.헉. 탕.탕.”
“말을 해 봐. 그래야 엄마가 알지.”
“헉.헉. 탕.탕. 자꾸, 자꾸 나쁜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가슴이 답답해서...엉.엉.엉.”
결국 울어 버린다.
“왜 가슴이 답답한데?”
“있잖아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도 하고 안 그럴려고 막 결심도 했는데 엉엉...
자꾸만 컴퓨터 게임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거에요. 엉엉...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머리를 때리고, 나쁜 생각 하지 말라고 마음을 때리고 하는데도 엉엉... 그래도 자꾸만 나쁜 생각이 안 나가서....엉엉...”
“아이고~. 이 녀석아. 가서 한번 하고 자라.”
“안 돼요.엉엉...”
“괜찮아 엄마가 허락하는 거니까 30분만 게임 하고 자.”
“그러면 내가 지는 거에요. 엉엉... 안 돼요.”
그러면서도 계속 자기 머리랑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아빠와 함께 겨우겨우 달래서 밤늦은 시간 11시에 컴퓨터 앞에 앉게 했더니 언제 울었느냐는 연신 히히덕거리며 게임을 하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듯 웃는 얼굴로 잠이 들었다.
“아아~.이제 좀 살 것 같다.” 라고 되뇌이며. ^^
며칠 후엔 아무래도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으니 약을 사달라고 한다.
날마다 날마다 공부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이상하게 주니어 네이버만 눈에 들어 온다면서.
건성인 나는 그래~그래~하면서 아이의 바램을 무시하곤 했는데 마침 함께 집 앞에 장을 보러 갔다가 약국을 발견한 녀석은 자꾸 내 손을 잡아끌고 약국엘 가자고 한다.
가 봐야 뻔한 걸, 가서 없는 약을 달랄 수도 없으니 나는 자연히 약국과는 멀리 떨어진 화원 앞을 기웃거리는데 갑자기
“엄마는 나보다 화분이 더 중요해요?” 하면서 혼자 약국으로 가 버린다.
뒤늦게 아이를 데려 오려고 �아갔으나 벌써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간 상혁이는
어떻게 왔느냐는 약사 선생님의 말에
“제가요, 컴퓨터 중독에 걸렸거든요? 그래서 약을 먹어야겠어요.”
“오호~.그래?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분명히 컴퓨터 중독에 걸린 것 같아요.”
사실 상혁인 컴퓨터를 그리 오래 하지도 않건만...... 옆에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아이가 중독이라는데 옆에서 엄마가 아니라고 하면 아이를 방치하는 불량 엄마가 되는 것 같아서.
약국안의 손님들이 모두 우릴 쳐다보며 아이구~, 그래도 장하네. 자기가 스스로 약을 사 먹을 생각을 하고...하면서 한 마디씩 하니 이젠 더 이상 어쩔 도리 없이 약을 사 주어야 할 판이다.
그래도 고마우신 약사 선생님은 일일이 상혁이의 말에 응대를 해 주시며 비타민제를 한 웅큼 쥐어 주시더니
“컴퓨터가 하고 싶어서 괴로울 때마다 이걸 한 개씩 먹는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약을 먹더라도 자신의 결심이 없으면 약효가 안 나니까 항상 ‘나는 이겨낼 수 있다.’라고 파이팅을 해야 한다?! 알았지?” 하며 미소로 배웅해 주셨다.
사실 그 약도 오래 못 갔다.
맛이 있으니까 이틀만에 다 먹어 치운 녀석이 이번에 매실씨앗을 발라 내 말리는 것을 보더니 작년에 베개 안에 씨앗 넣어 준 것이 생각났는지
“엄마, 매실 씨앗을 베개에 넣고 자면 좋지요?” 하면서 자기 베개 안에 씨앗을 넣어 달라고 한다.
그러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은 생각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푸훗~! 순진한 녀석.
베갯속을 열어 원래 들어 있던 황토 원적외선 뭐시기 같은 것과 작년 매실씨앗을 꺼냈다.
왼 쪽의 커다란 씨앗이 올해 것이다.
그래서 과육이 얼마 안 되었던 거다.
한층 그득해진 매실씨앗덕에 상혁이는 아주 만족해 한다.
이젠 컴퓨터 중독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려나?
내 사랑, 매실씨앗~! 너만 믿으마. 하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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