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지기(feeling)

레 미제라블- beyond the barricade

hohoyaa 2012. 12. 28. 14:11

레미제라블은 원작이 5권짜리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영화가 좀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는 불평은 원작의 무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아마도 무거운주제와는 잘 맞지 않을 법한 뮤지컬영화라는 쟝르가 낯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세계 4대 뮤지컬중 하나인 레 미제라블 공연을 직접 보러 갈 기회는 없었고 대신 영화로나마 그 감동을 누려보고 싶어 찾은 극장인데 기대이상으로 영화가 좋았다.

무대에서 직접 듣는 노래도 좋지만 아무래도 영화의 최대 강점은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까지도 잡아 내어 감동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한 예로 판틴役의 앤 해서웨이가 부른 'I Dreamed A Dream'을 듣는 것은 그녀의 처절한 연기와 절망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레 미제라블에 몰입을 하게되는 출발점이 아닌가싶다.

레 미제라블의 배우들은 연기를 하며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노래로 연기를 한 것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 하다. 특히 쟈베르가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부른 노래는 '러셀 크로우가 쟝발쟝이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을 단번에 털어내버렸다.

 

 

 

영화속 학생들의 대사에서는 바리케이드라는 말이 여러번 나온다.

바리케이드라는 말의 어원이 프랑스혁명에서 유래되었단 이야기가 어렴풋하게 생각나 나중에 불어 사전을 찾아보니 바리케이드에는 장벽이나 방책의 뜻도 있지만 복수로 쓰일 때에는 혁명이라는 의미도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구나.

어떤 영화를 보던지 항상 왜?라는 의문이 생기곤 한다.

레 미제라블은 헤지고 구멍난 삼색기가 물에 젖어 흔들리는 장면이 화면을 가득채우면서 시작된다.

쟝발쟝이 그의 괴력으로 깃발을 들어올려 쟈베르에게 끌고가는 장면도 있다. 거기에서부터 깃발을 유심히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깃발이 주는 메시지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고 영화속 시민들의 손에 들린 프랑스국기가 제각각인 것을 보고 의문이 들었다.

 

프랑스 삼색기의 역사.

 

프랑스 혁명 초기에 삼색은 휘장의 형태로 먼저 사용되었다.

1789년 7월 바스티유 함락 직전 파리에서는 동요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당시 구성된 민병대는 파리의 옛 색깔인 적색과 청색으로 이루어진 이색휘장 형태의 독특한 표식을 착용했다.

7월 17일 파리에 입성한 루이 16세는 새로운 헌병대를 인정하였다. 그는 청색과 적색의 휘장을 높이 들었고 헌병대장이었던 라파이예트가 왕을 상징하는 백색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1794년 2월 15일법은 삼색기를 국기로 정하였다.

 

19세기에는 정통왕조파의 백색과 혁명의 유산인 삼색이 대립하였다. 백색기는 왕정복고 시대에 다시 그 영광을 찾는 듯 했으나 루이 필립은 다시 삼색기를 채택하였고 갈리아의 닭을 그 위에 얹게 했다.

 

1848년 혁명시 삼색기가 임시정부에 의해 채택되기는 했으나 시민들은 저항의 상징으로 바리케이드 위로 적색기를 휘날리게 했다.

 

제3공화국 시대에는 삼색에 대한 합의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880년부터는 7월 14일 축제시 군대에 깃발을 인도하는 의식이 애국심 고취의 절정이 되곤했다.

 

                                                                                                             출처; 프랑스대사관

 

자유,평등,박애를 뜻하는 프랑스 삼색기.

그래서 앙졸라의 쟈켓도 앙졸라가 마지막까지 흔들던 깃발도 붉은색이었나 보다.

 

혁명정신.

 

흔히 자유평등, 박애라고 알려져 있지만,처음에는 자유평등, 권리였다. 1789년 8월 26일에 발표한 《프랑스 인권선언》에도 박애는 거론하지 않았다. 선언문 제2항에서 “자유와 소유권, 안전 그리고 억압에 대한 저항”이라고 밝히어 자유와 소유권, 안전(생존권), 저항권을 천명하였다. 1793년에 제정한 프랑스 헌법에도 자유와 평등, 안전, 소유권을 말하였고(특히 제8조는 안전과 인격, 권리 그리고 재산만을 거론하였다), 1799년 12월 15일 《통령 정부 선언문》에서도 “소유권, 평등 그리고 자유라는 거룩한 권리”를 인용하였을 뿐 박애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밖에 1794년 〈방토즈 법령 시행규칙〉에 대한 생 쥐스트의 기록이나 1795년 총재 정부 헌법에서도 마찬가지다. 혁명과 관련하여“박애”를 명시한 기록은 1793년 파리 시 집정관 회의이며, 다음과 같은 표어를 모든 집에 내걸도록 하자고 결의하였다.

공화국을 위해 흩어지지 말고 단결하라. 자유와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 1793년 파리 집정관 회의

 


한편, 자유평등이라는 이념 속에는 르네상스 이래 인본주의의 영향으로 인간존중, 인간존엄이라는 천부인권사상이 전제되어 있고 이는 곧 인도주의, 박애주의와 연결되어 이미 혁명정신인 우애, 박애정신을 당연히 포함한다고 하겠다.

1875년 공화국 헌법(제3공화국 헌법)이 채택되면서, 프랑스 공화국의 공식 이념으로서 자유평등, 박애가 확고히 자리잡았다.

                                                                                                                       <위키피디아>

 

 

 

감동이 북받쳐올라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장면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캡쳐해보았다.

그야말로 레 미제라블의 백미라 부르고 싶다.

 

영화를 보고 뒤늦게나마 관련정보를 얻게 되어 되새김을 하다보면 무언가 더 깊은 영화의 마력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어린 시절 보았던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만화책역시 프랑스혁명과 연관이 있음을 생각해보니 어른이 된 지금 그 만화를 다시보면 어떤 느낌일까?

 

처음은 친정엄마와 보았고 두번째는 남편과 보았다.

이제 세번째는 자기도 또 보고싶다고 한 딸과 함께 보려고 한다.

극장을 나서는 길목에 레 미제라블 OST를 팔길래 살펴보니 내가 듣고 싶은 곡들이 빠져있었다.

아무래도 내년에 dvd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분노의 포도 1
존 스타인벡 저
레 미제라블 세트
빅토르 위고 저
안나 카레니나 세트
레프 톨스토이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