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
공방에 갔었다.
지난번에 페인트 칠을 한 후 가질 못해서 오늘 가서 코팅제로 마감을 해 주고 다시 1200방 사포를 해 주어 유리같이 매끈한 표면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조립을 하고 나머지 부분에 다시 페인트 칠을 하려고 했다.
그러고 나면 다음 날에 다시 코팅을 하고 마무리 사포 후네 집으로 가져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남편이다. 언제 오느냐고...
시간을 보니 6시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늘 하듯이 '응,알았어,이제 정리하고 갈께.'한다.
오면서 생각한다.
휴~ 나처럼 사는 여자도 없을거야.
이제껏 회사간다하고 다른데로 새 보길 했나?ㅡㅡㅡ막상 갈데도 없다.
직장 분위기 꿀꿀하다며 한잔 꺾어 보기를 했나?ㅡㅡㅡ술도 별로 잘 하지 못한다. 아니 술은 센것 같은데 유난히 빨개지는 얼굴로 차마 전철을 탈 수가 없다.
아이들을 봐 주시는친정 부모님이 아닌 남편이 대신 집에 있는 날은 더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사람,꼭 전화 한다. 언제 오느냐고. 그럼 일찍 갈 수 밖에 없다.
2시간 거리의 회사에 다니면서도 남편의 호출에는 늘 헐레벌떡,그래도 회사에서는 일찍 퇴근하는 편인데 집에 오면 한 밤중이다.
혹시 나 때문에 저녁도 안 먹고 있을까 봐 오면서 먼저 먹으라고 전화를 한다.꼬르륵~~(내 배에서 나는...)
그저 우리 살림하는 사람들은 나 없이도 다들 잘 먹고 있을 때가 젤로 행복한데.
남편의 전화는 나더러 어여 와서 상을 차리라는 것처럼 들린다.
무시하고 안 가자니 돈 번다고 위세하는것 같아 그도 못하고,속으로 꽁하고 가 보면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저녁 상이 차려진다. 남편표 밥상.
오는 내내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속을 끓였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오늘은 자기가 술 약속이 있다고 애들만 두고 나갈 수 없으니 일찍 오라고 아침에 말했었지.
1시간만 더 하면 하루를 버는 일인데...아쉬움을 남기고 서둘러 밖으로 나온다.
문을 여는 소리가 나자 애들이 난리가 났다.
'엄마가 오셨으니 외식을 하자'는 것이다.
남편은 외출복,애들은 속옷 바람에 무슨 외식.??
알고 봤더니 오늘 하루종일 차 검사 받느라 밖에 있다가 마악 들어 왔는데 집에 밥도 없고 자기는 또 나가야 해서 뭘 시켜주마고 약속하던 참이었나 보다.
요즘 한창 식욕이 땡기는지 밥을 잘 먹는것은 좋은데 하루 세끼 말고도 시시때때로 배가 고프다 생각되면 찾아 먹는 밥이라 오늘 저녁엔 밥을 새로 했어야 했다.
진작 알았으면 하나에게 일렀을텐데 난 남편만 믿고 있었고 남편은 밖에서 불안하니까 내게 전활 한 것이다.
옷도 안 벗고 서둘러 밥을 앉히는 날 보며 애들이 실망을 한다.결국엔 닭 한마릴 시켜서 밥과 같이 먹게 했다.
남편은 오늘 하루를 이야기 해 준다.
그러면서 우리 동네 어느 가게 얘기를 한다.
지난 해 12월,겨울 옷을 사러 들어갔던 등산용품 점 얘기다.
그 매장에 가서 옷을 고르다가 그냥 나오려는데 우연히도 그 매장 관리자(여자)가 대학로에서 연극을 했다는 얘기를 해서 응대를 하다 보니 바로 하나 아빠의'실험극장' 직속 선배였던 것.
그런 연유로 안 사려던 옷도 사서 나오고 ,그 선배 되는 분은 팔려 했던 옷을 되려 안 팔려하고...(비싸다면서...^^;)
그 이후 출근할 때 지나 다니면서 한번인가 일부러 들러 '수세미'도 전해 주면서 얘기를 나눴었다.
그 선배는 자신은 이미 꿈을 접었지만 우리를 만난 그 날 이후로 가슴이 뛰었다며 자주 놀러 오라고,
그러마고 하면서 화기 애애했었는데...
그런데 오늘 남편이 그 선배에게 내가 이기적이라고 했단다.
선배가 집사람이 참 참하게 보이더라,그냥 집에서 놀지 않고 직장을 아직 잡고 있는 것도 보통이 아니라는 말에 겉과 속이 다르다고 회사도 돈 벌려고 다니는 게 아니고 집에 있으면 몸이 아프고 우울증이 생겨서 자신을 위해 나간다고 했단다.
차분하게 애들 공부는 안 시키면서 자기는 배우고 싶은것 있다며 공방 다니고,이제는 문화 센터까지 다니고,인터넷 하면서 수세미로 에이즈 고아 돕는다며 친한 사람 준다며 한 여름에 그 수세미를 몇 백장씩 뜨고,남들 보기엔 참하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러는게 다 자기를 위해 하는거라고...
선배 왈,그래 보이지 않던데...
뭐야~~! 난 그 선배 가게에 자주 놀러 가려고 했었는데 그런 얘길 하다니....내가 무슨 이기적이야?
뾰로퉁해진다.
남편은 약 올리듯 웃기만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좀 이기적이긴 하다.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면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남편은 늘 마중을 나온다. 그 '마중'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결같다.
비가 오면 우산을 받쳐 들고,별이 많은 날엔 바람이 좋아서,눈이오는 날은 괜히 미끄러져 자기 고생 시킬까봐서...상황에 따라 여러 이유를 대고 늘 버스 정류장에 나와 서 있다.
나오지 말라 해도 막상 나와서 놀래키려고 숨어 있는 남편을 보면 은근히 마음이 기대어 진다.
반면 나는 집에 남을 아직 어린(?)애들을 핑계대고,밤길 취객이 무섭다고,오늘 피곤한데,추운데 하면서 내가 나와주었으면 하는 남편의 취기오른 목소리를 무시하며 마중을 안 나간다.
매사를 비교해 봐도 나는 남편에 비해 확실히 이기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야채 반찬만 하고 남편 좋아하는 돼지고기는 잘 안 하게 된다.
어느 날인가는 우리집에 놀러온 내 후배들에게 나의 핸디 크래프트장을 자랑하자 남편은 자기 것은 모두 바깥 베란다에 있고 내것만 따뜻한 집안에 있다고, 그래서 자기는 다용도실의 가스렌지를 쓰고 나는 주방의 가스렌지를 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나 하나 되짚어 보니 남편은 많이 서운했는가 보다.
나는 남편은 괜찮은 줄 알았다.
내가 그렇게 해도 남편은 알아 줄걸로 생각했다. 내 본심이 그러하진 않다는 것을...
그런데 그러면서 서서히 무뎌지게 된것이다.남편의 마음자리가 어떨지에 대하여.
내가 이기적이 되어 간 것이다.
아니 본래 이기적이었는데 그걸 알지도 못 했었고,고치려고도 안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