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지기(feeling)

책,책,책들...

hohoyaa 2006. 7. 24. 22:30
날짜
2006.07.24 (월)
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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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앞두고 가장 심난한것이 책이다.

 

전에는 책을 너무도 자랑스러워해서 세상의 어느 장식품 보다도 책을 최고로 쳤었다.

 

그래서 읽고난 책을 책꽂이에 꽂아 두고 날마다 애인 보듯이 흐뭇하게 바라보며  포만감을 느꼈었다.

 

결혼 후 알게 된 남편의 단점은 책과의 거리였다.

 

결혼 전 남편은 자기 전에 꼭 책을 읽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이유가 좀 남 달랐다.

 

자취를 했던 남편은 외로워서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반드시 책을 읽어야만 했는데 그에게 있어 책이란 곧 '수면제'였던것.

 

그래도 전공 서적이나 연극 대본같이 귀한것은 보관하고 아낄 줄 아는 사람이다.

 

결혼 초,책꽂이를 정리한답시고 내 책 위주로 꽂아 놓은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고 자주 보는 책은 거실에 두고 남편의 책들은 작은 방으로 옮겨 놓은것이다.

 

그 때 남편이 어찌나 서운해 하던지 그 이후에는 서운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섞어 놓는것이 습관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두 사람의 책들역시 서로 어우러져 지금은 저 책이 누구 책이지?싶을 정도로 내게도 애착이 가는 책이 되었다.

 

나중에서야 "서재 결혼 시키기"라는 책을 알게 되어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서로 다른 취향의 독서 습관으로 인해 책들을 한 자리에 놓기가 만만찮다는것도 알았다.

 

결혼이란 사람과 사람의 결합이기도 하고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처 책과 책의 결합은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들어 책이 너무 많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 아파트 주위를 산책하다 보면 울집 만큼이나 책을 쌓아 놓고 사는 집이 눈에 들어 온다.

 

책이 거실 한쪽 벽면과 작은 방의 한쪽 벽면을 천정까지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그 집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아마도 그 때부터이리라.

 

나 역시 숨이 턱에 닿는것 처럼 책이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사를 다니다 보면 꼭 책 박스 한두개는 잃어 버리기 마련이고 그 없어진 것에 대한 미련으로 밤잠도 못 자곤 했었는데,이제는 있는 책들을 다 내다 버리고 싶을 정도이다.

 

지난 봄에는 초등학교때부터 애지 중지 해 오던 '안델센 동화선집' 12권을 재활용으로 내다 놓았다.

 

그 시절로서는 드물게 아트지에다가 김 광배 화백의 컬러 삽화가 들어 있어서 30년 이상의 세월 속에서도 새 책같이 말짱하던 것이었다.

 

지금의 안델센 전집보다도 훨씬 알차고 구할 수 없는 이야기도 많았는데,우리 아이들에게 읽히려니 맞춤법이 바뀌어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 과감한 선택을 하고도 한 며칠은 아까워서  눈에 밟혔더랬다.

 

그런데 그렇게 한 질을 퇴출시키고 보니 두번째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게 마음에서 꺼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책을 빌려 읽기 보다는 사서 소장 하는 편인데,대부분은 두번 읽게 되지 않거니와 애니메이션을 하면서는 그 쪽 분야의 책까지 사서 한번씩 들춰 보고 꽂아만 놓다 보니 내 서재(?)는 그야말로 죽은 서재이다.

 

어디에 기증을 해 볼까하고도 생각했지만 일반적인 베스트 셀러는 많지 않아 그 역시 환영 받지 못할것 같고,그저 폐휴지로 전락하고 말 애물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지난 번에 이사 할 적에는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이 제일 싫어 하는 집이 책 많은 집이라며 은근히 눈치를 주시던데......

 

자꾸 자꾸 내다 놓아도 계속해서 새 책을 사는 습관을 고치지 않는한 당분간은 책과 함께 답답하게 있어야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