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만지기(trip)

퍼즐 맞추기-사이판

hohoyaa 2006. 6. 9. 23:31
퍼즐 맞추기는 오래 된 기억의 편린들이다.

그래서 어쩌면 제 짝도 없이 그냥 동그마니 떨어져 있을 조각도 있을것.

블로거에 이런 추억을 올릴 생각은 없었는데, 서핑을 하다보니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춘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을 보면서 나의 그 시절을 떠 올려 보았다.

 

‘당그니’님이나 http://blog.daum.net/dangunee

‘花’님이  http://blog.daum.net/thesmallstory 

이미 전문적인 지식을 뽐내고 계신지라 난 그냥 소소한 일상이나 기억해 내려 한다.

        너무 거창했나? ^^

 

사실 엊그제 글을 올리다가 잘못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의욕 상실의 시간을 가졌었다.

ㅡㅡㅡㅡㅡㅡ‘사이판’으로 시작을 하려는데, 다시 쓰려니 질리기도 하네.....

며칠 전 하나 아빠가 사이판에 갈 일이 있다 해서 반 농담 삼아 같이 따라 가겠다고 하면서

기억 속의 퍼즐 한 조각을 찾아낸 것이다.

제대로 하자면 일본에 왜 가게 되었나부터 시작을 해야 하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거두절미하고.

 

그 때에는 일본에서 내 주는 비자 기간이 1달 반인가 했던 것 같은데 애니메이션 작업의 특성상 하던 작품은 마무릴 하고 와야 했으므로 연장을 한 번 하고 거기에 다시 통과 비자를 받기로 했다.

일본에 있는 동안 제 3국에 다녀오면 자동으로 15일이 연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사이판이었다. -물론 여행사의 강력 추천이었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신혼 여행지로 한창 뜨고 있던 곳이다.

 

 

비행기는 트랩을 오르는 소형 비행기.

저런 비행기 타 볼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닌데,^^

지금 같으면 못 미더워서 좀 망설였을 것 같은데 그 시절엔 마냥 재미있고 기대감에 부풀어 트랩을 올랐다.

일단 착석을 하고 음료를 주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으나 가는 시간 동안 스튜어디스가 직접

여러 가지 민속 의상을 갈아입어 가면서 패션쇼를 하던 것이 생각난다.

신기한 마음에 구경하느라 사진도 못 찍고, 덥썩 사지도 못했었다는......

 

사이판에 도착한 첫 인상은 ‘에게~! 이게 공항이야?’

출입국 관리소라는 것이 우리나라 선착장 정도의 시설과 규모였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결코 실망은 아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하는 동안 남국의 바람을 만끽하고 있는데 믿을 수없는 일이 일어났다.

내가 도로 변 사이판의 간판을 자연스레 읽은 것이었다.

순간적이라 옆의 동료에게 확인할 새도 없었지만 나도 내가 이상하게 생각 되어서 그냥 착각으로 돌렸다.

 

숙소인 하얏트 호텔에 짐을 풀고 일단은 구경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호텔 정문 앞에는 커다란 자전거 대여소와 토산품점이 몇 군데 있고 더 내려가다 보니 간단하게 요기 할 수 있는 스낵 코너들 가운데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백반’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내가 읽었던 ‘oo 교회’ 라는 간판이 한국어가 맞긴 맞았나 보다.

다들 식사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내부는 초라하고 쓸쓸한 분위기...

일본어와 영어로 되어 있는 메뉴를 보고 의아해 하는데 주인인 듯 한 아저씨가 양손을 비비며

큰 소리로 “사무이데쇼우” 하며 밖에서 들어온다.

해 질녘이라 역광으로 들어서는 그 장면이 지금도 꽤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잘못 알고 온 듯해서 혹시 한국 식당이 아니냐고 물으니까 그 아저씨가 더 깜짝 놀라는 눈치다.

주인아저씨는 다짜고짜 어떻게 왔느냐고, 괌에 갈 거냐고 하고

우리는 아니라고 대충 설명을 했는데 영 못 믿는 눈치이다.

이곳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있었지만 우리처럼 관광으로 온 한국인은 처음이라니, 그러면 다른 한국인들은 좀 있다는 말이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건너편의 햄버거 가게도 한국인, 호텔 앞의 토산품 점도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봉제 공장이 있어서 한국에서 취업으로 온 사람들이 꽤 있다고.


햄버거 가게의 아주머니는 고상해 보이는 분이셨는데 오로지 자식들 교육 때문에 오셨다고 했다.

괌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공부를 잘 해서 미국으로 가게 될 것 같다며 자랑스러워 하셨다.

돌아오는 길엔 한인 토산품 점에 들러 의리로 기념품을 많이 팔아 드렸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사이판 관청에 가서 여권에 도장 꾹 눌러 받고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움직이느라 그 아저씨 생각은 미처 못 했다.

 

 

 

 

 

바다.

 

날이 흐렸을까? 그날 찍은 바다 사진은 모두 저런 분위기다. 

흑백 사진처럼 보이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가끔씩 들여다보곤 한다.

아마 지금은 관광객으로 북적대겠지.

그 곳에서의 좋은 추억 중 한 가지는 자전거이다.

호텔 앞, 중국인이 하는 대여점에 가서 중국말로 몇 마디 아는 척을 했더니 기분이 좋다고 시간을 좀 늘려 주기도 했고-어차피 손님도 없었는데 처음엔 시간 칼같이 지키라며 막무가내로 겁을 주더만.ㅉㅉㅉ

언젠가 다시 가게 되면 그 해안선 따라 오솔길을 다시 달려 보고 싶다.

자전거 대여점이 지금도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한국인인걸 알고는 맞은 편 토산품 점이 한국인이 하는 것이라고 알려 주기도 했다.

우리가 전 날 기념품을 산 바로 앞집이다.

그 가게에선 그런 말을 못 들었는데......

새로 가 본 그 가게는 제법 규모도 크고, 모 대학에서 학생 운동을 하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젊은 주인아저씨의 인상도 꽤 좋아 보였다.

우리가 전 날 산 기념품들이 바가지라는 것만 빼놓고는 기분 좋은 하루였다.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한국 사람의 적은 한국 사람이라는 누구의 말이 뼈에 사무치는 체험에서 나온 것임을 실감했다.


우리가 떠나오기 전까지도 한국 식당의 아저씨는 계속 연락을 해 왔다.

직접 관광도 시켜 주시고 너무 고맙게 해 주셨는데 언제나 괌에 안 갈 거냐고 묻곤 하셨다.

아저씨가 한인회에서 한자리 하신다며 안전하게 일을 봐 주신다고 했다.

그러니까 밀입국인 것이다.

일단 괌에만 들어가면 미국으로 갈 수 있다며 비용도 깎아 주겠다고 하시고 자꾸 거절하는 우리를 흥정하는 사람으로 보셔서 난감하기도 했었다.

그 바람에 같이 갔던 일행 중 몇 명은 아마 심각하게 고려해 보기도 했나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