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도 알바경쟁
드디어 백수탈출했당. 한국에서 모아둔 돈이랑 미래에셋 장학금 다 탕진하고 아빠한테 송금받을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던가..! 이번 일을 구하기까지 수제초콜릿매장, 마트 등등 여러 곳에서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건 나중에 쓰기로 하고.
내가 일하게 된 곳은 프랑스인 부부가 운영하는 찻집인데, 나 말고 다른 서버가 여자애(리즈)랑 남자애(앙트완) 한 명씩 있다. 지난 화요일에 면접 보고 어제는 '에쎄'라고 해서 시험삼아 4시간 정도 일하러 갔는데, 기록해두고 싶은 기억이 있어서.
1. 4시간 동안 테스트로 일하는 건데 가자마자 점심 먹었냐고, 안 먹었으면 앉아서 우리 브런치 메뉴 먹어보겠냐고 물어본닼ㅋㅋㅋ 이미 점심을 먹은 상태이기도 했고 일단 일하는 게 먼저 아닌가 싶어서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했지만. 한국에서 중국집 서빙알바 할 때도 사장님이 밥은 진짜 잘 챙겨주셨는데 여기서도 굶으며 일하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ㅎ.ㅎ
2. 주방에 들어가니 앙트완이 오렌지를 갈고 있다가 해보라고 넘겨줬다. 다행히 브뤼셀 놀러 갔을 때 앙카 집에서 썼던 기계랑 똑같은 방식이라 능숙하게 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말을 걸기 시작. 앙트완이 주스 편하게 따르라고 갖다준 깔때기부터 시작해서 보이는 것마다 한국어 이름을 물어보더니 강남스타일, 김정은 등등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주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대답도 해야겠고 해서 아저씨 한 번 쳐다봤다가 따르고 있던 오렌지 주스 병이 꽉 찬 걸 못봐서 흘러 넘치고야 말았는데, 당황해서 미안하다고 하니 아저씨가 하는 말이, "깔때기! 이거 깔때기 잘못이야, 괜찮아. 나쁜 깔때기!"ㅋㅋㅋㅋㅋㅋㅋㅋ 깔때기 발음이 넘나 부정확해서 처음에 뭔 소린가 했다가 빵터짐.
3. 중반쯤 돼서 아주머니가 날 부르더니 케이크 먹겠냐고 물어보셨다. 손님도 많고 다들 바쁜데 나 혼자 케이크를 먹으라니 당황스러웠지만 나중엔 차까지 끓여주고. 결국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데 차가 뜨거워서 빨리 마시지 못해 계속 앉아있는데도 눈치 한 번 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원래 있는 휴게 시간이라고.
4. 에쎄가 끝나고 아주머니가 날 부르더니 "아나, 우리는 네가 마음에 들어. 내일부터 바로 같이 일할 수 있을까?" 하면서 근무조건을 말해주는데 앞서 말한 휴게 시간이랑 등등 다 설명해주다가 갑자기 시간당 임금은 '9유로'라고 했다.
세전 최저시급은 9.67유로인데 9유로만 준다니, 당한 건가!!! 싶었지만 침착하게 "그럼 최저임금보다 조금 낮네?" 했더니 "아냐, 내가 말하는 건 세후 9유로야. 그리고 우린 막 직원들을 부려먹지 않으니까 일하는 중간 중간 차도 마시고 쉬기도 하고 그래~" 하고 답해줘서 감동의 물결ㅠㅠㅠ
5. 초콜릿 가게에서 에쎄 했을 때도 느꼈지만, 손님들 진짜 여유롭다. 거기선 내가 막 초콜릿 종류 많아서 헤매니까 점장님은 "한 개씩 맛보면서 침착하게 해" 라고 하고, 몇몇 손님들은 "나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내 초콜릿 상자로 포장 연습도 하고 싶으면 해 봐"ㅋㅋㅋㅋㅋㅋ
어제도 나는 계산대 사용법을 몰라서 앞에서 기다리는 손님들한테 "내가 에쎄 중이라 계산 일을 해줄 수가 없어, 미안해" 했더니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 걱정하지 말고." 하면서 오히려 날 달래줬다. 그리고 나가면서 "행운을 빌어! 에쎄 잘 하고!" 하는데 무슨 친구 같은 느낌ㅋㅋㅋㅋ
아무튼 오늘은 본격적으로 일하러 가는데, 앞으로 계속 즐겁고 보람차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도대체 나의 엄청난 인복의 근원은 무엇인가..! ㅡ
딸의 페북에서
달래 선진국이 아닌가 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