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서 벌어진 빌라 반토막에 대하여...
멀쩡한 빌라를 '반 토막'..대체 무슨 일이?
http://tvpot.daum.net/v/vc759QQxbEQjJbbjgJQYgU6
내가 사는 동네는 조용한 동네였다.
대개가 서민용 나즈막한 빌라가 대부분이지만 남향을 향하고 있어서 살만했던 곳이었을 것이다. 10년 전 쯤 그들의 바로 앞에 우리 아파트가 진을 치듯 들어서는 바람에 겨울 철 그늘이 길게 늘어지고 빙판이 쉬이 녹지 않지만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골목길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동네였는데, 경춘선열차가 지나는 퇴계원역에 경전철이 들어오고 역주변이 정비되면서 재개발의 움직임도 함께 꿈틀거리고 있었다. 급기야 자그마한 동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있던 사람들의 반발도 거세지면서 역앞 광장에서는 재개발 반대서명운동도 벌어졌었다.
어찌보면 재개발로 인해 골목이 정리되고 키크고 멋진 상가들이 들어서면 여러가지로 잇점이 많을 터였지만 남편과 나는 재개발을 원치 않아 반대서명을 하기도 했었다. 개개인의 차이가 있겠지만 퇴계원의 진정한 주인은 면민으로서 정당한 세금을 내면서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반시설과 불편한 교통을 모두 감내하며 옹기종기 모여 수십년을 살아 온 골목길 사람들이었으리라.
집의 크기에 상관없이 전국적으로 부동산이 들썩이는 동안에도 내 집 한 칸만 있으면 다리 뻗고 누울 수 있었고 이제 전철이 생기고 자투리 땅이나마 도서관이 들어서니 그 혜택또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낮은 빌라의 숨통이었던 베란다 바로 앞으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서 시야를 가리더라도 정이 들어서 또는 경제적 이유로 인해 이 동네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역시 타지에서 들어와 자리를 잡았기에 처음엔 용케 개발이 피해 간 남루한 처마와 삐둘빼뚤 골목길이 다소 불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골목의 선한 이웃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집 앞엔 개인택시가 세워져있기도 했고 화물차가 서있기도 했다. 모두들 열심히 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 내 이웃의 모습이었다. 볕이 좋은 날에는 담벼락 밑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계신 노인 분들이 많은 것을 봐서 이 곳을 고향처럼 여기고 살아오셨던 분들이었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퇴계원은 집 값이 싼 편인데 재개발이 되거나 이번 뉴스처럼 일부 주민들이 통행에 방해가 되어 길을 내야겠으니 나가라고 한다면 그들이 물러나야 할 곳은 어디일까?
사실 우리 집 바로 앞이 이번에 문제가 된 힐스테이트 아파트 단지이다.
전에는 사시사철 흙바람이 불던 곳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니 우리로서는 주변 경관이 오히려 좋아졌다.
그리고 이 아파트에서 7~8년 살다보니 힐스테이트가 완공되면 한 번 집을 옮겨볼까하고 모델하우스에도 가봤지만 평수에 비해 전용면적이 너무 좁고 타워형이라 죽은 공간도 많아 확장을 모두 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짐을 거의 버려야 할 것만 같아 포기를 했다. 아니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퇴계원 지역 물가를 고려하지 않은 높은 분양가때문이기도 했다.
하긴 우리 아파트만 해도 '힐스테이트'측으로부터 이미 일조권과 소음에 대한 배상을 받았고 아마도 근처의 빌라들도 그와 비슷한 배상을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있던 초등학교와 유치원, 일부 중소기업들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이런저런 연유로 분양가가 턱없이 높았던 것이다. 그런데다가 이미 아파트 광고에서는 전철역이 3분이라는 식으로 과장광고를 했지만 퇴계원 전철역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우리 집에서는 3분이라는 시간이 가능하지만 우리 아파트를 사이에 둔 힐스테이트 어느 곳에서도 3분이라는 시간을 불가능하다. 불행하게도 우리 아파트가 장벽처럼 가로막고있기 때문에 힐스테이트에서 구름다리를 16층 높이로 건설해서 역으로 가지 않는 다음에야 우회로로 돌아갈 수 밖에는 없고 아마도 그래서 빌라 반토막이라는 악수를 두게 되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빌라주민들이 무리한 요구를 했도 이미 떠난 사람들도 집값의 두배이상은 챙겼다고들 하는데 어느 누가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내주면서 남의 사정만 봐 주겠나? 더구나 한가족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집을 아파트 주민들의 통행을 위해 집을 내놓아야한다면 당장 우리 가족이 새로이 꿈을 꿀 집을 구하기 위해 신의 한 수를 두어야하지 않았을까. 유형의 재산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무형의 재산역시 중요하다는 것은 말이나 글로만 강조하는 것인가 보다.
전철역이 좀 멀면 어떠랴.
5분 일찍 서두르면 걷기에도 무리가 없는 거리 아니 전혀 멀다고 느겨지지 않는 거리이다.
다만 직선거리를 두고 우회하는 것이 지나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마치 헛수고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수는 있겠지만 모든 것이 직선으로 휙휙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살이에서 조금은 여유를 두고 느리게 돌아가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오늘 낮에 지나오면서 보게 된 빌라 반토막의 현장.
2008년도 포스팅에 있던 빌라 사진.
이 빌라앞을 지나 다리 건너 공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 동네로 이사오면서부터 지금까지 숱한 날들을 이 앞을 지나 동네 한바퀴를 돌았고 구리시민공원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기도 했었다. 사진에서처럼 조용한 동네였다.
마주보는 빌라사이로 걸어다니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이웃간 이야기를 엿듣게도 된다.
누구네 집 베란다에서 키우는 고추 모종이 실하고 어느 집의 화초는 꽃이 너무 탐스러워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꾸 꽃대를 꺾어가는 바람에 성가시다, 조기 보이는 저 일층에는 000호 아저씨네 딸이 이사를 오게 되어 아저씨가 손수 페인트칠을 하셨다는 이야기. 스을쩍 고개를 돌려 그 곳을 바라보면 유난히 깨끗하게 단장한 빌라1층이 눈에 들어오고 딸네 식구들을 맞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골목을 서성이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상상되어진다.
이제 힐스테이트가 들어서고 수변공원이 조성되고 자전거 길도 산책로도 더 좋아지겠지만 이 사진에서처럼 조용한 일상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돈이랑은 멀리 사는 팔자라 그런가 이런 조용함이 더 정겹고 그립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모쪼록 합리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