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 요코야마 히데오
대단하다, 이 작품.
오랜만에 만족감이 드는 책을 읽었구나싶어 며칠간 좋은 기분으로 지낼 수 있었다.
요즘에는 영화도 드라마도 그리고 책마저도 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한 환타지가 주를 이루는 바람에 입맛을 잃어가던 참이었다. 그런 이야기속에 빠져들기엔 의심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꿈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옛날이야기에서 차용한 동화같은 이야기들은 영 재미가 없다.
그러던 차에 이 쟝르소설 "64"를 알게 되었다.
아니 사실 이 작품은 처음 출간되어 인터넷서점에 걸리면서부터 숫자로 된 제목이 뇌리에 박혀 쉬이 잊혀지지않았는데 이제 일본 미스테리는 그만 읽자라는 마음과 시공사의 타이틀때문에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릴없이 인터넷 서점에서 노니는데 또 눈에 들어오는 숫자 64와 함께 작가가 10년간 수천매의 원고를 몇 번이나 개작한 결과물이라니 한 번 읽어보자하는 마음이 들었다.
소재는 어린아이 유괴미제사건을 모티브로 했지만 작품의 주된 배경은 경찰이라는 조직사회에서 형사과와 경무부, 그리고 경찰서안에 상주하는 기자단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하는 홍보담당관 미카미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처음 어린아이의 뒷모습이 그려진 책표지를 보고는 그렇고 그런 사회소설이겠거니 했지만 점차적으로 남아있는 책장이 얇아질수록 64의 의미가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한 가정의 씻을 수 없는 고통쯤은 조직사회에서 위로 위로 올라가려는 야심에 비하면 이용가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 그렇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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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시대가 바라던 휴머니티를 이야기하다
《64》는 요코야마 히데오가 기자로 활동했던 1987년, 군마 현에서 일어난 ‘오기와라 요시아키 소년 유괴살인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몇 안 되는 몸값을 목적으로 한 미제 유괴사건 중 하나이다. 당시 가장 큰 이슈였던 ‘경찰의 문제’가 본작에서 차용되었다는 점, 시효가 만료된 2002년에 《64》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작가가 이 사건을 염두에 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7일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쇼와 64년과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진 범인을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는 주인공 미카미는 당시 기자로서 유괴사건 전반을 함께했던 작가의 일부가 투영된 것이 아닐까. 부조리한 사회와 인간성을 매몰시키려는 조직에 분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인간은 정의롭다는 작가의 믿음을 극대화한 역작 《64》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과 위로를 줄 것이다.
** 예스24
홍보부의 미카미는 개인적인 아픔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상처가 있는 남자에게 지워진 짐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워서 힘들다고 섣불리 내려놓을 수도 없는 그런 무게이다. 아빠를 닮은 추한 외모때문에 가출한 딸이 있고 혹시나 딸이 전화를 하지않을까싶어 온종일 전화만 기다리는 미모의 아내가 있다.
강력계형사에서 홍보부로 전과를 하게되면서 형사계에서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경무과에서는 전과자(轉科者)라는 이유로 백안시된다. 미카미 개인으로서는 원치 않는 자리에 서있으나 그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하기에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으르렁거리는 기자들과 경찰청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하는 입장이다.
그런 미카미에게 신임 경찰청장이 미제사건으로 끝난 소화 64년의 유괴사건의 유족을 방문한다는 것은 단순한 홍보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유도부에서 자신에게 땀수건을 고개숙여 건네주던 후타와타리는 지금 경무부의 인사권자가 되어있고 같은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미나코는 모든 남자들이 우러러보던 절세미인으로 - 엄마를 닮지못한 딸은 그 미모를 혐오하기까지 했다.- 한편으론 그녀가 왜 미카미 자신과 결혼했는지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사실 이 "64"는 미제 사건에만 대하여 서술한 소설은 아니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그 한가지만으로 채운다면 자칫 지루할 수도 있을텐데 이 소설은 특히 상명하복에 길들여진 관료사회의 구태의연한 모습과 조직사회에서 개인의 일탈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과연 양심선언이라는 것이 단어자체의 의미만큼 정의를 구현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주로 경찰내부의 문제와 미카미 개인의 고뇌가 그려지지만 여전히 근간을 이루는 물줄기는 사건 "64"이고 지은이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아 시종일관 긴장감으로 읽게된다.
전 같으면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읽겠다는 섣부른 허언을 덧붙일만한 작품이다.
지금은 한 번 읽은 책은 그 때 그 때 처분하고 있기에 처분에 앞서 이 기록을 남긴다.
7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신간을 선보이지 않아 사망설,중병설까지 나돌았지만 그 기간동안 이 "64"를 집필하고 있었고 전면적인 수정도 여러차례 거듭한 끝에 결국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는 작가의 전언.
그만큼 철두철미하고 치밀하게 집필된 작품이라 마지막에 가서야 이 작품의 진가를 알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