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머문 곳에 나도 같이 있었다.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손미나
책을 읽고 한 문장으로 나의 느낌을 잘 전달하기 위한 제목을 짓기 위해서는 책을 읽으면서부터 고민을 하게 된다. 요행히 어떤 책은 전광석화처럼 뇌리를 스쳐가는 문장이 떠오르는가 하면 어떤 책은 독후감을 쓰기위해 노트북과 마주한 순간까지도 ‘이거다’ 하고 잡히는 것이 없어 갈팡질팡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한 페이지의 감상문을 쓰는 것이 이리도 어려울진대 하물며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버리고 소설을 쓰기위해 파리를 찾아간 작가 손미나의 머릿속은 얼마나 복잡하고 쥐가 났을지 평범한 나로서는 감히 짐작도 못할 고통이었을 것이다.
손미나라고 하면 떠오르는 브라운관 속 반듯한 이미지는 그녀가 써내려간 파리생활기에서도 좀처럼 망가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뻔한 이야기라는 뜻은 아니다. 아마도 그녀이기에 기대했던 그만큼 알찬 책이라고 하면 부족하나마 표현이 될까? 물론 꽃미남 소방대원3인방같이 연신 키득거리며 보다가 급기야 학과 MT를 가있던 딸아이에게 그 내용을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던, 혼자만 알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사연도 몇 가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책의 소제목들은 에펠탑, 마카롱, 미모자, 샴페인같이 달달하기만 하지만 그 안에는 파리의 풍광을 보여주자, 파리의 맛집을 소개하자, 프랑스의 명품도 싼 값에 사보고 유명한 휴양지에도 가보자라는 식의 허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흔하디 흔한 유람기도 아닌 것이 이름난 여행지 순례기도 아닌 것이 그야말로 파리의 에펠탑아래 둥지를 틀고 천천히 녹아 들어간 일상의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그녀의 첫 장편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세상에 내놓기까지 작가로서의 첫발자국을 떼어놓는 과정은 데미안의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를 생각나게 해서 줄곧 그녀에게 응원의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파리는 문학과 낭만의 도시, 예술이 살아 숨쉬고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른 패션의 도시이다.
책에서 다루어지는 개성강한 파리여성들의 미에 대한 관점과 오래된 것이라면 무조건 보존하고 계승해야하는 것으로 아는 성숙된 시민의식, 또 새롭게 이슈가 되고 있는 프랑스의 교육등은 현재의 우리가 반드시 숙고해봐야 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왜 파리인가라는 물음에 느낌표를 찍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 방을 얻어 들어가면서 겪게되는 문화적 이질감이 채 가시기도 전 맞닥뜨리는 고르지 않은 날씨를 보며 우디 앨런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과거로 통하는 비에 젖은 보도를 기억해냈고 일요일의 철학카페이야기에서는 지난여름 극장가를 강타했던 “레 미제라블”의 삼색기아래 모여들었던 대학생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져 버린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30년에 걸쳐 출연한 비포시리즈의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또한 빼놓을 수 없겠다. 후반에 소개되는 폴 세잔의 생가와 반 고흐가 머물렀던 아를은 양념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약간 서운한 일이지만 그들에 관한 것은 너무나 많은 정보가 있으므로 굳이 반감은 갖지 않으련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불친절하다는 프랑스인들의 속 깊은 정을 듬뿍 받기까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씩씩하게 일어서서 꿋꿋하게 다가간 손미나의 용기는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우리 딸아이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어서 마음에 새겨두었다.
내가 특별히 파리를 동경하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내 삶의 많은 부분이 파리로부터 왔고 또 파리로 향하고 있음을 이번에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작가가 그만큼 다방면에서 프랑스 사회를 들여다보고 이왕이면 더욱 깊이 느끼고자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싶다.
지난 주말 2박3일로 가족여행을 떠나면서 이 책을 들고 갔었다.
생각 같아서는 쉬는 시간에 조금씩 넘겨보려던 것이었으나 처음 몇 장을 읽고서는 그대로 책장을 덮어 가방 속에 넣어두었다.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건,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읽어서는 독서도 여행도 아무것도 안되겠다 싶어서였다. 그렇게 여행은 온전히 가족과 함께 즐기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책을 꺼내들고 내쳐 읽어버렸다. 이런 느낌은 마치 내가 작가의 손에 이끌려 종횡무진 여행을 다니다보니 무언가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실체까지도 작가와 함께 만나게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인생 전환기에 냈던 에세이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건너 뛴 채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를 읽고 그녀의 글맛이 좋아진 나는 파리에서 마침표를 찍은 장편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에 많은 기대를 걸게 된다.
그녀가 내 손목을 잡고 이끌었던 프랑스의 곳곳에서 그들 주인공들이 잉태되고 자라서 운명적인 만남에 끌리기까지 그 여정에 나도 함께 했으므로. 그리고 그녀의 글맛에 중독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