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만지기(children)

격대교육과 자기소개서

hohoyaa 2013. 10. 1. 10:48

 

우연히 날짜지난 한겨레 신문을 보다가 '격대교육'이라는 문구에 눈이 갔다.

sbs스페셜에서 오바마와 빌 게이츠가 받은 격대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가보다.

프로그램은 보지 못했지만 혹시나해서 신문기사를 사진으로 남겨놓았다.

날짜가 10월 13일이니 하나가 입학사정관에 응시하고 아직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으리라.

이 기사가 눈에 들어온 이유는 하나가 자기소개서에 썼던 내용이 바로 이 격대교욱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세대간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중간에 끼인 손주는 떠도는 섬이 되고말았다.

한 편으로는 노년의 자유를 만끽하시 위하여 성주는 맡지않겠다는 분들도 많지만 아직은 대부분의 맞벌이 가정이 할머니의 손을 타는 실정이다. 나역시도 우리 아이 둘을 친정부모님의 손을 빌어 키웠다.

큰아이였던 하나는 외할머니가 한글을 가르쳐주셨고 작은 아니 상혁이는 허리가 안좋은 외할머니대신 외할아버지가 업어 키우셨다. 아침에 하나를 등교시키고 출근준비를 하면서 돌배기 상혁이를 보러 오시는 아버지를 위해 간단한 국이나 찌개로 식사준비를 해놓고 나가면 오후에는 친정엄마가 오셨는데 외손주 간식용으로 떡이나 부침개등을 싸오곤 하셨다.

늘 들고 다니시는 자그마한 손가방이 불룩해지도록-요즘 말로 모양빠지는 가방을 들고 오셨는데 말은 못해도 보는 눈은 있었던 상혁이는 그 가방에서 날마다 맛있는 게 나오니 외할머니가 오시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걸음으로 뛰다시피 외할머니께로 갔단다. 마침 간식거리가 없는 날은 가방을 멀찌기 밀어 놓았는데 어느 새 상혁이가 그 가방을 가져와 외할머니 앞에 내려놓고 열어달라하고 외할머니가 반응이 없으면 자기가 지퍼를 열려고 안간힘을 쓰더란다.

 

하나는 자신이 어렸을 적 기억은 잘 안나지만 어린 동생을 돌보시는 외조부모님을 보고 대충 미루어 짐작했으리라. 더구나 첫 아이였으니 받은 사랑과 관심이 오죽하였을까.하나를 키울 적에는 우리가 친정옆으로 이사를 가 출퇴근하면서 아이를 맡기는 방법을 택했다. 노인 분들은 일찍 주무셔야하는데 어쩌다 야근까지 하고오는 날에 친정 집에 들러보면 친정엄마의 머리는 산발이고 하나와 같이 이불 속에서 놀아주시느라 좋아하시는 연속극도 못 보시고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 날인가는 갑자기 회사에 있는 내게로 전화가 걸려 와  "엄마,엄마. 큰일 났어. 할아버지 목에 낙지가 있어."라는 영문모를 말을 해대는 바람에 깜짝 놀랐던 일이 있었다. 알고보니 당시 '긴급출동 119'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그 프로에서 산낙지를 먹다가 질식한 할아버지이야기를 다루었고 그걸 본 하나는 또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119놀이를 한다고 할아버지 목구멍에 손을 집어넣어 낙지를 꺼내는 놀이를 하다가 119 대신 엄마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tv에서 미장원이 나오면 그 날 할머니의 머리는 온통 고무줄로 묶인채로 반나절을 보내야했고 얼굴은 빨간 립스틱으로 범벅이 되었엇다. 어쩌다 프로그램에서 맛있는 것이 나오면 그걸 또 만들어 주어야했으니 엄마라면 귀찮고 힘들어서 응대하지 않았을 놀이들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다 들어 주셨던 것이다.

 

나중에 들어보면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도 젊었을 적에는 부모모시고 먹고사는 것이 바빠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대신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끔찍이 위하고 싸안으셔서 오히려 부모에게 차례가 안왔다고 하신다. 그렇게 부모님의 비호아래 3남매를 키우고 이제 손주를 보고나니 그 때의 할머니 할아버지 마음을 알겠다고 아이라는 조그마한 인격체가 어쩜 이리도 신기하고 또 신기한지 자식키우기보다 더 재미있다고 하신다. 젊었을 적에는 몰랐던 아이에 대한 사랑이 노년에 이르러 새록새록하다고 누워서도 눈만 감으면 손주들 얼굴이 어른거린다고 친정 아버지는 그저 혼자 앉아 계시다가도 웃음이 절로 벙글어진다고 하셨다.

 

하나는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또한 당시를 잊어버리고 그렇게 지냈는데 이번에 자기소개서 항목에 자신에게 영향을 준 첫번 째 교육경험에 대해 쓰라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초중고 12년 동안 남들과 비슷한 교육환경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특별할 것이 없어 고민이었는데 어릴 적 외할머니가 한글을 가르쳐주시던 이야기가 나와서 그걸 한 번 써보자고 했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 하나는 엄마가 방향을 제시하면 그 이상을 해내어 어릴 적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자기를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자기 인생의 첫번째 교육자였다라는 주제로 500字 글짓기를 완성했다. 그러면서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정말이지 외할머니는 자기 인생 최고의 교육학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자기소개서를 쓰고서 나역시도 이런 내용을 쓴 것이 과연 잘한 것인지, 교육이라는 의미를 너무 축소시킨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으나 그와 반대로 이것이야말로 가장 솔직하고 독자적 경험에 의한 자기소개서라고 애써 위안을 삼았다. 그러다가 이 기사를 보니 아! 우리가 제대로 짚었구나 싶어 이제 사정관들만 그 의미를 알아주면 좋겠다고 사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작년 2012년 10월 19일에 쓰다가 만 글.

 

지금 읽으면서 보니 새롭기만 하다.

진로를 교육학쪽으로 정해서 수시를 모두 같은 과로 넣으니까 자기소개서 준비하기가 수월했다.

자기가 원하는 학과를 갔으니 대학공부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고 꿈에 그려보던 그런 강의를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단다. 우리 딸.

 

그런데 상혁이는 오늘이 중간고사 두번 째 날인데 어제 낮에 무얼했는지 초저녁부터 책상에서 졸더라.

차라리 몸과 마음편하게 누워서 자라고했더니 미안한지 불안한지 침대에 몸을 반 쯤 걸친 채로 눕다가 미끄러지고 제대로 쭉펴고 누우라는 엄마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큰대자로 편하게 누워 12시간 이상을 자고 오늘 아침 일어나 학교에 갔다. 컴퓨터사인펜을 챙겨갔나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하나에게 해줬더니 하나도 그저 웃는다.

중학생인데, 남자애라 그런가 하나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래서 한 편 불안하기도 하고 하나처럼 그냥 두면 알아서 하겠지하며 희망을 품어보기도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으니 나만 가슴앓이다.

양가 어르신들은 모두 상혁이를 보시면 그렇게 마음이 흡족하고 좋을 수가 없으시다며 요즘 아이같지 않게 잘자랐다고 하시지만 나는 앞으로의 미래가 더 걱정이다. 어쩌면 그래서 격대교육이 부모의 조바심을 조금이나마 상쇄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보다는 더 넓고 깊게 보시는 분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