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 그리고 김미정의 책

hohoyaa 2012. 6. 7. 16:09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후 부쩍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아버지의 삶이 궁금해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전과는 달리 즐겨찾는 놀이터 예스24에서도 이런 제목의 책이 잽싸게 눈에 들어온다.

 

 

 

Annie ERNAUX

 

1940년 9월 1일 생, 처녀명 아니 뒤셴느(Annie Duchesne), 프랑스 작가이자 문학교수이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그녀의 작품들은 사회학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Yvetot에서 보냈고, 노동자에서 소상인이 된 부모를 둔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루앙 대학교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정식 교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1974년, 자전적인 소설 『빈 장롱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했고, 1984년,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남자의 자리La place』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년, 전후부터 오늘날까지의 현대사를 대형 프레스코화로 완성한 『세월들Les Ann?es』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자신의 출생 이전에, 여섯 살의 나이로 사망한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인 『다른 딸L'autre fille』을 선보였고, 같은 해에 12개의 자전 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Ecrire la vie』를 갈리마르 Quarto 총서에서 선보였다. 생존하는 작가가 이 총서에 편입되기는 그녀가 처음이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탄생했다.

문학과 문체
데뷔 시절부터 아니 에르노는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의 카페-식료품점이었던 자신의 유년 시절로 구성된 자전적 소재에 몰두하기 위해 모든 픽션을 포기했다.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체험을 혼합한 그녀의 작품들은 부모의 신분 상승(『남자의 자리』, 『부끄러움』), 자신의 결혼(『얼어붙은 여자』), 성과 사랑(『단순한 열정』, 『탐닉』), 주변 환경(『밖으로부터의 일기』, 『바깥세상』), 낙태(『사건』),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한 여자』), 심지어 혹은 자신의 유방암 투병(『사진의 사용』, 마르크 마리 공저)을 소재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해부하였다.
그녀는 “판단, 은유, 소설적 비유가 배제된” 중성적인 글쓰기를 주장하면서 “표현된 사실들의 가치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객관적인” 문체를 구사,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과 동일한 가치로 남아 있기를” 소망한다. 에르노에게는 “자아에 내재된 시적이고 문학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쓰기는 “문학적, 사회적 위계를 전복하려는 의도에서 출발, 문학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상들 ― 슈퍼마켓, 지하철 등 ― 에 대해, 이것보다 고상한 대상들 ― 기억의 메커니즘, 시간의 감각 등 ― 을 서술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그 둘을 결합하여” 글을 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생각할 때 썼던 그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사회학의 영향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개인의 기억 속에서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회학적 방법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개인성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인 그녀의 작품은 자전( ??의 새로운 정의를 부여했다.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들,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아니 에르노는 사회학자의 방법론을 채택, 자신을 집단적 표본과 특성을 체득한 한 체험자의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를 특수한 존재로서, 절대적으로 특수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나 자신을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나는 나를 사회적, 역사적, 성적 경험과 판단의 총합, 언어의 총합, 또한 세계(과거와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특수한 주관성을 형성하게 된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의 주관성을 보다 일반적이고 집단적인 메커니즘과 현상을 되살리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다.” 그녀에 따르면 사회학적 방법은 전통적으로 자전적인 ‘나’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사용하는 나는 비인격적 형태를 띄고 있다. 성별도 애매하고, 종종 나의 말이기보다는 타인의 말일 수도 있는, 전체적으로 다인격적 형태이다. 그것은 나를 픽션화하는 수단이 아닌, 내 체험 속에서 현실의 지표들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로써 그녀의 작품은 자신의 궤적의 “사회적 이종교배”(소상인의 딸에서 학생, 교수, 이어 작가가 된)와 그에 따르는 사회학적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망을 접하고 「르몽드」지에 애도의 헌사문 「부르디외, 회한」을 기고하면서 사회학적 방법론과 자신의 작품 사이의 유대감을 밝혔고, 부르디외의 글이 그녀에게 “자유와, 세계 펼에서의 실천이성과 동의어”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책의 내용은 그닥 커다란 감명을 준다거나하는 류는 아니다.

그저 개인사가 사회학적으로 읽히는 것에 대한 생경함정도?

우리정서상 아니 나같으면 아버지나 어머니에 관한 기억들이 대부분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 젖을 일이건만 저자인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감정은 철저히 배제시킨채 아버지라는 인물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반추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나또한 약간은 건조하게 관찰자처럼 보지 않았나 싶다.

 

작가가 유명한 프랑스작가라지만 생각보다 책이 두껍지 않았다.

판형도 작고 장정도 하드커버이고 활자또한 큰편이라 그렇지 안그러면 정말 얇은 책이 될뻔 했다.

차라리 얇게 만들어서 싸게 내놓는다면 책이 안팔릴까?

 

이런저런 핑계로 독후감은 멀찌기 던져놓았었는데 며칠전 친구의 편지를 받고 이 책이 생각나서 이기회에 몇줄 적어보았다.

 

 

친구 김미정은 부군이신 조성윤교수와의 공저자로서 자신의 이름 석자가 당당히 박힌 책을 낸다.

그것도 대다수의 블로거들이 앞다투어 내는 요리법이라던가 인테리어,육아에 관한 책이 아닌 순수연구목적으로서의 글을 모닥거려 펴낸 "숙명전환의 선물"이라는 일본 종교계에 몸과 마음을 의탁한 재일한국인들의 이야기이다.

 

친구가 보내온 책표지의 레이아웃(이 말이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을 찬찬히 보다가

김미정이라는 인물의 소개글을 읽으니 문득 얼마전에 읽은 아니 에르노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싶었다.

“개인의 기억 속에서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회학적 방법론에 의한 글쓰기를 한다는 에르노처럼

김미정또한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타인의 삶과 생각에 관심이 많으며 각 개인의 생애사 속에 학문 이상의 교양과 삶의 가치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고 써놓았다.

책을 쓰는 사람들은 무언가 다르구나싶다.

지금은 이미 할머니가 되었을 에르노가 친구의 글을 보게 된다면 동지의식에 반가워할텐데, 틀림없이.

 

 

몇몇 이야기는 친구의 블로그에서 그 과정을 전해들은 것이리라.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더구나 거창한 역사관이나 이념에 앞서 그저 한 인간이 하루하루 살아가야 했던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결국 도도한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에 경이로울 뿐이다.

개인의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한 통한의 역사와 식민통치가 끝난 후에도 종주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했던 재일한국인 소수집단의 살아남은 이야기 "숙명전환의 선물", 기대가 된다.

 

요즘처럼 책이 범람하는 시대에

책보다는 게임이나 SNS가 판치는 세상에서

친구의 노력이 열매를 맺게되어 더불어 행복하다.

 

오늘도 그저 주저리주저리 펼쳐놓았다.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임호경 역/아니 에르노 저
한 여자
아니 에르노 저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