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시종일관 유쾌상쾌- 안디 홀처의 '그래도 나는 내가 좋다.'

hohoyaa 2012. 5. 18. 10:08

지난 봄, KBS '인간극장'에서는 시각장애를 가진 강신혜씨가 일반 중학교의 교사가 되어 출근하고 비장애인 학생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소개해주었다.

첫시간에 선생님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라했더니 한 남학생이 시각장애인도 꿈을 꾸느냐고 물었다.

과연, 선천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꿈이라는 이미지가 존재할까?

그런 질문을 한 학생이 조금은 야속하게도 느껴질때쯤 강선생님의 입에서는 미처 생각못한 답이 나왔다.

선생님은 간직한 이미지가 없는대신 소리와 냄새등으로 꿈을 꾼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다면 가장 먼저 점자를 배워야 할 것이고 특수학교에 다니며 직업교육을 받는 것이 최선이랄 수 있겠다.

운이 좋다면 맹도견을 데리고 다닐 수 있겠지만 여의치 못하다면 시각장애인용 스틱을 사용하는 법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복지정책이 좋아지고 사회적인식이 달라졌다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획을 그어놓고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내가 좋다'의 저자 안디 홀처는 오스트리아 티롤지방에서 선천성 망막염으로 인한 시각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그의 부모에게는 절망적이게도 그의 누나또한 시각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우편배달부였던 안디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단코 절망하지 않았다.

불행중 다행이게도 그들 가족이 사는 곳은 복잡한 도시가 아니라 목가적인 전원마을이었기에 안디는 비교적 안전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렇다고 그의 부모가 그들 남매를 과보호한 것은 아니고 그들 스스로가 지팡이나 남의 친절에 의지하는 대신 주변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평범한 또래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뛰어놀았다.

학교도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로 진학했고 통학은 자전거로 했기에 어떤 선생님은 그가 시각장애인인 것을 미처 알아차릴 수 없었다고 한다.

 

 

안디는 학습능력도 떨어지지 않았고 글쓰기에도 소질이 있어 상급학교로 진학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좀더 활동적인 삶을 살고싶어서 실업학교를 선택했다.

시각장애인이라기엔 지나치게 활동적인 그는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교묘하게 감추려 애썼기 때문에 선생님이나 학생들은 그의 문제를 거의 알아채지못했다고 한다.

어디엔가 머리를 부딪히거나 하면 자신의 실수를 안타까워하는 대신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웃기는 연기를 한 것처럼 꾸미고 아이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고 한다.

그런 그의 기질은 그의 인생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도대체가 자신의 장애는 아랑곳하지않고 자전거타기도 스키점프도 산악스키도 다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래도 이런 암벽등반은 사진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사실이다. 

가벼운 소풍정도로 시작했던 가족여행에서 부모는 늘 길가의 바위나 정상에 있는 십자가를 만지도록 해주었고 주변 경관을 말로 설명해 주면 안디는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지도를 만들 듯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

아들이 암벽등반을 너무나 하고싶어했으나 함께 산에 오를 파트너를 구할 수 없게되자 그의 어머니는 난생처음 자일을 두르고 아들과 함께 테플리츠봉에 올랐다. 가파른 벽을 올라 정상에 선후의 감격과는 별개로 그들은 이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말자고 약속을 했다. 눈뜬 소경의 안내로 암벽을 타는 것이 남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할 미친 짓이기에 그로 인해 다시는 산을 타지 말라고 제지당할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한 사람은 다리를 절단했고 두 사람은 시각장애인이다.

2005년 안디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영화를 찍다가 우연히 미국인 시각장애인 에릭을 만나게 된다.

남티롤의 프로이슈트롬 남벽에 있는 험난한 카신루트는 난이도 VII-로 분류되어 거대한 바위장벽과도 같다는 인상을 주는 곳이다. 위의 세 사람은 정상까지 완주했다.

안디는 7대륙의 최고봉인 세븐 서밋 중 6개를 완등하고 에베레스트만 남겨놓고 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이 쓴 자전적인 책이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 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시각장애인의 표현은 평면적이고 무채색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안디의 글은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이 맞기는 맞나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입체적이고 화려하다.

하늘색을 가장 좋아한다는 안디는 결혼을 해서 동티롤의 리엔츠부근에 살고있다고 한다.

병원의 마사지치료사로 일하면서 결혼식 축하연주를 하기도 하고 늘 꿈을 꾼다고 한다.

그의 책은 어느 한군데에서도 자신의 장애에 관해 슬프다거나 좌절,분노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시키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통쾌하고 상쾌하다.

 

문화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렇게 훌륭한 아들을 키워내고 그의 꿈을 응원한 그의 부모님들을 존경하게되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책 말미에 있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산장에서 탁탁 불꽃이 튀는 화롯불앞에서 몸을 녹이던 중 어머니는 나에게 이야기한다.

 

"오늘 우리에게 있었던 일은 아무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돼. 그렇게 했다간 사람들이 우리를 가두려고 할거야. 앞이 보이지 않는 아들과 함께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한 상황에서 무책임히게 행동한데다가 환호하기까지 했지. 그건 너무 지나쳤어. 아이고. 안디야. 너와 함께 했던 미친 짓들로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것 같구나. "

 

지금 나는 어머니의 선수를 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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