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제 괜찮다.
고 3이 되어 기상시간이 더 빨라져 5시 전에 일어나는 딸.
아침밥은 급하지않게 꼬박꼬박 챙겨먹으니 그시간까지 계산에 두고 일어나는 딸이다.
아침을 먹는 동안 나누는 모녀간의 대화는 즐겁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늘 밝은 웃음을 주는 딸이기에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아침을 먹는 30분정도가 하루중 유일하게 단둘이 서로를 독점하는 오붓한 시간이라 귀한 줄은 알지만 이제 3학년이니 잠을 좀 더자고 밥을 좀 빨리 먹었으면 싶기도하다.
그런데 꼭 그이유뿐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딸아이와의 아침시간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마음에 감기가 확실히 들어서 식구들 끼니챙겨주기도 귀찮아진 것이다.
어느 날, 딸아이가 자기 친구의 페이스북 사진을 보여주며 투정을 했다.
이제까지 남의 밥상을 부러워해 본 적이 없건만 요즘의 자신은 이런 친구네 밥상사진이 너무 부럽다는 것이다. 친구네 저녁상은 새우튀김과 연어회등 손님상처럼 떡벌어진 한상이었다.
그 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엄마는 왜 요새 이런 맛있는 걸 안해주느냐는 어리광어린 투정속에 눈물까지 보이는 딸아이였다.
"엄마가 요즘 이상해..."
"어떻게 이상한데요?"
"아마도 우울증같애. 모든게 다 심드렁하고 무기력하고 그렇네..."
"엄마, 엄마도 음악을 좀 들어봐. 나도 마음이 울적할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좀 풀리더라고."
이번 겨울에는 엄마 힘들다고 설거지도 자주 도와주었고 늘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뽀뽀세례도 멈추지 않던 딸을 생각하면 내가 빨리 마음을 추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조금만 신경쓰면 이런 아침을 만들 수 있다.
고기를 너무 좋아하고 날마다 야자를 하면서도 토요일,일요일까지도 학교에 가다보니 엄마표에 굶주려있던 아이를 위해 겨우 움직여보았다.
새벽6시에 먹는 밥이지만 이정도는 게눈감추듯 뚝딱 해치우는 딸아이는 이 사진들을 자기 페이스북에 올려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ㅎㅎ
엄마가 못해주는 것에 대해 불평하기보다 먼저 마음을 쓰고 먼저 웃어주는 딸.
그런 딸에 비해 나는 우리 엄마에게 어떤 딸이었는지?
오늘은 친정엄마의 건강검진 날이었다.
아버지도 없이 혼자 병원을 이리저리 다니실 것을 생각하니 나라도 가봐야할 것 같아 아침부터 서둘렀다.
그리고 이왕 병원에 간김에 신경정신과에 들러 우울증 상담을 하고 하루에 한알 먹는 약을 처방받았다.
정신과라니 좀 꺼려지지만 아직은 초기인데다 이대로 방치했다가 식구들에게 더이상의 피해를 주는 것만은 막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나도 볼일을 보았고 엄마의 건강검진이 다 끝나니 봄볕이 따사롭다.
"우리 뭐 맛있는거 먹을까?" 하며 엄마의 팔장을 끼고 거리를 걸었다.
엄마도 역시 혼자서는 도무지 음식을 해먹게 되질 않는다고 대충 드시는 눈치이다.
그나마 아버지가 병환중일 때는 아버지의 입맛을 살리기 위해 하루에도 몇번씩 마트를 오가셨는데 당신의 입을 위해서는 그런게 안되는 엄마.
마침 수영을 다니는 문화센터에 버섯샤브집이 괜찮다고해서 좀 먼거리지만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가 문득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난 이제 괜찮다."
검진을 받느라 대기실에 앉아 정신과 다녀온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약을 먹으면 좋아지기도 하고 중독성이 없어서 2~3개월만 먹고 끊으면 된다고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했었다.
이제 좀 신경이 무뎌져서 내가 아이들한테 화를 덜내게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위안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엄마는 이미 보이지않는 곳까지도 마음쓰고 계셨던 것이다.
"난 이제 괜찮으니 내걱정일랑 그만하고 이제부터는 네생각만 하고 살아라.
돌아보면 나처럼 주변이 편하고 행복한 노인도 없더라. 그러니 이제는 엄마걱정 안해도 돼."
나는 엄마한테 하나같이 살가운 딸도 아니고.......
나는 하나한테 엄마처럼 푸근한 엄마도 아니고.......
그런데 나는 복많은 엄마이고 딸인 것이다.
아직 약은 안먹었고 약효과도 1~2주후부터 나타난다지만 오늘 저녁엔 상혁이한테 너그러웠다.
상혁이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같이 웃으며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니 아이가 이쁜짓만 한다.
애교많고 배려심 많은 아들덕에 저녁시간을 편히 지내고보니 엄마생각이 난다.
지금 이밤에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