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대처하는 딸의 자세.
방학동안 학교폭력으로 상처받은 학생들의 이야기가 뉴스시간마다 심심찮게 나오더니 개학이 되고 초등학생인 아들녀석이 '학교폭력 사태 전수 조사 설문지'라는 긴제목의 설문지를 가져왔다.
집에서 작성하고 우체통에 넣으라고 하셨다며 비장하게 설문지를 대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살짝 불안감을 느낀 엄마는 '설마, 우리 아이도?' 머리가 복잡해졌다.
"상혁아, 혹시라도 그런 사실을 알거나 당했다면 사실대로 엄마, 아빠한테 얘기해야 돼.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니까 최대한 너를 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거거든? "
"에이~, 엄마. 우리 학교에는 그런 아이들이 없어요. 그러니까 걱정마시라고요!! ^^"
아이의 목소리에서 드러나는 자신감에 조금은 안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설문에서 아들녀석은 한참을 고민하는 눈치이다.
그러더니 간단한 몇마디로 마무리를 하고 봉투를 봉하고는 우체통으로 ~.
아들녀석의 설문지를 부치고 난 며칠 후 우체통에 익숙한 봉투가 들어있다.
우리 집 주소를 쓴 필체로 보아서는 우리 딸이 쓴 것인데 보내는 곳은 교육개발원이다.
나중에 집에 돌아 온 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들녀석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달리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는 혹시라도 괴롭히는 아이들이 이 설문지를 가로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회신봉투를 넣어 각자의 집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이런 설문조사를 하게 된 교육개발원의 변이 있다.
여기서 한가지 꺼림칙한 것이 12년 2월 15일까지 우편으로 발송해 달라는 제출 방법이다.
학교 폭력은 때를 가라지 않고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한시적으로 실시하는 형식적인 설문조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설문내용에 있어 무언가 심층적으로 접근하는 질문이 있을까싶어 살펴보았더니 초등학생의 그것과 똑같은 질문지이다.
학교폭력의 정의를 생각해 본다.
여리고 여린 아이들은 아주 작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마음을 다칠 수 있고 그로 인해 생활이 무너져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설문지를 작성한 어른들은 위의 7가지만 학교폭력이라는 경계선을 미리 만들어놓고 시작한 것 같아 기분이 찜찜했다.
설문지에 적은 딸아이의 '별무이상'이라는 표시가 마치 모범답안처럼 들어온다.
그러나 모두 아시다시피 그저 공부에만 매달리고 책만 보아야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과연 얼마나 주변을 돌아보고 다른 친구의 괴로움에 귀를 기울일 수나 있을까?
뉴스에서 터져나오는 학교폭력의 실태에 대한 딸아이의 평소 반응은
정말? 정말 그런 일이 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마치 딴나라 일인양 설마에서 경악으로 변하는 정도이다.적어도 자신이 생활하는 반경내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내 친구중에는 그런 아이들이 없다고 안심하면서도 자신이 너무 자신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하게 된다는 딸이다.
마지막 설문지에 대한 딸아이의 답변이다.
교육청의 이런 설문조사가 딸아이가 보기에는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는가 보다.
비단 딸아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늘 그런 일이 있어왔지만 이번 겨울엔 학교폭력으로 괴로워하다 자살한 학생의 유서 한장이 모든 이들의 공분을 샀고 그로 인해 부랴부랴 나온 대책이 다름아닌 설.문.조.사.
이런 한차례 설문조사를 통한 실태파악으로 과연 어떤 대책이 나올런지 궁금하다.
또 학생들에게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방법을 적어달라니.
교육청의 전문가들도 어쩌지 못하는 방지대책을 평소 생각이 없다고 무시하고 영단어 한개나 더 외우라고 몰아세우던 학생들에게 고안해 보란다.
언제 우리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었는지, 별을 보고 등교하고 별을 보고 하교하는 학생들의 가슴에는 어느 새 커다란 멍이 들었고 아파도 병원 갈 시간이 없다는데 당장 폭력앞에 노출된 피해 학생들은 과연 언제쯤 차분히 앉아서 글을 쓸 기운이 날런지.......
이번 설문조사가 숫자로 통계가 나오면 그것이 다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싶다.
아무리 익명이라지만 이런 설문지를 대하고 마음을 열 피해자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바라는 교육행정.
폭력이나 왕따가 출발점이 아닌 다른 곳이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전국의 초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설문조사의 답변을 시간이 없다고 대충 흝지말고 행간의 의미까지도 읽으려 노력하는- 낮은 자세에서 눈높이를 맞추는 그런 마음으로 설문지를 개봉해 주시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