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문을 나서며
어제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았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내가 아는 이름, 같이일했던 팀원들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나보다도 옆의 하나가 더 빨리 알아채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나는 그전에 영화를 보면서 이미 이 장면은 ***의 그림같은데...하면서 짐작을 하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의 그림이라는 것은 배우의 연기와 같아서 특정인의 개성이 묻어나오는 법이다.
참,사람의 인연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남편이 명필름의 몇몇작품에 출여한 계기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와 부군 이은씨를 소개받았는데 그 이은감독이 '해서뜬'의 감독을 맡았었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와 같은 서울무비에 근무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업계에 근무를 했던 사람들은 모두들 꿈이 있다.
당시 이은감독도 국내 장편을 만들어보겠노라는 꿈을 밑바닥에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어서 투자자입장에서는 계속되는 투자와는 별개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대단한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결국 이은 대표가 일을 내고 만 것이다.
실사영화로 갈고 닦은 노하우와 애니메이션 제작환경을 잘알고 있는 투자자, 그리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있었던 그 동안의 인맥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면서 이런 성공을 이루어낸 것 같다.
오승윤감독도 우리 팀이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을 할당시 서울무비 기획실에 있었으니 어느 한사람 인연이 소중하지 않겠는가.
어찌 되었든 지난 번의 안재훈 감독도 그렇고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무비 출신인 것이 우연일까?
만약 내가 아직도 원화맨으로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면 이번 작품에 참여를 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나왔는지 하나의 눈치가 빤하다.
"엄마, 다시 일하고 싶지? 그런데 어떻게 해. 엄마성격으로는 보험아줌마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해."
그래, 나도 그래. 만약 당장 일을 해야한다면 마트의 계산대도 내게는 버거울거야.
무슨 일을 해야하나?
아직 현역에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고 나오는 길이라며 요즘 바쁜지, 일은 많이 있는지,질은 어떤지 물어보다가
나도 다시 한번 해볼까하며 운을 띄웠다.
후배는 너무 잘됐다며 지금이라도 당장 오면 일거리를 주겠다고 한다.
"하하.오늘은 무리야."
"그럼 내일은 어때요? 선배님. 오신다면 미리 준비를 해놓을게요."
"아무리 그래도 당장 회사에 앉아서 일을 시작하기엔 좀 무리지. 아쉬운대로 집에서 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줄 수 있을까?"
"물론이죠. 일단 언제 나오실건지 얘기나 해주세요. 사실 선배님 집이 멀어서 말을 못꺼내고 있었는데
이제 제마음이 다 든든하네요."
전화를 끊고 하나에게 찡긋해 보였다.
엄마한테 일을 주겠다는데? 해볼까?
당연하지 엄마. 여자도 일이 있어야 한대.
일을 다시 해볼까 생각을 하면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는데 저녁이 되니 예전 스케쥴때문에 애를 태우던 기억도 덩달아 되살아났다.이래가지고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겠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