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살 만지기(companion )

삼식이와 이쑤시개

hohoyaa 2011. 6. 30. 16:42

어제 무릎팍도사에서 차인태 아나운서를 보았다.

차인태 아나운서라하면 우리 연배라면 모두가 알만한 이로 그이름도 유명한 '장학퀴즈'의 사회자였다.

정말이지 깎아놓은 밤처럼 생긴 이미지가 자칫 차가워 보일 수도 있지만 아주 조금 미소만 지었을 뿐인데도 얼굴가득 벙글어지는 웃음기에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는 매력이 있었다.

 

방송중, 차인태 아나운서는 암투병중인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을 삼식이라고 소개했다.

요즘은 집에서 밥먹는 남편을 영식님,일식이,이식놈,삼식이 새끼로 분류한다나~.

비슷한 우스갯말을 친정어머니로부터 들어서 알고는 있었으나 그 반듯한 차인태아나운서의 입으로 그런 말을 들으니 일종의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졌다.

 

영식님은 집에서 밥을 한끼도 안먹는 0식남으로 님까지 붙여 존경을 표하는가 보다.

일식이는 하루 한끼만 먹는 1식이라 평범하기 그지없게.

이식놈은 하루 두끼를 집에서 먹는 남편으로 약간은 미운지 놈자를 붙였다.

삼식이새끼는 3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남편으로 새끼는 하루세끼와도 일맥상통. 여기서 터졌다.

얼마나 웃었는지 옆에서 남편이 그렇게 좋으냐고 묻는다.

ㅎㅎ 우리집 남편도 삼식이새끼이다.

 

연극배우와 결혼을 하고보니 날이면 날마다 나가야하는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객지생활을 오래한 후 결혼한 남편은 가정의 안락함이 좋은지 밖으로 도는 형이 아니었다.

결혼초 한동안은 무쇠솥에다가 맛있는 밥을 해주겠다고 더운여름을 가스불앞에서 보내다가 난생처음 땀띠가 다 났었다.  그래도 처음엔 두식구를 위한 밥짓는 시간이 재미있었다.갓지은 따뜻한 밥을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찬밥을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때문에 점차 밥짓는 의식이 불성실해지기는 했지만.

결혼을 하고 부엌을 드나들다보니 선택권없이 하루 세끼를 아내의 손에 의지해 얻어먹는 것도 고역이겠지만 날마다 같은 사람,같은 부엌,빤한 식재료로 하루 세끼를 챙기다보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취하면서부터 몸에 배어버린 아침굶기신공이 있었던 남편과 아무리 꼭두새벽에 일어나더라도 밥한공기는 뚝딱 해치우고 집을 나서곤 했던 나.  극과 극인 서로의 습관은 결혼을 하고서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아침잠이 많은 남편을 깨우지 못해 나는 나대로 아침을 먹고 남편은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겸 점심을 먹는다.

아침을 이미 먹은 나는 남편과 같이앉아 점심으로 먹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고 그렇다고 남편더러 빈속에 기다리라고도할 수 없으니 남편의아점이후 나는 점심을 먹었다. 남편이 아점을 먹었다고해서 하루 두끼로 끝나는가하면 그게 아니다. 사람의몸은 하루에 세끼를 반드시 먹게끔 만들어져 있기에 채워지지않는 헛헛함은 간식이나 늦은 저녁으로 대신하게 된다.

그나마 큰딸 하나가 3살 때부터는 내가 직장생활을 했으니 망정이지 안그러면 아마 아침밥가지고도 부부싸움을 여러번 했을 것이다. 출근을 하면서부터는 남편의 기상시간에 상관없이 나는 나대로 간단하게 밥을 먹고(혼자서도 잘먹는다. *^^*) 집에 있을 남편과 딸아이를 위해 밥과 함께 국이나 찌개를 준비해놓고 출근을 했다. 늘 스케줄에 쫒기는 바쁜 직장이라 저녁늦게나 돌아오는 날들의 연속이었으니 중간중간 친정엄마가 많은 신경을 써주셨다. 참 고마웠던 것이 사위가 놀고있어도 미워하기는 커녕 가장으로서의 그 마음이 어떻겠느냐고 한번도 딸인 나에게조차 흉보는 일이 없으셨다. 

 

내 팔자가 그런지 직장을 그만둔 지금은 남편을 길들여 아침을 나와 같이먹게 만들었는데 그래도 역시 시간차가 나는 아이들 등교시간때문에 아침만 3번을 차리게 된다.

학교에서 바둑학원까지 다녀오는 초등학생아들은 오자마자 간식이 아니면 밥이라도 조금 먹어야 기운을 차리니 조금 먹여놓고, 저녁시간이 되면 당연히 저녁을 먹고 한숨 돌리고나면 설거지가 산만큼 쌓여있다.

부엌일을 좀 하고나면 늘 어깨며 팔이 아파 식구들이 번갈아 주물러주는데 왜 이렇게 부엌일이 많은지 요즘 곰곰히 따져보았다.

문제는 삼식이 남편도 아이들탓도 아닌 내탓이었다.

일단 나만의 부엌에 남편이 도와주러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가끔 싸우기도 할정도로 가사일에 있어서 협동을 하지않는데 몸은 좀 힘들지라도 혼자하는 편이 마음이 편해 고치려해도 잘고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반찬도 일주일치를 미리 장만해 먹는것은 상상도 할 수없고 늘 그때그때 새로해서 먹는걸 좋아하다보니 반찬 몇가지 만들고나면 부수적으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와 큰그릇들, 상마다 새로 나오는 국그릇과 반찬그릇들. 그리고 하루에도 몇번씩 씻게되는 컵들...설거지거리가 정말 많이 나온다.......

TV에서 보면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통 그대로 식탁에 올려놓고 먹는 집도 있던데 그런 것을 보면 저러면 설거지거리가 확실히 줄겠다하면서도 따라하게는 안된다.

여자의 고충을 잘안다고 자부하는 남편이기에 점심 한끼는 밖에서 해결하자고 동네 한바퀴를 돌거나 영화를 보러가거나하지만 그도 허구헌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원래 어려서부터 매식을 하지 않았던 습관탓에 음식점에서 만족하고 나오기보다는 혹시나하고 들어갔다가 역시나하고 속았다는 생각이 먼저드니 그저 고추장에 열무김치넣고 비벼먹어도 집밥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늘은 뭐해 먹지?' 하는 말을 입에 달고사는 나와 '꼭 하루 세번을 먹어야하나? 안먹고 살 수는 없을까?' 라는 말로 은근 미안해하는 남편.

어제 삼식이시리즈를 들어서인지 오늘 점심은 삼식이가 하겠다고 했다.

물론 평소에도 부엌일은 잘도와주려고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내가 양보를 해서 점심을 맡겼다.

메뉴는 물냉면.

남편이 부엌에 있어도 마음 편할 수 없는것이 여자의 숙명이라 냉면을 준비하는 남편옆에서 오이라도 채썰고 상이라도 차려야 덜 불안하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오늘, 답답한 마음에 새벽부터 부엌청소를 하느라 이쑤시개를 들고 가스렌지며 싱크대구석구석을 후벼팠다.

부엌은 어제의 부엌인데 이쑤시개덕에 물때,기름때가 제거되어 보이는 곳마다 후련하게 느껴진다.

모처럼 냉면을 해주겠다는 남편에게 음식을 하는 것도 힘들지만 음식한 뒤,먹고난 뒤의 큰그릇 설거지가 더 골치라고 했더니 냉면삶은 냄비며 냉면을 헹군 체등등 큰그릇설거지도 해놓았더라.

금남(편)의 공간에서 마음껏 소꿉놀이를 한 남편에게 "우리 삼식이 잘했쩌여~." 칭찬해줬다.

지금 남편은 씻고있다.

삼식이새끼에서 이식놈으로 승격하고싶어 저녁약속을 잡았단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