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예종석의 '밥집', 그리운 맛을 찾아서

hohoyaa 2011. 4. 18. 20:08

 

 

한겨레신문에 '예종석의 오늘 점심'이라는 칼럼을 쓰는 예종석교수가 밥집이라는 책을 냈다.

평소에도 '오늘 점심'을 읽다보면 지금은 고인이 된 백파 홍성유의 맛집기행이 떠오른다.

사실 우리 가족이 가끔씩 찾는 음식점중에도 백파가 인정한 맛집이 있기에 이번 '밥집'이라는 책에 내심 구미가 당겨 리뷰어 신청을 했더니 타고나길 먹을복이 있어 그런지 덜컥 당첨이 되었다. 

책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탐색전을 벌여본다. 추천평을 쓴이가 두산의 박용만회장이다.

겉만 보고 우리네 서민생활과는 좀 거리가 있지 않을까했지만 개중에는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 밥집과 메뉴도 여럿있을 것이라고 '오늘 점심'을 미루어 짐작하고는 책을 펼쳐본다.

 

요즈음 인터넷에 뜨는 맛집이라해서 클릭을 해보면 주로 혀가 마구 굴러가는 서양재료와 더불어 듣도보도 못하던 외국이름이 붙은 음식,그리고 역시나 사람의 눈부터 현혹시키는 상호가 태반이다.

개인적으로 퓨전요리라는 것에는 그닥 신뢰가 가지않고 식재료의 맛을 가리는 진한 양념도 별로라하기에 간혹 외식이라도 하게되면 우리 한국인의-어쩌면 서울사람의- 정서에 맞는 단순깨끗한 맛을 내는 음식점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밥집이라는 단순한 제목은 정말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밥집들이 수두룩하게 있을 것도 같다는 기대를 품게도 했지만 책을 덮고난 지금까지 불행하게도 예교수가 칭찬한 맛집엔 아직 가볼 기회가 없었다.

명동돈가스집이 있긴 했으나 내가 갔던 그곳과 예교수가 추천한 그집의 위치가 좀 달랐다. 오장동 함흥냉면집은 내 기억에 굉장히 불친절한 곳으로 각인되어 있기에 그또한 미심쩍다.

나른한 봄날, 다시 한번 명동으로,오장동으로 그리고 또다른 새로운 맛집으로의 여행을 꿈꾸어본다.

 

낼모레 부모님께서 목포에서 올라오시기에 시간만 허락한다면 용산역앞의 역전회관에라도 함께 모시고 가보고 싶긴하다. 역전회관은 뜨내기가 많은 역전이라는 지리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변함없는 맛을 유지하고 있는 전라도식 밥집이라고 한다.

내 구미가 당기는 메뉴는 선지해장국.

해장국이라는 간판을 달고 선전하고 있는 맛집도 많지만 대부분이 얼큰하다못해 아주 매웁게 간을 해서 혀가 다 알알하니 무슨 맛인들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어릴 적, 동트기전 엄마와 목욕을 다녀오다가 동네어귀 고깃간앞에 놓인 시뻘건 선지를 보면 당장 사서 선지국을 끓여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고깃간이 문을 열고 엄마가 사온 선지에 스지와 함께 시래기가 들어가고 된장이 들어가면 구수한 맛이 일품인 엄마표 선지국이 탄생을 했다.

국자로 크게 덤풍덤풍 떠담은 푸짐한 선지.

자유분방한 모양의 선지와 특유의 향, 그리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그 쫄깃함이라니.......

깍둑썰기로 나오는 요즘의 선지와는 신선함에서부터 그 격이 다르다.

전라도출신인 남편의 말을 듣건대 그 곳에서도 된장과 시래기를 넣어 선지해장국을 끓였다하니 반드시 용산역앞 역전회관에 가서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마구 샘솟는다.

 

역전회관에서부터 일식의 명가,뉴욕의 아침을 여는 빵과 이탈리아의 정감있는 파스타집에 이르기까지 책속에 있는 음식의 종류는 다양하고 미각의 지존만이 느낄 수 있는 격조 높은 음식이 있는가하면 대대로 계승된 한국인의 입맛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다분히 토속적인 음식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어쨌든 밥집은 이름그대로 특별한 요리로써가 아닌 출출한 위장을 달래고 혀를 만족시킬 한끼 밥으로 친근하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음식이 있는 책이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 길을 떠나는 미식여행가들이 진정 그리워하고 찾고자하는 맛은 유명레스토랑에서도,

바다건너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읽는내내 했다.

우리는 늘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어머니의 밥처럼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는 정성과 함께 객인 우리를 식구처럼 허무없이 받아 줄 그런 밥집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친절한 음식점엘 가면 내 돈을 내고 먹는 음식인데도 거지취급받는 것같아 두고두고 분한 마음이 드는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요리사들의 진정이 딱 묘사한 정도만 된다하더라도, 사람을 가리지 않고 늘 한결같다면 어린시절 아랫목에 묻어둔 공깃밥에서 느껴지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빠른 발길속에서 도도하게 옛맛을 지키는 그들이 있어 우리는 행복하지만 우선은 나의 부엌에서조차 밥짓는 일을  귀찮아하고 있었기에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생명이 움트는 봄날, 그저 봄동한단만 사다가 겉저리양념을 해서 밥상에 올려보니 식구들 얼굴이 환하다.

산해진미가 아니어도 제철 음식만 제때에 올릴 수 있다면 당분간은 '밥집'생각이 안날 것이다.

그렇다해도 간혹 나들이겸 밥집기행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을 꺼내게 될 것이다.

책에 나오는 맛집들을 다 가볼 수는 없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어쩌다 낯선 곳에 가게 된다면 우선 이 책부터 펼쳐서 전화를 걸게 될 것 같다.

소개되는 모든 음식점의 위치와 전화번호가 적혀있어 단박에 맛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과연 내 입맛이 예교수와 더불어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젊은이들의 현란한 음식평보다는 예교수의 진솔한 표현을 믿고 싶다.

더불어 책의 말미에는 뉴욕에서 만난 열두명의 셰프와 그들의 경영마인드가 녹아있는 맛집도 소개해 놓았다. 미국에 있는 지인에게 이 음식점들을 소개해주려고 한다.

 

 


밥집

저자
예종석 지음
출판사
SOMO | 2011-03-25 출간
카테고리
여행/기행
책소개
음식을 알면 세상의 이치가 보인다!『밥집』은 단순히 맛집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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