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시계태엽 오렌지, 이것이 청춘인가?

hohoyaa 2011. 3. 24. 22:35

 

 

직장 후배가 들고 다니던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제목을 처음 접하던 날,

별로 읽고싶단 생각이 안드는 책이었다.

오렌지라는 생물에 시계태엽이라는 차가운 무생물을 꽂아버린 그 느낌이 몸서리나게 싫었다.

내용은 알아보지도 않고 말이다.

 

엊그제에도 중학생들이 원정살인을 한 사건이 뉴스로 나왔다.

 

검찰에 따르면 A군 등은 지난달 22일 오후 7시10분께 중학교 1학년생인 지모(13)군을 대전역 인근 동구 삼성동의 한 건물옥상으로 데려가 휴대전화를 뺏고 주먹과 각목 등 둔기로 집단 구타해 지군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3명은 지군이 실신해 쓰러진 뒤에도 발로 머리를 짓밟았으며, 숨진 지군의 시신에 불을 놓아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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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일부 불량 청소년들이 뚜렷한 죄의식 없이 마치 게임을 하듯 강도살인을 저지른 대담하고, 비윤리적인 잔혹한 범죄였다"며 "일부 피의자에게서는 반사회성과 행동통제의 어려움 등 잔혹범의 징표인 '사이코패스' 성향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시계태엽 오렌지를 읽고보니 이 사건에서 알렉스와 그 패거리를 만날 수 있었다.

아무이유없이 그저 재미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약자를 짓밟는 그들의 나이가 딱 이 아이들 또래이다. 요즘들어 부쩍 사이코 패스라는 용어도 많이 나온다.

범죄심리학적으로 딱부러지게 정의할 수 없는 사건에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를 갖다 붙이면 모든 것이 설명되어진다는 식으로 너무 쉽게 한 인간을 단정짓는 것 같아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이미 무감각해진 그들의 양심은 과연 예방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코로바 밀크바에서 희희낙낙하는 알렉스와 그 패거리들의 하는 양을 보고 지금의 사회상을 보면 작가인 '앤서니 버지스'가 제대로 추측을 했구나 싶지만, 과연 문명이 발달하고 산업화가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청소년 범죄는 필연적일 수 밖에는 없는가. 

작품해설을 보면 조건반사를 통해 범죄를 혐오하게 만드는 루드비코요법을 받고 교도소에서 풀려난 알렉스를 비유해 인간의 자유의지조차 국가가 통제하려는 음모를 고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좀더 달리 생각해 보고싶었다.

 

열매                       오세영시인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석
한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제 지하철 역에서 보았던 시 한편에서도 알렉스를 만날 수 있었다.

끓는 피를 어쩌지 못했을 10대- 알렉스의 둥근 열매에 온기없는 시계태엽을 비수처럼 꽂은 이는 누구인지

억지스럽지만 약간 삐딱하게 생각해 보았다.

외부의 힘에 의해 태엽이 감겨 선택의 자유마저 빼앗긴 인간으로 전락해 버린 알렉스는 그 이전에 이미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꿈틀대는 그 무엇을 차갑고 잔인한 폭력성으로밖에 표현할 줄 몰랐던 상처받은 오렌지였다.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아 나무에 달려있던 둥근 열매는 현대산업사회를 상징하는 나사 한개로 운명의 조롱을 당해 그 본질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처음에는 알렉스와 패거리들의 행동을 도저히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점차 그들에게 동정심이 일었다. 그들의 청춘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내가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극악무도한 그들도 청춘이라는 심장의 두들김이 잦아들면서 가정의 안락함을 꿈꾸게 된다.

그리고 아마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며 그것이 청춘이다,아프니까 청춘이다 하겠지.

 

영화로는 볼 생각도 안했지만 지금이라면 한번쯤 보고싶다.

 

 

 


시계태엽 오렌지 (세계문학전집 112)

저자
앤서니 버지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5-01-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앤서니 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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