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헨리8세와 여인들1,2> 딸들아, 공주가 되고 싶니?

hohoyaa 2011. 3. 18. 22:52

유럽왕실의 역사는 근친의 역사라고들 한다.

왕족은 왕족끼리만 결혼해야한다는 혈통주위에 입각해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정치적 혹은 종교적 권력입지을 위해 유럽 각국은 결혼조약으로 그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곤했다.

세계사를 배우던 중학교 시절 그 복잡하고 비슷비슷한 이름들에 궁금증이 일면서도 호기심을 채울 수없어 답답했는데 동우님의 책선물 <헨리8세와 여인들1,2>로 뒤늦게나마 소원풀이를 했다.

 

 

헨리8세는 영국국교회의 수장으로, 6명의 왕비을 취한 인물로, 영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와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은 왕으로 유명하다.

매년 크리스마스에 구세군 자선냄비를 내거는 성공회의 기원이 헨리8세가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아라곤의 캐더린 왕비와의 결혼을 무효로 하기 위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세계사시간에 배워서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아라곤의 '카탈리나'(캐더린의 에스파니아식 발음)로 알려진 헨리8세의 첫번째 왕비 캐더린은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을 후원한 에스파니아 이사벨라 여왕의 딸이었다.

당시에는 프랑스와 에스파니아가 유럽의 핵심세력이었다.

정통 세습이 아닌 왕위찬탈로 잉글랜드왕이 된 헨리7세는 자신의 아들을 에스파니아 왕실과 결혼시켜 프랑스를 견제하고 새로이 연맹을 구축하려 했다.

 

 

캐더린은 3살 때 이미 헨리의 형인 아서와 정혼한 사이로서 잉글랜드와 에스파니아의 저울질로 인해 13년간이나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캐더린을 잉글랜드로 보내는 결혼협약을 맺게된다.

그 과정에서 공주를 놓고 벌이는 왕족들의 치사한 지참금싸움을 보고 있노라니 기가 막혀 말도 안나온다.

불행하게도 헨리7세의 장남 아서는 결혼 후 몇 달만에 요절을 하고 미앙인이 된 캐더린을 놓고 양국의 왕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형사취수라는 편법을 선택한다.

처음엔 헨리왕자도 다섯살이나 많은 형수 캐더린을 흠모했었기에 은근 이 결혼을 바라고 있었으나 결혼 후에는  캐더린의 고집스러운 성격과 더불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정나미가 떨어져버린다.

헨리8세와 캐더린과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 딸이 나중에 '블러디 메리'라 불리우는 잉글랜드 최초의 여왕인 메리1세이다. 아버지인 헨리8세가 어머니와의 결혼을 무효화시켰으니 메리는 하루아침에 공주라는 신분에서 사생아로 전락을 하게 되고 엄마를 닮아 고집이 센 그녀는 아버지가 권하는 결혼무효서류에 서명하지 않아 풍전등화의 위험앞에 내몰린 적도 있었다. 아버지에게 밉보여 죽은듯 지냈던 메리는 덕성스러운 마지막 왕비 '캐더린 파'가 복권을 시켜주기 전까지는 왕위 계승서열에서도 제외되었었다.

또 헨리의 스승이면서 유토피아의 저자였던 인문학자 '토머스 모어'도 같은 이유로 단두대에 올랐다.

 

 

마침 그 때 눈에 띈 사람이 '앤 불린'이다.

요부 '앤 불린'은 정부로 만족할 여자가 아닌 잉글랜드의 왕비가 되고 싶은 야심이 많은 여자였다.

그녀에게 사로잡힌 왕은 곧 자신의 첫번째 결혼이 적법하지 않았음을 종교재판소에 상정하였으나

신성로마제국의 카를5세가 캐더린의 조카였기에 로마카톨릭의 교황 클레멘스7세는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시간을 끌었다.

이에 헨리8세는 로마 카톨릭에서 떨어져나와 스스로가 영국국교회의 수장이 되어 캐더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만든다.  이 기간이 너무 길어 앤도 어느새 나이가 들고 실제로 왕비자리에 올랐을 때에는 헨리가 이미

그녀에게 질려버렸다.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앤 불린은 신교도였고 헨리8세 위에 군림하려고 했기 때문에 간통죄를 뒤집어쓰고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한다. 열렬히 사랑했던 앤에게 헨리8세가 해준 마지막 선물은 그녀가 고통없이 죽도록 프랑스에서 최고의 칼잡이를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앤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은 후에 엘리자베스 1세로 영국의 문예부흥을 이끌어낸 처녀 여왕이다.

 

 

헨리8세의 마음이 옮겨간 세번째 부인은 '제인 시모어'로 제인은 헨리8세가 가장 사랑한 왕비였으며 아들을 낳고 산욕열로 죽었다. 헨리는 제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던듯 하다. 생전에 자신의 가장 이상적인 여인은 제인이었다며 자주 회상하였고 사후에는 유언대로 진정으로 사랑하던 그녀의 옆에 나란히 묻혔다.

제인의 아들은 에드워드6세로 우리가 아는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아마도 병약한 그의 모습과 헨리8세가 죽으면서 10살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는 에드워드를 생각해 섭정을 지정했기 때문에 왕이 되어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환경 탓에 그런 동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제인을 잃고 크게 상심한 왕에게 크롬웰은 클레브스공국 안네공주와의 혼사를 거론한다.

아들을 낳아 뒤를 잇겠다는 절박함과 함께 희대의 바람둥이이기도 한 헨리8세는 안네의 얼굴을 미리 확인하고싶어 초상화가까지 동원하지만 궁정화가인 홀바인은 예술가의 눈으로 안네의 겉모습이 아닌 품위와 내면을 과장해서 표현했다고 한다. 영국에 도착한 안네공주의 얼굴을 본 헨리8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앞으로도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여자라고 했다. 초상화를 보면 그다지 박색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의 기준으로는 졸린듯한 반쯤 내려앉은 눈꺼풀이 치명적이었던 듯 하다. 더구나 프랑스나 잉글랜드와는 달리 보수적인 공국에서 자란 그녀는 헨리가 자신을 소박맞힌 줄도 모르고 한침대에서 자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생기는 줄 알고 있을 정도로 순진했다고 한다.

클레브스의 궁에서 예의범절과 함께 수준높은 교육을 받은 안네공주는 영어가 서툴러 말은 잘 통하지 않았으나 자기 이전의 왕비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고 있기에 드러내놓고 헨리8세에게 대적하기보다는 순순히 이혼을 해주고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댓가로 안네는 여섯 왕비중 가장 평탄하게 오래 살았다. 잉글랜드를 좋아해서 굳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잉글랜드에 적응해 헨리8세가 남긴 자식들의 공경을 받았다.

 

 

헨리가 가시없는 장미라 칭송했던 다섯번째 부인은 '캐더린 하워드'로 앤 불린의 사촌이었다. 그녀야말로 권력에 눈이 먼 친척들의 욕심에 이용당해 왕비가 되었지만 배움이 없고 지혜롭지 못했기에 결혼 전 난잡했던 사생활이 빌미가 되어 단두대에 올랐다. 가장 짧은 기간동안 왕비자리에 있었던 그녀는 처형되기 마지막 날 밤에 단두대를 방에 가져와 목을 올려놓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헨리8세의 마지막 왕비는 '캐더린 파'라는 미망인이었다.

가장 지헤롬고 덕성스러운 캐더린은 책도 내고 종교적 토론을 즐겨해 헨리8세의 사랑을 받기도 했으나 왕으로 하여금 자신만큼 똑똑한 여자를 인정해야한다는 자괴감마저 들게 한 왕비였다.

보수파에서 왕비를 제거하기 위해 헨리8세의 의심많은 성격을 꼬드겨 체포직전까지도 갔었으나 특유의 기지로 아슬아슬하게 죽음의 덫을 피할 수 있었다.

그녀는 헨리8세가 3번째 남편이었고 헨리8세가 죽자 헨리를 만나기 전 사랑했던 연인 '토머스 시모어'와 재혼했다. 토머스는 제인 시모어의 오빠였으며 잘생긴 외모를 지녔으나 속이 빈사람이었다는 평이 있다.

그래도 역시 남자인지라 왕이 죽은 후 출세를 위해 왕의 둘째 딸인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을 당하고 차선책으로 늙은 왕비 캐더린과 결혼한다.

캐더린은 영리한 엘리자베스를 특히 아끼고 좋아해서 자신의 집에서 시녀로 살도록 했는데 능글맞은 토머스는 곧 그녀에게 접근하였고 어린 엘리자베스는 그 상황을 즐기듯 연애감정이 생겼다. 결국엔 그것이 캐더린에게 발각이 나 쫒겨나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 상처때문에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을거라는 추측이 있다.

 

 

공주님.

요즈음 둘러보면 공주처럼 자라는 딸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반발때문인지 딸들에게 공주못지 않은 기회와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하여여자라고 얕잡아 보이지 않도록 정성을 다하면서도 그로 인한 신분상승을 꾀하는 경우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아는 공주는 세상을 호령하는 왕을 아버지로 두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을 하지만

헨리8세가 "평민도 자기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하거늘 왕은 그렇지 못하다."라고 한탄했듯이

공주의 결혼또한 동화속의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략결혼으로 어린아잇적에 배우자가 정해지기도 했는데 그 상대가 아버지만큼 늙거나 그 이상인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고난끝에 왕비자리에 오른 여인들 역시 득세하는 권력에 따라 단두대의이슬로 사리질 수도 있었으니

영리한 공주라면 왕자를 만나 결혼하는 즉시 최악의상황에 대비해야 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 비극적인 말로를 보면서도 여기 나오는 여성들은 또 부득불 왕비가 되려하니 그것이 여자를 이용하는 남자들의 욕심인지 여자들의 영욕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의 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1500년대의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라고 코웃음칠런지 모르지만

슬프게도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않는 남자들의 속성이 있으니 그것은 남자들이 자기보자 잘난 여자, 자기를 밟고 올라서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바라는 최고의 덕목은 덕성스러움과 지헤로움, 그것은 자신의 허물을 덮어주고 알면서도 아는 척하지 않는 것이며 바로 헨리8세가 왕비들에게 적용시킨 잣대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의외였던 것은 왕비나 공주의 시녀라는 자리가 당시 귀족가문의 여인들에게는 최고의

직업이었다는 것이다. 시녀자리를 얻음으로써 궁정출입을 하고 예법을 배우고 처신만 잘하면 왕의 눈에 들 수있는 자리이기 때문이었으리라. 

하다 못해 공작부인인 유부녀도 시녀로 들어와 공공연히 왕의 정부 노릇을 하고 사생아를 낳으면 남편에게 응당의 댓가가 지불될 정도로 궁정의 성풍속도는 문란 그자체였다고 한다.

근친의 댓가였을까.

헨리8세는 딸들에게는 나라를 물려줄 수 없다며 6명의 부인을 두었으나 결국 건강한 아들을 얻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책은 연대순으로 서술되지 않아 흐르듯 읽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읽고나면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듯 아귀가 맞아가는 이야기가 된다.

아쉬운 감은 있지만 단편적으로 알았던 영국사의 한페이지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헨리 8세와 여인들. 1

저자
앨리슨 위어 지음
출판사
루비박스 | 2007-08-17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매혹적인 왕 헨리 8세와 여섯 왕비들! 지난 천년간 최고의 스...
가격비교

 

 


헨리 8세와 여인들. 2

저자
앨리슨 위어 지음
출판사
루비박스 | 2007-08-17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매혹적인 왕 헨리 8세와 여섯 왕비들! 지난 천년간 최고의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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