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hoyaa 2011. 2. 28. 09:13

 

 

이번 겨울방학에 하나와 함께 읽은 책이다.

읽겠다고 책꽂이에 꽂아둔지도 한참 지났고,읽고난 후 독후감을 쓰자고 생각한지도 한참 지났다.

그래서 아마 옅어진 감상이겠지만 기록을 하자.

 

추리소설은 가볍나?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읽으면서 작가와 내가 머리싸움을 하는 것을 느끼며 결국엔 내가 속아넘어갔는지

작가가 억지로 꿰어맞추기식으로 승리를 강탈해갔는지

아니면 너정도는 아직 피래미다 할 정도로 내가 앞서 나가던지 늘 경쟁을 한다.

그러나 역시 내가 근사하게 속고 말았을 때의 기분이 더 좋다.

우리가 익히 아는 히치콕의 "이창(異窓)"의 원작자 율리히의 작품 "죽음의 신부"가 그렇고

이 "13계단"이 그렇다.

 

13계단은 사형수와 교도관,그리고 살인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법의 잣대로 심판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법의 테두리안에서 원치않는 살인을 수행하는 사람이 있다.

상해치사로 살인을 저지르고 가석방으로 나온 '준이치'와 이번 기회에 교도관생활을 청산하려는 '난고'.

그 두사람은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사건 당일의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살인범 '사카키바라'의 무죄를 증명해달라는 독지가가 내건 현상금을 받기위해 의기투합한다.

하루하루 자신의 감방문앞에서 발자국소리가 끝날까 봐 두려움에 떠는 '사카키바라 료'는 실낱같은

기억 한가지를 이야기해 준다.

그것은 어딘가에 있었던, 자신이 올라가고 있었던 계단이다.

료가 기억해 낸 계단은 이 작품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중적 의미로 쓰여진다.

 

공소권을 독점한다는 강대한 권력을 쥔 검찰은 동시에 형 집행까지 마무리지어야 할 책무가 있다.

특히 극형까지 가게 되면 엄정한 심사를 해야 하며, 그가 작성중인 사형 집행 기안서는 앞으로

5개 부서,13명의 관료 결재를 받을 예정이었다.

13명.

그 숫자에 눈살을 찌푸린 검사는, 사형 판결 선고 이후 집행까지 절차가 몇이나 되는지를 세어 보았다.

13가지였다.

13계단.

교수대의 대명사를 떠올리며 파견 검사는 얄궂은 감개에 빠졌다. 메이지 세대이후로 일본 사형제도사상, 13계단짜리 사형대가 만들어진 적은 없다. 유일한 예외로 전쟁 범죄자 처형을 위해 만들어진 스가모 프리즌 교수대가 있었으나, 그것은 미군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일본의 처형대는 단이 열아홉칸이었다고 하나,사형수가 게단을 오를 때 사고가 빈번해서 개량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눈가리개를 쓴 사형수 목에 밧줄을 건 직후, 바닥이 두 동강나며 지하로 낙하하는 '지하 교가식'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13계단은 뜻밖의 장소에 존재했다. 파견 검사가 의뢰받은 일은 지금 다섯 컨째에 해당되었다. 집행까지 앞으로 여덟 칸. 사형 확정수 사카키바라 료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한 칸 한 칸 사형대 계단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맨 위칸에 도달하기까지 약 3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작품을 읽으며, 아니 그 전에 우리나라 영화 '집행자'의 시나리오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무심코 읽어내려가던 시나리오에서 교도관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책꽂이에 꽂혀있던 '13계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집행자에서 나오는 사형을 집행했던 교도관과 앞으로 다가올 사형을 집행해야하는 신참 교도관.

난생 처음 사람을 ,미처 숨이 끊어지지 않아 버둥대는 사형수를 처형대 아래에서 죽어라하고 줄을 잡아당겨야했던 신참 교도관의 목메임, 그가 온몸에 뒤집어 쓴 것은 죽은 자의 오물이 아니라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살인자라는 멍에였다.

 

극악무도한 살인자를 극형에 처함으로써 또 다른 살인을 저질러야한다는 것의 부조리함.

나는 사형찬성론자도 반대론자도 아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잔인한 살인사건에 부르르 치를 떨면서도 '저런 나쁜 놈은 사형을 시켜야 해!' 라는

여론에는 섣불리 이견을 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사형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못하는 일개 소심한 아낙이다.

사형이라는 제도가 이미 뉘우칠만큼 충분히 뉘우치고 가장 선한 상태에 있을 때 극형에 처해지기에 모순이 있다는 인권운동가들의 주장보다는 가끔씩 접하게 되는 이런 작품들이 더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사형반대는 사형수의 인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살인을 수행해야하는 타인을 향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너나 나나 종신형이다."

편지를 다 읽고 난 난고는 중얼거렸다.

"가석방은 없다."

 

13계단은 범죄의 구성과 교도관의 안간적 고뇌,그리고 범죄자의 가족들이 당하는 고통을 어느 한 곳으로 편중되지 않게 균형있게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도 이 작품이 처음엔 무서웠는데 읽고나니 사형제도의 모순과 보호받지 못하는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생각나서 올린 독후감.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글로 옮길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경험도 독후활동에 들어간다고 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기에 기록으로 남긴다.

 

 

 

 


13계단(밀리언셀러 클럽 29)

저자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출판사
황금가지 | 2005-12-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형이 확정된 수감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교도관과 전과자가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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