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1인이기를 포기한 딸
작년부터 학교에 다녀오기만 하면
"엄마, 오늘은 ㅇㅇ가 스마트폰을 샀어. 더구나 걔는 시험도 못봤는데......."
"아, 못살아. 엄마, **알지? 우리 반에서 좀 논다는 애. 걔도 어제 스마트 폰으로 바꿨더라고 ."
그러면서 은근히 자기에게도 스마트폰이 있었으면~하고 압력을 넣던 하나이다.
그러던 것이 이번 겨울방학이 끝나고서는 부쩍 몸이 달아서 날마다 스마트폰 타령.
작년 여름 외할머니의 병실에 문병갔다가 초등학생인 외사촌 동생의 스마트폰을 보고는
입이 쩍 벌어져서 다물지를 못했다.
어떻게 고등학생인 나도 못갖는 스마트폰을 초등학생인 동생이 갖고 있다는 말이냐.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그 동생은 자기 전화가 이쁘지 않아 싫다고 한다며
아무리 자기가 이뻐하는 외사촌동생이지만 한대 때리고 싶더란다.
그야, 그 외사촌 동생의 아빠는 SK그룹 직원이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딱잘라 말해도
딸아이는 역시 부러운 마음과 함께 '왜 나만!!' 하며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친정의 우리3남매중 오빠는 참 고지식하다.
명색이 프로그래머이고 오빠역시 SK그룹 직원이지만 처음에 개통한 무전기같던 애니콜 핸드폰을
분실도 없이 이제껏 들고 다녔다.
사실 사내에서 싸게 살 수 있었음에도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둔감한 편이라
고장나면 고치고 고장나면 고치고 결국엔 A/S센터에서 더이상은 부품이 없어 고치지 못한다는 말에
작년에서야 휴대폰을 바꿨다.
세상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나와 동생이 좀 많은 편이다.
결혼 전에는 그리고 결혼 초기만 해도 자칭타칭 얼리어답터였건만 어느새 나또한 오빠처럼
시류에 둔해진 면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동생은 아직 젊기 때문인지, 회사에서 밀어주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인지
그 집은 휴대폰도 잘바뀌고 아이패드도 미국에서 사와 잘 갖고 노는가 보다.
그 집 아이들은 그런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줄 모르기 때문에 감히 우리 하나앞에서
아이패드도 그저 그렇고 스마트 폰도 싫다는 망언을 해버린 것이다.
하나는 어느 날 눈에 눈물이 고였다.
드디어 자기 반에 스마트 폰이 없는 아이가 자기 포함 5명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아,그래? 드디어 기회가 왔네. 너 '도전! 골든벨'에서 최후의 1인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지?
이번 기회에 네가 골든벨 최후의 1인은 못될망정 스마트폰 없는 최후의 1인이 되어볼 생각은 없는거야?"
"엄마, 세상에... 스마트폰이랑 골든벨이랑 무슨 상관인데."
"남들하는 것 다 따라하는 줏대없는 딸은 반갑지 않다. 더구나 네가 핸드폰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전자사전도 있지,mp3도 있지.네 앞으로 노트북도 있는데 고등학생이 더이상 뭘 바라는 거야? "
"엄마, 스마트 폰이 있으면 ebs강의도 순식간에 다운받고 음악도 공짜로 다운 받을 수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안돼. 더구나 네가 작년에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고3끝날 때까지는 안사주기로 했다가 학교에서 너무 늦게 끝나니까 할수없이 사줬다는 것을 벌써 잊었니? 그리고 앞으로 남은 약정도 있으니 위약금 생각도 해야지."
서러움에 가슴이 미어져 밤새 뒤척거리다 학교엘 가면 반아이들이 서로 어플을 주고 받고 스마트폰 유저모임을 만들고 있으니 폴더폰을 가진 가진 자기는 왕따아닌 왕따신세란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갖고 있으면 공부를 잘해서 사줬겠지 하겠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고
공부 안하고 놀기만하는 아이들만 갖고 있으면 그러니까 공부를 못하지 하겠지만
자기처럼 어중간한 아이들도 다 갖고 있고 가정이 넉넉하지 않다고 하는 친구도 스마트폰이 있으니
자기는 도대체 어찌 된 아이냐고 넋두리가 늘어진다.
"넌 부모를 제대로 만난 거지. 아니면 잘 못 만났거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스마트폰 사주는 집 딸로
들어가던가 아니면 그저 때를 기다려."
어제도 딸아이는 들어서자마자
"엄마,4명이야."
"뭐가?"
"어제부로 ##도 스마트폰을 샀어. 오늘은 교과서를 받느라 교실에서 2시간을 대기하고 있는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스마트폰으로 인강들으며 시간을 보내거나 서로 자기네 스마트폰의 기능을 자랑하는데 나는 아이들하고 공감대 형성이 안되어서 혼자 있었어. 외.로.이..."
"그런 시간에 책을 보면 되지."
"엄마ㅡ 제발. 내가 스마트폰 사면 절대 안 하려고 하는 3가지가 있는데 그게 바로 트위터,싸이월드,페이스북이야. 그저 스트레스해소용으로 음악좀 듣고 인강좀 편하게 듣겠다는데, 그리고 우리 심화반에서는 와이파이도 안터져서 그런걸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고요."
옆에서 누나가 계속 스마트폰,스마트폰하니까 상혁이도 덩달아 터치폰 이야기를 한다.
우리 반 애들도 전부 터치폰인데 정말 좋겠더라나. ㅠㅠ
끝까지 버티려고 했는데 결국 오늘 딸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었다.
안그래도 날이면 날마다 아빠한테 베갯머리 송사를 부탁하고 아침이면 내 눈을 최대한 애교스럽게 쳐다보며 "엄마,어젯 밤 송사는 하셨어요?" 하더니 남편도 그 눈치를 챘는지
오늘 낮에 남편에게 "자기야, 잠깐만..." 했더니 대뜸 "무슨 송사를 하려고?"한다.
"ㅎㅎ 나 스마트폰 살까?"
"솔직히 말해."
"하나는 위약금 물어야 하니까 약정끝나서 자유로운 내가 스마트폰을 사서 하나에게 주고
하나 전화를 내가 쓰는 식으로해서 서로 바꾸는게 좋을 것 같아서."
가없는 엄마의 희생정신으로 딸아이에게 스마트 폰을 사줬다.
지난 주 개콘에서 박영진이 하는 말을 고이 새겨들으라 했거늘.
"스마트하지도 않은 것들이 스마트폰, 스마트폰하고 그래!"
딸아이는 박영진 말대로 자기가 스마트하지 않아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다.
그래도 엄마의 베갯머리 송사는 가히 천재적이라고 외교관을 하지 그랬느냐고 칭찬아닌 칭찬으로 추켜세우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저 전번 바뀌었습니다.
국번과 뒷자리는 그대로이고 가운데만 2257입니다.....
예전 번호로 전화걸면 우리 딸 수업중에 벨이 울려 교실뒤로 나가서 두손들고 있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