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설악산 종주에 '신들의 봉우리'를 펼치다
지난 주 1박2일은 눈덮힌 설악산 등반의 첫날이었다.
늘 그 시간대에 저녁을 준비하기에 집중력있게 보지는 못하지만 흘려보는 중간에도 멤버들의 극한 상황에
절로 동참을 하게 된다. 올해는 유난히 눈도 많고 추운 겨울이었기에 그들의 겨울 산행이 무모하리만치 의외이기도 했기에 다니구치 지로의 "신들의 봉우리"가 생각이 났다.
"열네살"의 작가 다니구치 지로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작가중 한사람이다.
만화중에 제법 교훈적이기도 하고 진지한 만화도 많이 있지만 다니구치의 작품을 읽다보면- 확실히 그의 작품은 보는 것이 아닌 읽는 것이고 또한 느끼는 것이다.-어느새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묵직한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중 압권은 단연 신들의 봉우리가 아닌가 한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05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최우수작화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더구나 "음양사"의 작가 유메마쿠라 바쿠 스스로도 "못다 쓴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있게 탈고한 원작이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해서 탈고하기까지 3년이상,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무렵부터 따진다면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쓰기를 마치고 나니 몸안에 남아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이 토해내듯이 모두 썼다고 한다.
힘이 미치지 못한 대목도 없으며, 이제 산이야기는 두 번 다시 쓰지 못할 것이라고, 이만한 산악 소설은 아마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며, 누구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에 승복하겠느냐고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산악만화.
산악영화는 몇 번 보았고 그 웅장한 산의 자태에 위압감을 느끼면서도 역시 방관자일 뿐,그 산속으로는 감히 들어가지 못했으나 다니구치의 작품속에서라면 블리자드의 차가운 입김까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총 5권으로 이루어진 신들의 봉우리는 문고판으로 출판되면서 후반부분에 조금 손을 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1999년 5월 초,맬러리의 시신이 에베레스트의 북면 8,160미터 부근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들의 봉우리는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맬러리로부터 시작된다.
유명한 선문답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의 장본인이다.
그는 38세의 나이로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실종되어 75년 만에 '맬러리.어비 조사 원정대'에 의해 새하얗게 빛이 바랜 대리석 시신의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맬러리의 에베레스트 등반성공의 진위에 촛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는 강인한 산사나이 하부가 있다.
하부는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이며 남의 비위를 맞추기는 커녕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릴 줄도 모른다.
그의 그러한 성격 탓에 동료들도 그를 멀리하는데,
어느 날 산악회에 신입이 들어온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큰아버지댁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하부의 환경과 비슷하고 키시의 꾸밈없는 열정에
하부는 키시를 미래의 파트너로 키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 미숙한 키시는 북알프스 병풍바위에서 사고를 당하게 되고 이 사건은 하부에게 일생일대의
커다란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키시가 사고를 당해 매달린 장면에서는 장엄함보다는 진한 외로움이 느껴진다.
영화에서라면 느끼지 못했을 외로움이다.
시시각각 하부가 어려움에 처할 때면 환각으로 다가오는 키시.
하부는 그에게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기다려 달라고 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사진작가 후카마치이다.
왜 산에 오르는가에 대한 우문에 대한 답으로 하부는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여기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라며 스스로 무국적자가 되어 네팔에서 에베레스트 남서벽 동계 무산소등반이라는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마침내 후카마치는 하부의 등정 모습을 파인더에 담을 수 있게 된다.
하부의 등정이 있고난 후 다시 도쿄에 돌아온 후카마치는 이미 이전의 자신이 아님을 알게된다.
산에 한 번 다녀온 사람,거대한 자연앞에서 극한의 시간을 견딘 사람은 산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한다.
절벽에서 비박을 하고 희박한 산소때문에 환청을 듣고 환각상태에까지 이르기도 하지만 온통 눈뿐인 설산에서 내면의 소리를 듣게되면 하부의 말처럼 지금 이 시간은 너무도 엷은 맹물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홀로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다니구치 지로를 좋아하기에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그의 책들을 샀다.
늑대왕 로보,소년과 살쾡이, 샌드힐의 수사슴으로 나뉘어진 시이튼의 동물기역시 충실한 작품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 때 읽기를 시도하다 지루해서 그만두었던 동물기.
파브르의 곤충기도 그러했지만 그림은 별로 없고 글자만 빽빽한 가운데 도대체가 상상할 구실도 없었던 당시의 그 책들이 왜그리 읽고 싶으면서도 10장을 넘기기 힘들었는지.
하지만 내가 포기했다고 우리 아이들도 곤충기나 동물기를 읽지 않는다면 서운 할 것이기에 다니구치의 동물기를 접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동물기를 재미있게 본 상혁이는 다니구치의 다른 작품보다 이 신들의 봉우리는 좀 어렵다고 했다.
아무래도 산악만화다 보니까 전문용어도 많이 나오고 초등학생에게는 익숙치 않은 네팔과 에베레스트라는 지리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언젠가 산에 대해 관심이 생겨 이 책을 꺼내 볼 것을 기대한다.
아마 그 때가 되면 진정한 사나이의 속깊은 우정과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되겠지. 뒤로는 내가 새긴 발자국들을 두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천지분간이 없는 설산에서 어느 곳을 바라보고 가야하는지 결정의 순간에 부디 겁먹지 않기를 바란다.
끝으로 상혁이가 평하는 다니구치 지로의 특징을 소개한다.
"만화지만 정말 진지하고 초밥왕이나 닥터 노구치에서 보여지는 웃긴 장면이 없음에도 너무 재미있는
동화책같은 만화책이다."
그렇다. 다니구치의 그림은 시종일관 진지하다. 그리고 크지 않은 작은 종이 한 장에 8000미터 이상의 높은 산봉우리가 담겨있는가 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까지도 자리하고 있다.
다니구치를 알고 싶다면 '개를 기르다'를 추천한다.
신들의 봉우리 세트(전5권)
개를 기르다(청년사 작가주의 1)
시튼 1
시튼 2
시튼. 3: 샌드힐의 수사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