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살 만지기(companion )

복분자 한 잔에 넘어갔다.

hohoyaa 2011. 1. 29. 23:49

어젠 조금 우울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컴퓨터도 켜지않고 즐겨보던 ebs다큐멘터리도 안봤다.

하나는 이번 KMUN에 다녀온 후기를 쓰느라 삼매경.

상혁이는 시끄러워서 방에 들어가 놀라고 했다.

그냥 오두커니 앉아 창밖 먼산만 바라보았다.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먹먹하게 벅차 올랐다.

 

현관문의 비밀번호 입력하는 뚜뚜뚜우..하는 소리가 나더니 남편이 돌아왔다.

청승맞게 울음이 터져나올까 봐 얼른 눈을 비비고 축구얘기를 했다.

그래 축구를 보자.

늘 그렇듯이 남편은 복분자를 들고왔다.

나는 소주냄새가 싫다.

복분자엑기스에 소주를 탄 복분자주는 싫어서 안마셨는데

어제는 한 번 마셔보기로 했다.와인잔으로 한 잔하고 한모금을 마셨다.

축구를 보면서 마시니까 눈물이 들어가는 것 같아 맛있게 마셨다.

 

그런데 취했는가 보다.

축구가 끝나고 안방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머리가 조금 어지럽다고 느껴졌다.

잠시 옆의 벽을 짚고 버틴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주르르르 바닥으로 내려갔는가 보다.

이를 닦던 남편은 내가 어지럽다고 하면서 주저 앉는듯 하더니

갑자기 뒤로 꽝 넘어가 욕실 바닥에 머리를 찧었단다.

나는 분명히 욕실을 나왔는데 내 눈앞에 변기가 보이니 여기가 어디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놀란 남편이 얼른 부축해서 침대에 눕히고 자꾸 말을 시켰다.

의식은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와중에 닭발을 올려 놓은 가스불을 끄라고도 했단다.

 

그냥 뒤통수가 무지 아팠다.

베개에 닿을 수가 없게 아팠다.

다행히 토하지는 않았고 약간 메스꺼운 것은 술탓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파... 아파...하면서 잠이 들었고 남편은 아픈 머리를 받쳐 주느라

또다른 상상으로 잠을 못이루고 뒤척였단다.

만약 내가 뇌진탕으로 잘못되면 자기가 누명을 쓰게 될까 봐서.ㅎㅎ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던 하나의 증언이 자기를 범인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평소 처신을 잘해야겠더란다.

아침이 되니 뒤통수도 아프고 엉치가 유난히 많이 아팠다.

넘어가면서 엉치를 문지방에 다쳤나 보다.

심하지 않은 것을 보니 꼬리뼈는 괜찮은 것 같고,병원 갈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영화를 보러 갔다.

CGV의 극장 좌석이 그렇게나 불편한 것을 오늘에서 알았다.

엉치가 아파서 앉아 있을 수가 있나, 머리를 기대려니 그또한 얼마나 아픈지.

극장 좌석이 왜이리 딱딱하냐며 혼자 푸념을 했다.

남편은 전혀 불편하지 않단다.

 

돌아오는 내내 뒤통수도 아프고 엉치도 아프고

지난 여름과 이번 겨울 넘어져서 병원 신세를 졌던 엄마 생각이 났다.

이보다도 훨씬 더 아프셨겠지.

그런데 난 그런 아픔을 헤아리기보다는 괜시리 엄마에게 비난섞인 짜증을 내곤 했다.

그래서 벌을 받는가 보다.

저녁이 되니 이젠 목도 아프다.

옆으로 갸웃거리지도 못할 정도로 근육통이 심하다.

잠들기가 겁난다.

내일 아침이면 또 어느 구석에서 아프다고 신호를 보낼런지.......

 

그래도, 그래도 역시 남편의 손길이 좋더라.

오늘 이상하게 자기 팔이 아파서 생각해보니 간밤에 축늘어진 나를 안고

이리저리 옮기고 살피느라 그렇다는 남편의 말이 믿어진다.

필림은 안끊겼었거든.

나중에 내가 아파서 앓아눕게 되면 이 남자가 어떻게 할런지 미리 시험해 본 격이 되었다.

할 수 있으면 둘이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

늙어서까지 할 수 있는 소일거리나 취미생활을 갖자고 했다.

남편은 골프 한가지로도 20년은 버틸 수 있다고 자신만만이다.

"그럼 나머지 50년은 뭘로 보낼거야? 나하고 퍼즐이나 맞출까?"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던 하나가 끼어든다.

"아니,120살까지 사신다고요? 적당히 사셔야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