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hoyaa 2011. 1. 21. 18:40

 

 

2011년 책부족 독서목록을 정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자고 건의한 것은

아마도 이제는 내가 엔도 슈사쿠의 조용한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시절 A.J.크로닌의 '성채'와 '천국의 열쇠'를 읽고 막연하게나마 선교의 꿈을 품었던 나는

스스로 나실인이라는 멍에를 쓰고 가시밭길을 가기로 서원을 했었고 무언가 내 자신이 특별하다는

교만함에 도취되어 모든 생활을 그 축에 맞추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해 여름에 만난 엔도 슈사쿠의 '침묵'과 '위대한 몰락'으로 인해

내 안의 이기적이고 허영심에 가득한, 뜬구름 잡는 속물근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달리는 수레바퀴에서 뛰어내려 인생의 판을 다시 짜게 되었다.

당시엔 내가 떠밀렸는지 뛰어내렸는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뛰어 내려서는 멀리 달아나고만 싶었다.

숨을 수만 있다면 양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깊이 꺼져들고만 싶었었다.

 

참 오랜 시간이 흘렀다.

깊은 강,

갠지즈강의 황혼녘과 새벽 동틀무렵의 소리없는 소용돌이는 고요했던 내 안에 겹겹이 쌓여있던

심장박동소리를 더 크게 들리도록 해주었다.

 

 모양도 색깔도 난잡하고 질서가 없는 건물들은 순례자의 숙소,왕후의 여관,사원이다.이 건물들 사이에

강에 바치는 겐다 꽃을 파는 꽃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곳을 빠져나오자 강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의 햇빛을 반사하는 드넓은 강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탁한 잿빛 수면에, 수량이 풍부해 강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가트에는 아직 사람들과 행상들이 남아 있다. 흐름의 속도는 멀리 강 위로 떠오른 잿빛 부유물의 이동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부유물이 서서히 다가왔는데, 부풀어 오른 채 죽은 잿빛 개였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 그것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 성스런 강은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보듬어 실어간다.

 얕은 여울에서 남녀 몇몇이 빨랫감을 돌에 쳐 대고, 물가에 친 줄에 걸어 말리고 있다. 그들은 도비라 불리는, 세탁을 평생 직업으로 삼는 아웃카스트이다. 물가로 내려가는 돌계단에는, 민머리에다 안경을 낀 늙은 브라만 승려가 커다란 우산을 세워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브라만 승려 곁에는 핏빛같은 바메리온 가루를 파는 사내가 앉아 있는데, 이 가루는 브라만 승려가 힌두교도의 이마에 동글게 발라 축복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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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나미의 말대로, 가트에 장례 행렬의 남자들이 한 무리 나타났다. 3미터 남짓한 막대기 두 개를 들것 삼아, 거기에 불긋한 천으로 감싸고 금빛 테이프를 휘감은 시체라 여겨지는 것을 동여매어 강어귀에 두었다. 그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순서가 오기를 진득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죽음의 냄새를 맡았는지, 처음에는 파리 떼가 끓더니 어느 틈엔가 까마귀 떼가 그 언저리를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웅크린 채 그걸 쫓으려고도 않는다.

 강은 변함없이 묵묵히 흐르고 있다. 강은, 이윽고 재가 되어 자신 속에 흩뿌려질 시신에도, 머리를 그러안고 꼼짝도 않는 유족 남자들한테도 무관심했다. 이곳에서는 죽음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이 똑똑히 느껴졌다.

 건너편 가트에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목욕을 하고 있다. 남자는 하반신에 흰 천을 두르고 여자는 알록달록한 사리를 휘감은 채 물에 몸을 담그고는 합장하고, 입을 헹구고 머리를 감고, 다시 가트로 되돌아온다.

 목욕 후에는 돌계단에서 잠시 쉬었다가, 또다시 강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다소 그늘이 졌다. 좀 전까지 돌계단에 내리쬐던 햇빛이 조금씩 물러가고 있다. 하지만 강은 아무런 변화도 없이 한결같이 흘러만 간다.

 

 

 미쓰코는 강이 흐르는 방향을 향했다.

"하지만 난 인간의 강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그 강이 흐르는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아직 모르긴 해도. 그치만 과거의 많은 과오를 통해, 자신이 무얼 원했는지 이제 겨우 아주 조금 알게 된 느낌이야."

"믿을 수 있는 건,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짊어지고 깊은 강에서 기도하는 이 광경입니다.

그 사람들을 보듬으며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픔. 그 안에 저도 섞여 있습니다."

 

 

지금 이 책을 다 읽고나니 나역시 미쯔코와 함께 갠지즈에 몸을 담근 것처럼 홀가분함을 느낀다.

 

**다음에...

 

 


깊은 강

저자
엔도 슈사쿠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7-10-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장편 침묵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한, 일본 대표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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