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염으로 담근 동치미
언제부터인가 우리집 현관에 택배아저씨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블로그를 통해 소신있는 농장주를 알게되고 공구카페에 가입을 하면서부터 왠만한 식자재는 대형마트에 가지않고 해결을 하게 되었다. 얼마전엔 친환경농산물 카페에 가입을 하고도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다가 마트에서 비싸게 주고 사온 과일이 너무 맛이 없어 다시 카페를 찾게 되었다.
그러다가 눈에 띈 천.일.염.
친정엄마가 주신 천일염을 작년 김장에 다 쓰고도 모자라 급하게 사온 소금이 맛이 없어 찜찜했었는데 마침 신안에서 생산하는 천일염이 공구상품으로 올라와 있어 구매를 했다.
알고보니 인간극장에도 나왔던 가족들이 직접 소금농사를 짓는가 보다.
인간극장은 못봤으나 6형제와 부모님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인물들이 모두 훤칠한 것이 6형제 키우느라
어머님이 고생을 하셨을망정 늠름하게 장성하여 소금밭을 함께 일구는 것이 얼마나 든든해 보이는지
남인 나도 가슴이 뿌듯하더라.
소금은 포장도 좋고 그 안의 내용물도 깨끗하다.
한웅큼 쥐었다 펴니 소금이 뭉치질 않고 잘 떨어졌다.
간수가 잘 빠진 상태란다.
그렇더라도 계속 간수가 빠져 여름이면 밑이 흥건할 정도이다.
단단하게 보이는 소금을 손끝으로 비벼보았더니 잘 부서진다.
작년에 산 것은 신안산이라고 써있더니만 실제론 중국산인지 너무 단단해서 부서지질 않아
손만 아팠다.
상혁이가 전학을 한 후 적응도 잘하고 교내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기특해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파트에 사시는 친정 부모님께 별일이야 있으려고 하면서도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니 안부겸 드린 전화였다. 엄마는 외손주 소식에 잘됐다고 하시더니 동치미를 좀 담궈달라고 하셨다.
보통은 엄마가 내게 "얘, 동치미 담갔는데 갖다주랴?" 하실텐데 뜻밖이다 했더니 아버지가 다른방에서 수화기를 들어 엄마가 또 넘어져서 갈비가 나갔다고 말씀해주셨다.
지난 여름 어깨뼈와 갈비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한 번 누우면 돌아눕지도 못하고 그 고생을 하시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깜짝놀랐다. 엄마는 평지에서 걷다가 힘없이 휘청하며 넘어졌는데 5번 6번 갈비가 나갔더라며 그래도 깔깔 웃으신다. 지난 여름보다는 수월해도 아무래도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아 끼니마다 국이나 찌개를 끓이기가 버거우셨나 보다. 동치미를 담가다 주면 한동안 국물 걱정없이 밥을 먹을 수 있겠다는 엄마는 아들보다도 며느리보다도 딸의 전화가 그리우셨단다.
날이 추우면 꼼짝도 안하는 나이지만 만약 내가 그리 되었으면 우리 엄마는 새벽 첫차를 타고서 뜨거운 국이 든 냄비를 들고 오셨을 것이라 생각하니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해 전날 맛있게 끓여먹은 홍합 미역국이 생각나 시장에 가서 홍합을 사고 몇가지 밑반찬을 싸들고 친정가는 버스를 탔다.
엄마는 안방에 누워계시다가 일어나 앉으셨다.
넘어지고 며칠이 지나서인지 생각보다 좋아 보이시길래 가는 동안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당장 갈까,아니면 아예 동치미를 담가서 다음 날 갈까했었는데 엄마는 딸한테 추레해 보이지 않으려고 그 몸으로 미장원엘 다녀 오셨다고 한다. 아버지도 숙영이가 올 시간이 됐는데, 언제 올려나 기다리시며 자꾸 현관문밖으로 귀를 기울이셨단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자존심 강하신 엄마,아버지가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습에 울컥해졌다.
돌아오면서 마트에 들러 장을 봐왔다.
무우와 쪽파,갓도 사고 신안 천일염을 개시했다.
삭힌 고추도 없고 금방 먹을 것이라 발효를 빨리 시키려고 소금에 설탕을 동량으로 넣었다.
생강과 마늘은 편으로 썰어서 넣고
갓과 무우를 먹기좋게 잘라 한켜 넣고 소금을 뿌려주고 그 위에 또다시 무우와 갓을 넣고 소금을 넣고.
너무 매운 청양고추는 속이 아리실 것이니 빨간 홍고추로 딸의 마음을 전해본다.
맨 위에 쪽파를 넣고 소금을 골고루 뿌리면 끝이지만 내식대로 하자면 숨이 죽기를 기다려 해야하는
다음 과정이 있으니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항아리의 것은 우리가 먹을 것이고 pp통에 있는 것은 친정에 가져갈 것이다.
이틀에서 사흘정도 실온에 두어 절임의 미학을 곱씹는다.
오늘 보니 숨이 좀 죽었다.
쪽파는 먹기좋게 파강회처럼 묶어주고 양파를 갈아 넣어주고
소금물을 만들어 항아리에 부어준다. 양파를 갈고난 후 그릇도 헹굴겸 그대로 물을 붓고 소금을 넣고 돌려주니 소금이 빠른 시간에 잘 녹았다. 금방 익혀 먹으려면 약간 미지근한 물을 넣도록 한다.
항아리에 담긴 동치미 국물의 간을 보아 약간 짭짤한 것이 익으면 간이 맞아 좋다.
너무 짜면 나중에 상에 낼 때 물을 더해주면 되겠다.
천일염이라 그런가 약간 짠맛이 있어도 뒷맛은 쓰지 않았다. 나이 먹은 딸이 처음 담가드리는 동치미인데
때마침 천일염을 사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일은 동치미를 들고 친정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