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자율학습? 야간타율학습!
요즘 하나는 깨우지 않아도 잘 일어난다.
치카치카 이닦는 소리에 내가 깨는데 시간을 보면 5시가 좀 넘은 시간이다.
아침은 꼭 먹고 다니기에 일찍 일어나서 밥먹고 차 한잔 하고 집을 나서는 시간이 6시 20분.
간혹 아빠가 태워다 줄 때면 7시에 나가기도 하지만 그런 날은 시험기간이거나 일기가 아주 나쁜날이다.
여름에는 그래도 해가 일찍 뜨니 애써 위안을 삼지만 요즘같이 겨울로 들어서는 더구나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 아직 어스름한 거리로 아이를 내보내는 엄마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어제는 하나가 학교에서 전화를 했다.
1학기에 심화반을 들었다가 자신의 진도를 맞출 수가 없어 반을 나왔는데 이번 2학기에도 담당 선생님이 심화반에 들어오라고 하신다며 어쩔까하며 묻는 전화다.
1학기에 심화반을 들어갔을 때에는 우리 부모들도 기뻤다.
과외나 학원, 독서실에도 가지 않고 학교외에는 주구장창 집에서만 있다보니
공부는 안하고 음악만 듣는다고, 방이 지저분하다고, 동생이랑 싸운다고 잔소리도 많이 했었기에 상위10% 안에 들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심화반 편입은 예상치도 기대하지도 못했기에 아슬아슬하게나마 들어간
우리 딸이 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교육의 메카라는 노원구에서 잔뼈가 굵은 아이들틈에서 그 정도 성적이면 괜찮다고 생각을 했는데
날이 갈수록 지쳐가는 모습이 역력하길래 물어보니 수학이 너무 어렵단다.
심화반에서 수학 특강을 해준다니까 특강을 들으면 수학을 잘하게 될까 기대했지만 그 외부강사특강은 선행을 하는 것이었고 수학특강시간내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던 하나가 하나도 모르겠다고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니 그 강사분은
"이 정도는 학원에서 다 배운 것 아냐?" 하더란다.
"저는 학원 안다녀서 선행이 안되어 모르는데요."하니
"학원을 안다녔다고? 웬 내숭이냐, 그러면서 뒤로는 학원다니고 과외하는 것 다 알아."
하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심화반이니까 그 외부강사는 당연히 학원다닌 애들일 것이라고 생각을 할테고
또 다른 애들은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선행이 되어 있는데 선행이 안되어 있는 자기생각만 하며 남들 다 배운 것을 가르쳐 달라고 끝까지 우길 수가 없더란다.
결국 방과후에 하는 심화반 수학시간은 졸립고 시간낭비라는 생각도 들어 심화반에서 나오겠다고 하니 나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 때즈음에 심화반 학부모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심화반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심화반을 감독을 하고 있는데 나는 언제쯤 감독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엇다.
나는 하나가 심화반을 나오게 되었다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감독을 하게되면 몇시까지 하느냐고 물었더니 12시까지 한단다.
12시면,,,남편이 없으면 나는 꼼짝도 못하는 시간이다.
그 저녁시간엔 상혁이와 함께 있어야하고 더구나 12시면 우리집까지 택시로 와야하는데 그 시간까지 상혁이를 혼자 내버려두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다.
변명을 늘어놓는 내게 그 학부모는 자기네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다며 그래도 한창 중요한 시기의 딸을 대학에 보내려면 그정도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더한 희생도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한다니.......
방과후 학습을 흔히 야자라고 한다.
야간자율학습.
그러나 그런 시간에까지 학부모들이 일일이 감시를 해야한다면 자율학습이 아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에 있는 다른 아이들의 야자시간은 가끔씩 담임선생님이 올라오셔서 둘러보고 가실 뿐 상주하듯 감독하는 선생님이나 학부모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좀 시끄럽고 산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노는 아이들도 되도록 그런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논다고 하는데 심화반이면 그야말로 자율학습에 임하는 태도가 좋다고 할 수 있는 애들일텐데 그렇게까지 학부모가 감시를 해야하느냐고 하나에게도 몇마디를 했었다.
어제 심화반 담당 선생님이 이번 중간고사 성적을 보시더니 하나에게 심화반에 다시 들어오라고 하시며 2학기와 겨울방학에 있을 특강으로 하나의 마음을 움직이셨나 보다.
부족한 과목, 특히 수학은 학교 선생님께라도 부탁해서 수준에 맞는 개인강의를 받을 수 있다고도 하시고 하나도 새로이 마음을 다잡고 싶어 심화반에 들고 싶은데 내가 지난 번에 성토했던 감독문제가 걸렸는지 엄마가 아빠와 상의해서 2학기동안 하루,이틀정도만 시간을 내서 감독을 해주면 안되겠느냐고 엄마가 못하겠다고 하면 자기도 들어가지 않겠다며 내 의향을 물어온 것이다.
날마다 학교로 데리러 가지는 못할 망정 그런 사소한 것으로 아이의 다짐을 망치는 것같아 심화반에서 야자를 하겠다면 엄마도 시간을 내볼께하고 대답을 하니 처음 조심스러웠던 목소리가 금세 밝아지는 것이 전화를 통해 느껴졌다.
야자를 끝내고 11시가 다되어서 빨갛게 언 얼굴로 돌아온 하나에게
"그런데 이게 야간자율학습 맞아? 자율학습인데 감독이 왜 필요하다니?"
"아휴~,그러게요. 그래서 우리 반 애들도 야자라고 안하고 야타라고 해요.야간타율학습."
야자만 아니면 좀 이른 시간에 집에 돌아와 쉴 수 있는데 야자때문에 몸이 아파도 올 수 없는 하나가 안쓰럽다가도 아침,저녁으로 차를 태워다주다보면 습관이 될까 봐 졸리워하는 아이를 오늘도 그냥 보냈다.
혹시 졸다가 내려야할 전철역을 지나쳐갈까 봐 전화를 해도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아서인지 받지를 않는다.
공부시간에 졸리면 뒤로 나가 서서 공부한다는 하나.
오늘도 야자를 하고 늦게야 돌아올 것이고 내일이면 어김없이 졸려서 반쯤 감은 눈으로 양치를 하며 나를 깨우겠지. 돌아오면 웃으며 맞이하고 꼬옥 안아서 몸과 마음을 녹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