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hoyaa 2010. 10. 6. 21:59

 

 

 

 민음사판 주홍글자의 뒷편에는 서문격인 '세관'이라는 단편이 실려있다.

처음 '주홍글자'는 중단편으로 구상하였지만 출판사의 요청으로 단편 '세관'이나'엔디코트와 적십자가'에서 이미 그 싹을 보이고 있던 헤스터 프린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세관'을 보면 호돈으로 보이는 세관원이 우연히 낡은 양피지로 싼 서류꾸러미 속에서 빛바랜 주홍빛 천을 발견하게 되는데 화려한 금사로 대문자 'A'가 수놓아져 있었던 그 닳아빠지고 너덜거리는 주홍빛 천과 함께 사건 전체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던 서류를 보고 소설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아마도 이 세관원은 호돈 자신일 것이라 추측을 한다.책 뒤에 딸려나오는 작품 해설도 본작품만큼이나 재미있고 알차다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책의 번역자는 '김욱동'. 얼마전 작고한 이윤기의 뒤를 이어 내가 기억하게될 번역가이다.

 

이 작품은 흔히 가혹한 청교도 사회의 규범에 맞서는 자유의지, 구대륙을 등지고 정신적 문화적 독립을 이루려는 신대륙의 혁명정신에 비유되기도 한다.

'주홍글자'는 분명 여자 이야기인데 나이가 들어 시야가 넓어진 것인지 아니면 아줌마의 오지랖때문인지 

여자인 헤스터보다는 남자의 마음을 짚어가며 읽었다. 

 

 

A.

Adultery (간통)

 17세기 미국 보스턴의 청교도 마을. 무거운 쇠문이 열리고 Adultery의 A를 치욕적인 징표로 가슴에 달게 된 헤스터 프린은 처형대로 향한다.장터에서 모든 이들의 눈앞에 서게 된 간통한 여인.

그녀의 품안에는 갓난 아이가 안겨있다.

판관은 그녀에게 그 아기의 아비가 누구인지 밝히라고 하지만 그녀는 거부한다.

그녀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젊은 목사 딤스데일은 발코니 난간에서 그녀의 눈을 내려다 보며 말한다.

"그대는 이 분의 말씀을 들어서 내가 짊어진 책임을 잘알고 있겠지요.그대가 마음의 평화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느끼고,또한 그로 말미암아 지상에서 받는 형벌이 구원에 한층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부디 그대와 함께 죄를 저지르고 고통받고 있는 그 사내의 이름을 밝혀 주시오! 그 사내에 대한 그릇된 동정과 온정 때문에 침묵을 지키지는 마시오. 헤스터,정말이지 비록 그 사내가 고귀한 자리에서 내려와 치욕의 처형대 위 바로 그대옆에 서게 될지라도 평생동안 마음의 죄를 감추고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을 것이오.그러니 그대의 침묵이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소. 기껏해야 그 사내를 유혹하여,아니,말하자면 강요한 것이겠지요,이미 저지른 죄에 위선의 죄를 덧붙이게 할 따름이 아니겠오? 하나님은 그대에게 마음속의 악과 겉으로 드러난 슬픔을 딛고 승리하도록 공개적인 치욕을 당할 기회를 주셨소. 지금 그대는 그 사내에게 입에는 쓰지만 영혼에는 이로운 술잔을, 그 사람은 어쩌면 용기가 없어 스스로 그 술잔을 들지 못하는지도 모르지만,지금 그대 입술에 들이대고 있는 그 잔을 그 사람에게 주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시오!"

그 사내의 이름을 밝히고 회개를 한다면 헤스터의 가슴에서 주홍글자를 떼게 될터이지만 헤스터 프린은 그 분의 괴로움까지도 자신이 짊어지겠다며 입을 다문다.

 

Able(능력)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 그녀의 가슴을 장식한 화려한 주홍글씨덕에 헤스터에게는 하고싶은 시간만 일을 해도 꽤 괜찮을 정도의 보수의 일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죄지은 여인의 손으로 놓은 자수는 총독의 주름깃에, 군인들의 전대에, 목사들의 가슴에 매는 띠에,도 갓난 아이의 모자를 장식했다.

헤스터는 천성적으로 화려하고 관능적이고 동양적인 천성,즉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을 즐기는 취향을 지닌채 태어났지만,능란한 바느질을 빼고는 그녀의 모든 생활면에서 아무데도 이와 같은 취향을 살려 본 적이 없었다. 헤스터 프린은 바느질로 삶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고 또 진정시키기도 했다.

 

Angel(천사)

 헤스터는 자신을 위해서는 소박하고 금욕적인 생계 이상을,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는 소박하게나마 풍요로운 생활 이상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녀의 어린 아이를 곱게 차려입히는 데 드는 얼마 안되는 돈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엾은 사람들에게 자선하여 나누어 주었다. 자기 솜씨를 좀 더 잘 발휘할 수 있는 시간 대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간소한 옷가지를 만들어 주는데 썼다. 비록 자비를 베푸는 그녀의 손길을 모욕하기 일쑤였지만 그녀는 자신보다 더 비참하지도 않은 그들을 위해 시간과 능력을 썼다.

 

Arthur(아서 딤스데일)

 헤스터는 가슴에 주홍글자를 달고 세상과 동떨어진 고독함속에서 꼬마요정 펄과 생활을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가슴에 붙어있는 주홍글자에 익숙한 펄은 타고난 기질또한 강해서 곧잘 어른들을 당황케 하는데 마을 사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목사의 습관까지도 어린 펄의 직관을 피하지는 못했다. 

"엄마,주홍글자가 무슨 뜻이야? 그리고 엄마는 왜 그걸 달고 있어? 그리고 목사님은 왜 언제나 가슴에 손을 얹고 계시는 거고?"

 

'비밀이 생겼다.' 

남자와 달리 여성은 단 한 번의 탈선일지라도 그 결과 여하에 따라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신체구조를 갖고 있다. 호돈이 헤스터가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기까지의 과정을 생략했으므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사랑은 둘이 했어도 정염의 씨앗은 여자에게 남으니 아마도 점점 불러오는 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차피 네덜란드에서 건너와 의지가지없이 외로운 그녀는 딤스데일이라는 미래가 촉망되는 젊은 목사에 비해 잃을 것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헤스터가 모든 것을 바쳐 지켜주고 싶었던 상대는-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처럼 죄의 근원은 자신을 유혹한 헤스터에 있다고 책임을 전가했을런지도 모른다.작품 후반부 숲에서 만난 둘 사이의 대화를 들으면 그런 확신을 갖게 된다.

그 남자는 자신의 다른 얼굴로 처형대에서 그녀를 만난다. 그는 헤스터에게 그녀가 죄악에 이르도록한  남자의 이름을 대라고 헤스터에게 강권하지만 그녀는 그녀 앞의 술잔을 자신이 모두 마심으로서 둘사이의 비밀을 만들었다.

비밀은 마음을 좀먹는다.

 

'가짜를 조심하라, 그들은 더 반짝인다!'

딤스데일은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딤스데일은 오히려 주일마다 자신의 죄를 목청껏 부르짖으며 가슴을 찢는 고통을 자청했으나 그가 영적으로 피폐해질수록 신도들은 그의 고통을 수반한 명연설에 감동을 받게 된다.

딤스데일은 파렴치한도 아니었고 사악한 자도 아니었다. 딤스데일은 용기가 없는 자였다.

자신의 죄를 자복하지 못한 소극적인 거짓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었다.

처형대에서 주홍글자를 앞에 달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멸시하는 수많은 눈빛과 마주했던 헤스터를 보면서 아마 그의 마음은 더더욱 오그라들었을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는 그의 펄을 보면서, 점차로 빛이 흐려지는 헤스터 프린의 주홍글자를 보면서 세월이 자신의 실수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음을,아니 결단코 용서하지 말아야한다고 자학한다.

 

'거짓말'

거짓말을 한 사람은 그에 따른 죄책감을 줄일 방법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스스로의 환상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고귀한 목적을 위한 과정이라고 합리화하거나 직업상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하거나 거짓말의 대상이 개인이 아니고 불특정다수인 경우 실제로 손해를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해 버리는 식이다.

아마도 딤스데일은 모든 것은 그 날 처형대위에서 이미 끝나버린 일이고 그 또한 헤스터가 택한 길이라 인정하고 새삶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눈 앞에 살아 폴짝이는 펄을 보면서는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만약 그가 아주 작은 거짓말을 한마디라도 했더라면 그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는 눈덩이가 되었을텐데 마음속에 두려움을 간직하였던 그로서는 감히 그럴 용기조차도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 용기없음이 딤스데일을 구한 것이다. 적어도 그는 자신을 변호하거나 합리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았기에 후세에도 그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고 신화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헤스터와의 관계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이 유혹에 약했던 것을 탓하는 부분은 유감스럽다.

그런 남자를 위해서 여자는 극한의 질곡을 이겨내고 또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기도 하나니.

 

 

 


주홍글자

저자
너새니얼 호손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7-10-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너새니얼 호손의 대표작. 소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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