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상(落傷)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 무렵이다.
할머니가 낙상을 하셨다는 소식,그리고 할머니 문병을 오시는 분들마다 낙상,낙상하시길래 가만 들어보니 그게 아마 넘어져 다친 것을 이르는 말인가보다 추측을 하게 되었다.
낙상을 하면서 손목을 삐어버린 할머니는 손목에 노란물을 들이셨다.
빨간약도 아니고 보라색 옥도정기도 아닌 노란색물을 보면서 할머니는 왜 약이 노란색이냐고 여쭤보았더니
그게 치잣물이라고 하셨다.
예로부터 삐긋하게 삔 곳에는 치자가 좋다해서 치자를 즙을 내 손목에 붙이고 계셨다.
그 후로도 종종 할머니는 낙상을 하셨고 그 낙상이라는 단어가 노년기에 자주 사용되어지는 것이라는 걸 알게되었다.
지난 주, 친정 엄마가 낙상을 하셨다.
노인복지회관에 다녀 오시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어깨와 쇄골 3군데가 부러지고 갈비뼈도 부러졌다고 한다.
당시에는 말도 못하시고 정신을 잃었다는 복지회관측의 연락을 받고 굉장히 놀랐다.
마침 나는 자리를 뜨지 못할 일이 있어 우선 남편이 서둘러 병원엘 갔고 나중에 남편의 말을 들으니 외상은 별로 없으신데 아무래도 골절인 것 같다고 여러가지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첫 날은 경황도 없고 진통제덕에 어디가 아픈지 아픈 곳을 제대로 짚어내질 못하셨고 하루 이틀 날이 가면서 여기저기 아픈 곳이 날카롭게 느껴진다고 하신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게 머리는 아무 이상이 없다.
엄마는 마침 선물용 떡을 받아 들고 나오던 길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설기떡이 절편처럼 납작하게 눌렸다고 어쩌다보니 머리아래로 그 떡이 들어가 머리로는 충격이 안갔나보다고
그리고 다친 곳이 오른쪽이 아니고 왼쪽이라 수저라도 들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만약 다리나 골반을 다쳤더라면 큰일이었을텐데 갈비와 어깨를 다쳤으니 그게 또 어디냐고
갈비도 더 심했으면 부러진 곳이 장기를 찔러 상하게 할 수 있었는데 크게 어긋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누군가 도와준 것마냥 큰 사고를 비껴간 것이 그저 불행중 다행이라고 웃으며 얘길하신다.
더불어 아버지도 이렇게 더운 날 집에 있느니 시원한 병원에서 더위걱정 안하고 지내니 좋기도 하다고
누워계신 엄마가 밝게 웃으며 그렇게 얘길 하시니 옆의 우리도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듯하다.
동생은 이번 일주일간 제주에 출장을 갔기 때문에 올 여름은 바빠서 휴가도 못내겠다던 오빠가 어렵게 이틀을 휴가내서 엄마곁을 지켰다.
엄마는 역시 오빠가 옆에 있는 것이 누구보다 마음이 든든하고 편하다고 하신다.
멀리있기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큰 올케는 마음을 전하고 작은 올케는 올케대로 시간 날 때마다 병원에 들러 살뜰하게 엄마를 살피고 큰시숙과 시아버지의 끼니를 챙기는 모습을 보니 고맙기에 앞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앞선다.친정엄마니까 나도 병원에 가서 있긴 하지만 거의 모든 일을 올케가 알아서하게 두고 있다.
안그래도 딸보다도 더 가깝게 잘하는 올케인데 딸된 마음에 괜히 내가 나서서 한마디라도 하면 열심히 잘하고 있는 올케의 정성이 빛을 잃고 마음에 서운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싶어서이다.
병실문을 나서는데 엘리베이터 앞 로비에서 어느 젊은 엄마가 흥분하며 울면서 전화를 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들리는- 아마 시어머니와의 통화인지 어머니,정말 왜 그러세요등등의 한맺힌 절규와도 같은 말에 남편이 입원을 했을까,시어머니는 무슨 말씀으로 저 며느리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것일까 추측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서 잠시 매점에 들러 밖으로 나오니 아까 그 젊은 엄마의 모습이 또 보였다.
여전히 울고불고하는 전화 통화내용에 당신은 왜 그걸 어머님께 얘기했느냐고,내가 얘기하지 말라니까 왜 굳이 말을해서 내가 이런 전화를 받게 만드느냐고 악을 쓰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상황이 그려진다.
친정일로 병원에 와 있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한 것이다.
아마 그 젊은 엄마도 피치못할 사정으로 친정 병수발을 하고있는 것일텐데 시어머니는 그런 며느리가 탐탁치 않았는가 보다. 울고불고 악을 쓰며 한바탕 소란스러운 그 젊은 엄마의 쉰목소리를 뒤로하고 가파르게 비탈진 병원길을 걸어내려오려니 현재 분란없이 조용한 친정주변이 새삼 고마워진다.
엄마가 늘 보시며 마음에 새기는 글이 있어서 올려본다.
친정엄마도 자식들에 대한 집착이 좀 있으신 편이다.
자식들이 결혼을 한 초기에는 그로 인해 스스로를 볶기도 하셨지만 이런 글들을 읽으니 마음이 편해지고 이제 자식들 걱정은 하지 말아야겠다고,노인으로서 어른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만 지키면 집안이 편안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제껏 몇 번의 고비를 넘겼지만 그 때마다 며느리들이나 사위가 하는 양을 보면 당신은 행복한 노인이라는 확신을 하신다고 했다.
남의 식구를 우리 식구로 맞아 십수년을 살다보니 이제 그 마음을 알겠다고 하신다.
엄마는 마침 경과가 좋아 수술까지는 하지 않고 이르면 이번 주에 퇴원을 하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