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지기(feeling)

기고(寄稿),기고만장(氣高萬丈)

hohoyaa 2010. 2. 4. 01:44

지난 연말 헬로tv의 tv칼럼니스트 정석희선생님께서 변변찮은 제게 원고를 부탁하셨더랬습니다.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극구 사양했었는데 정석희선생님의 다정하신 권유에 그만 제 마음이 스르르 녹아 주제넘게 '조선일보 독자투고'이 후 난생 처음 원고라는 것을 썼습니다.

몇해 전 우연한 기회에 제 블로그에 들르셔서 연극배우의 아내로 살아가는 일상을 보셨다고 하시니 갑작스런 권유에도 마음 속이 따뜻해지는 것이 날이면 날마나 컴앞에서 뭔가를 끄적거리는 저를 보며 답답해하던 남편에게 면목이 좀 서는 느낌이랄까요?

원고를 기고하고 난 후 책이 배달되어져 왔습니다.

그러니 또 제가 기고만장해져서 이렇게 글로 남겨 둘랍니다.

얘들아, 엄마 이런 사람이야. 에헴!

 

 

 

 

이나영이랑 같은 잡지에 실린 엄마라구.

 

 

 

 

 

 

2010년 02월

[생활 속 TV] 따뜻한 TV





따뜻한 TV

Writer 신숙영 자료제공 tvN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혹은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리모컨을 찾는다.

손가락만 한번 움직였을 뿐인데 적막한 진공 상태이던 사각의 공간은 한순간에 오로라가 넘실대는 멋진 신세계로 변한다. TV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TV와 밀착되어 있던 아득한 날의 기억이다그저 재미로 보던 TV였는데 가난한 연극배우인 남편과 결혼을 하고 보니 그 시간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나도 맞벌이로 직장을 다녔으나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싶었던 남편은 배역의 경중을 막론하고 출연 섭외만 오면 열심히 일했다. 비록 눈 한번 깜빡하거나 하품 한번 하면 화면에서 사라질 정도의 단역이었지만 남편이 출연하는 드라마가 시작되면 우리는 어김없이 TV 앞에 진을 쳤고 TV 속 아빠의 모습을 신기해하는 어린 딸아이의 모습에 웃음 지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우리는 남편이 출연한 프로를 보며 웃고 있었는데 네 살 딸아이가 슬며시 일어나 제 방으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나오질 않아 들어가 보니 잠이 들었는지 침대에 엎드려 있기에 조용히 문을 닫아 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 환하게 웃으며 거실로 나온 아이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 나중에 이유를 들어보니 아무리 가짜라지만 아빠가 맞는 것이 서러워서 방에 들어가 혼자 울고 나왔다는 것이다. 혹시 자기가 운 걸 아빠가 알면 아빠도 마음이 아프니까 엄마랑 나만 아는 비밀로 하자는 깊은 속도 보여 주면서.

예민한 딸아이를 보면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때에야 비로소 무대에서는 커다란 산처럼 듬직해 보이던 남편이 TV라는 상자 안에서는 네 활개를 제대로 못 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간혹 친구에게 아빠의 배역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라도 듣고 오는 날이면 또 여러 날을 상처로 끙끙 앓는 아이를 보며 자연스레 아이의 눈에서 TV를 멀리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 TV를 멀리했는데 정작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챙겨 보지 못하니 비 온다는 날 우산 없이 학교에 가기 일쑤였고, 아침과 한낮의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는 더워서 혹은 추워서 직장에 있는 내 발을 동동 구르게 했다.

작년 여름에 큰시누님이 암으로 돌아가신 후 우연히 TV를 켰더니 마침 암환자의 식이요법에 관한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다. 진즉에 알았더라면 큰시 누님을 도와 적극적인 치료를 했을 텐데 하고 후회가 되었다. 그제야 TV의 순기능 중에 정보전달 기능이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서 다시 시간을 정해 TV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탓일까. 그사이 내 귀는 TV 속 인물들의 대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자연히 자막이 나오는 프로를 찾게 되고, 그마저도 작은 글씨를 읽기에는 너무 낡아버린 내 눈 때문에 화면 속 자막이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애써 초점을 맞춰 가며 보통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인간극장>이나 <동행>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말라가던 눈물샘만은 제 기능을 한다. 특히 <동행>은 올봄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는 딸아이와 종종 함께 보는데 남의 슬픔을 자기 일처럼 아파하는 모습에서 예전의 그 눈물 고인 빠알간 두 눈이 떠올라 핑그르르 새로운 눈물이 돈다.

겨울철 집안이 건조해서 가습기를 틀어놓고 화초도 들여놓고 빨래를 널어 보아도 좀 처럼 움직이지 않는 습도계를 쳐다보느니 마음 따뜻한 감동이 있는 휴먼 다큐를 한편 보는 것이 나의 안구건조증엔 더 좋은 약인 듯하다.

연기자 유형관 님의 아내 연극배우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일상을 블로그에 풀어놓고 있다.
http://blog.daum.net/touchbytouch




★Hello TV TIP★

보통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느껴 보시려면?■ 본방송 : Hellotv 》 KBS1(Ch.9) 》 매주 월~금요일 오전7시50분 <휴먼다큐 인간극장>


 

 

글을 보내면서 사진도 보내라시기에 막상 사진을 고르려니 최근엔 가족사진도 독사진도 찍은 것이 없다는 처절한 현실에 부딪쳤습니다.

그저 컴퓨터 폴더엔 먹을 것과 초록이 일색이라는.

그러니 가족 사진중 제 얼굴을 오려서 보내 드렸는데 이번엔 또 청담동 스튜디오로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오라십니다. 포샾없이도 참 좋은 인물사진을 만들어 주시는 사진작가님이라시며 꼭 권하고 싶은 기회라고요.

감히 어디에 내놓을 인물도 아니고 사진으로 예술하시는 분께도 실례가 되는지라 이리 빼고 저리 빼고 용을 써봤는데 아무것도 아닌 제가 너무 빼기만하는 것도 오히려 큰 교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권하시며 남편과 기념사진이라도 남기라는 말씀에 또 넘어갔습니다.

정석희선생님은 칼럼뿐 아니라 사람을 설득시키는 대단한 능력자이시더군요.

덕분에 정석희선생님을 직접 뵐 수 있는 영광까지 안았으니 머리도 제대로 못한 제 얼굴이 공개된 부작용은 감수하려고 합니다.

 

ㅎㅎ 눈이 뻑뻑한 증상은 제 사진 탓이 아니랍니다. 지금 앉아계시는 주위가 너무 건조한 탓일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