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것 만지기(kitchen)

살림해서 뿌듯한 날-나물 무치기

hohoyaa 2009. 11. 28. 12:03

지금 생각하니 외갓집은 야채 위주의 식단이었다.

이모들과 모이면 늘 상추에 호박잎에 깻잎에... 여러가지 나물들을 비비고 싸먹고.

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그게 당연하고 또 맛있는 것인 줄 알고 먹었고 초고추장이나 양념 간장,강된장 같은 것들도 엄마를 도와 곧잘 만들었었는데 그런 것도 자꾸 해보지 않으면 맛이 안나는지 집에서 좀 만들어 보려하면 예전처럼 맛있지가 않다.

그 때에는 엄마 옆에서 엄마가 넣으라는 재료를 찾아 넣기만 하면 신기하게 맛이 제대로 났었는데.

 

중학교 때 글짓기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무슨 때가 되면 열리는 백일장에서 상을 도맡아 타고 교지에도 그 글이 실려

난 그 친구의 글을 몇 번이고 되풀이 읽을 수 있었다.

좀 불우한 환경의 그 친구는 자신의 가난을 어찌나 맛깔나고 명랑하게 표현했는지 그 글 속의 그 친구는 엄청 행복해 보였다.

그 중 하나가 어느 여름 날, 할머니와 단 둘이 찬 밥을 상추쌈에 싸먹는 글이었는데 목구멍이 다 보이도록 크게 벌린 입속으로 밀어넣는 상추쌈의 모습이 내게는 햇살이 부서지는 파도의 신선함처럼 상추쌈주위로 물방울이 마구마구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난 정말 그 친구가 아주 유명한 작가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아직껏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 다른 길을 가고 있는가 보다.

 

난 나물이 좋다.

그런데 직장에 다닌답시고 나물을 다듬어 조리하는 그시간과 정성이 부족해 자주 해먹지를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물을 잘 안먹는 아이들도 좋은 핑계가 되었고 친정에나 가야 나물 반찬을 맘껏 먹고 싸갖고 오곤 했는데 며칠 전 '고백수첩'을 쓰면서 비빔밥 이야기가 나와서 어젠 나물을 몇가지 무쳐봤다.

 

 

 

시금치,버섯,콩나물,도라지 

 

 

나물을 무친 김에 상혁이 앞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주었다.

다시마로 튀각을 만들어 부숴넣어 주고 싫어하는 버섯은 고추장으로 살짝 덮어 주었다.

 

 

토요일 점심은 온가족이 둘러 앉아 비빔밥을 먹으려 했는데 남편도 새벽같이 나가고 하나도 나가고.......

 

 

어제 나물과 같이 만든 밑반찬.

제주산 무말랭이에 말린 고춧잎을 넣어 더 맛있다.

우엉 조림이나 연근 조림은 콩자반과 함께 상혁이가 젤 좋아하는 반찬이라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는다.

우엉 조림을 보면 늘 김밥 생각이 나서 조만간 김밥도 한 번 해 먹으리라.

올해 신종플루의 영향으로 아이들의 현장학습이 모두 취소되어 김밥 먹은지도 꽤 되었다.

야채를 일부러 찾아 먹는 아이들이 아닌데도 떡 본 김에 해 먹는 비빔밥과 김밥은 늘 좋아라 한다.

그러다 보니 참나물도 있었네.

이것도 같이 비빔밥에 넣어 먹으려고 만든 것인데 또 깜빡했군.

오늘 이렇게 밑반찬 사진을 안 찍었더라면 저 참나물이 있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비빔밥 다 해 먹고

나중에서야 참나물의 존재를 알 뻔 했다는 것.

 

 

동네 할머니가 주신 늙은 호박은 이렇게 말려 본다.

나중에 호박오가리 떡을 해먹어도 좋으니. 

 

빵 10가지 만드는 것보다, 고기 반찬 몇개 하는 것보다 이렇게 나물 반찬을 해 놓는 날이면 살림을 참 잘살았다는 만족감에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