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만지기(children)

영어내신 전교 1등인 우리 딸이 학원가서 당한 굴욕

hohoyaa 2009. 7. 2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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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3학년 1학기,하나의 영어점수가 서술형까지 만점을 받아 전교 1등을 했다.

얼마나 기특한지~ 작년 겨울 방학즈음 수학때문에 다니기 시작했던 학원을 개학 전, 중도에 포기했을 적엔 그리도 밉더니만 역시 혼자 하는 공부가 더 결과가 좋게 나온 것이다.

 

여름방학이 되어 시간이 많이 남게 되니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하고 의논하다가 길게 보고 에세이 수업을 받아보자고 했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딸이 먼저 하겠다는데 마다할 부모가 어디 있으려고.

그래서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보고 주입식이 아닌, 우리 하나한테 잘 맞겠다 싶은-그래도 좀 유명하다는 어학원을 찾아 입학 테스트를 봤다.

그러면서 상혁이의 실력도 궁금해 같이 데리고 가봤다.

 

우리는 당연히 상혁이는 기대를 하지 않았고 하나에게는 꽤 기대를 했다.

무엇보다 영어를 좋아하고, 내신도 좋고,얼마 전엔 자기가 좋아하는 원어민 교사와 함께 교내 영어 골든벨의 사회자로 나서서 다른 원어민 교사들의 많은 격려와 칭찬이 있었다고 들었기에 기대를 했다.

다른 것은 없고 그저 이 학원에서 에세이를 쓰는 연습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기대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처구니 없게 나왔다.

기대치 못한 상혁이는 합격선에 들어왔는데 하나는 중학생 수준으로서는 자격미달에 상혁이만도 듣기가 안된다고 한다. (이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동생 영어공부를 가르쳐 주는 누나가 동생보다 못하다니.)

시험문제가 토플형식이니 그런 공 부를 따로 하지 못한 하나는 당연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상담교사 말로는 하나가 독해는 물론 듣기도 안된다니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지만 테스트용지의 결과가 그렇다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우리가 실망한 것도 크지만 무엇보다 하나 본인이 더 크게 상처를 받을 것이기에 결국엔 동생인 상혁이에게라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끔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단 한 번 치른 시험에다 시험 점수가 아무리 낮더라도 그래도 중학교 3학년이고 전교 1등의 내신인데,원어민과의 회화도 제일 높은 반이고 발음도 내가 듣기에는 그리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기에 부탁을 했고 일단 하나의 위신을 생각해 하나보다 좀 높은 단계의 아이들이 모여있지만 일단 특강을 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그 반에서 적응을 잘하면 정규반에 넣어주겠다고 했던 것이기에 우리는 그도 감지덕지 고맙게 생각했다.

 

테스트를 보고 며칠간을 하나는 그런 결심을 했다한다.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같이 너무 좁은 세상에서 만족하고 살았나보다고.

앞으로라도 이번 시련를 기회로 삼아 한층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겠노라고 어금니를 깨물고 혹여 수업 시간에 영어를 못알아 들으면 어쩌나 걱정을 하며 학원엘 갔다.

하나가 학원에 있는 그 시간동안 나도 불안했다.

아이가 자신에게 실망을 하고 영어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싶어 불안했었다.

수업이 끝나고 하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나 말로는 자기가 완전 굴욕을 당했다며 어찌나 흥분을 하는지 오는 동안 내내 전화통을 붙잡고 씩씩거렸다.

들어가 보니 원어민 수업도 아니고 초등학생들과 중학교1,2학년 들이 앉아 있더란다.

게다가 선생님은 하나가 중3이라니까 '중3이 어떻게 이 반에...'하며 비웃는 느낌을 받았고 어느 무개념 초등학생은 중3얼굴 좀 보자고 하더란다.

그래도 자기는 꾸욱 참았단다.

아무리 초등학생이지만 나보다 낫다면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는데.......

수업 내용이 너무 기초적인 것이라 실망을 했단다.

게다가 같은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수준도 그리 높지 않았고 결국엔 자신이 있을 단계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황금같은 시간에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복습하느라 비싼 돈 들여 앉아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단다.

선생님도 처음엔 하나를 우습게 봤다가 질문에 답하는 것을 보고는 쉬는 시간에 테스트를 엄청 잘 봤나보다고 묻기에 테스트는 죽을 쑤었고 내신으로 들어 왔다고 했단다.

 

그 날 하나는 학원에서 수업을 듣다가 자기 학교 친구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단다.

서울의 이름난 학원에 다니고 영재 소리를 듣는 아이들을 모두 제치고 1등을 했는데 여기 이 학원에서 초등학생들과 초급 공부를 한다고 하면 자기 친구들과 학교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공부시간에 더 열심히 대답하고 시험도 끝까지 봤단다.

비록 듣기 시험이 너무 쉬워서 졸다가 한개를 틀렸지만.

보통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다 맞거나 한개 틀린 사람부터 시작을 하는데 이 반에서는 15개 틀린사람부터 시작을 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굴욕감을 느꼈단다.

그리고 문장읽기라도 잘해 보려고 혀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것은 아예 있지도 않더라며 내 앞에서 혀를 좌우로 흔들어 대며 운동하는 모습을 보이며 깔깔 웃었다.

여름방학을 알차게 보내려고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원에 하나에게 맞는 반으로 재배치해주기를 건의하는 것이었다.

일단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하니 2주가 지난 뒤에 중간평가가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방학의 반을 이미 보내는 것이지 않은가.

하루가 새로우니 2주를 기다릴 수가 없어 하나와 같이 남편 차를 타고 학원에 갔다.

그러나 학원의 상담 교사는 하나의 실력이 중학생으로서 형편없다며 오히려 그 반 애들을 우습게 보지말라며 요지부동이다.

난 이미 수업을 해 봤으니 담임교사의 의견을 들어보면 알게 아니냐고 아무리 애가 시험을 못봤어도 그렇지 어떻게 중 3을 초등학생과 같은 반에 넣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차라리 인터뷰라도 해보면 좋을텐데 그 학원에서는 오로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아이를 판단하고 소비자인 우리가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방어에만 열심이니 당연히 남편의 화가 폭발을 해 언성이 높아졌다.

목소리가 커지니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아마 전 날 수업을 했던 담임에게 물어봤는지 다른 상담교사가 들어와서 담임 역시도 하나가 테스트는 못봤을지 모르지만 그 반에 있을 실력은 아니라고 했단다.

 

아~! 수다를 재미있게 잘 떨지 못하는 나는 이정도의 표현력밖에는 없다.

어쨌든 학원측의 배려(?)로 다른 특강 한시간을 들어 보기로 했고 월요일인 내일은 그 학원내에서 특목고 반 배정 테스트를 보게 해주겠다고 했다.

하나가 외고나,특목고 갈 실력이라 그런 것은 아니고 단지 그런 시험으로라도 변별력을 높여서 하나에게 맞는 강의를 들을 수 있었으면 싶은 것인데 한 편으로는 그게 또 걱정이다.

이미 아빠의 큰소리로 일이 크게 되었고 하나의 마음엔 그게 짐이 되었는데 시험에 중압감이라도 없으면 좋으련만 예민한 아이가 아니던가.

또 시험을 잘보면 몰라도 그마저도 잘 안나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는 것이다.

하나는 자기는 괜찮다고 한다.

배우는데 창피한게 어디 있느냐고.

자기는 오히려 어려운 반에 들어가서 좌절을 느껴야 열심히 하고 그래서 끝나는 시간에 반드시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는데 그것도 우리 바램이지,학원입장에서 과연 하나를 곱게 봐주려나 싶기도 하고 하나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다른 걱정들이 움트고 있다.

 

요즘 영어학원에는 온통 초등학생들이다.

늦게 시작하는 중학생은 설 곳이 없다.

지금도 만화책과 잠자리채 하나면 신나게 뛰어노는 우리 상혁이 또래의 초등학교 3학년 생들이 인터넷상으로 영어학원의 수준을 평가하는 글들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이 학교 공부만 해 온 우리 하나를 보면 한심처량할 정도이다.

남편은 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한다.

미리 미리 알아서 뒷바라지를 했어야 했는데 어학연수는 커녕 영어학원에도 안 보냈으면서 어떻게 수 년간 학원 다닌 애들과 같아지길 바라겠느냐고.

아침저녁으로 하나 눈치를 보며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오늘 저녁, 하나에게 연습삼아 블로그에 영어일기를 써보라고 했더니 영어 일기를 쓰고 녹음도 했다.

내 눈엔,내 귀엔 이렇게 잘하는 내 딸인걸.

진즉에 뒷바라지를 했더라면 그런 수모는 안당했을텐데.

 

 

이 글을 쓸 생각은 없었는데 하나의 네이버 블로그는 파일 업로드 용량이 2mb라 다음에 올리면서 이렇게 신세한탄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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