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hohoyaa 2009. 2. 23. 11:33

책읽기라는 것은 편하게 생각하면 한 없이 게을러져 시간을 한정없이 늘이기 일쑤이다보니 오랜만에 다시 리뷰어로 노크를 하게 되었다.

작년까지는 본의 아니게 주로 아동 도서위주로 리뷰어 활동을 하다보니 부담은 적어도 상대적으로 적잖이 심심하기도 했었기에 한 동안은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읽겠다고 결심을 하고 리뷰어 신청을 자제했는데 역시 나는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성격인지 겨울 동안 그리 많은 책들을 읽지 못했다.

봄을 기다리며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낯익은 제목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리뷰어 모집 공지를 보게 되었다.

마침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원작 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책도 덩달아 서점가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가보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가 '스콧 피츠제럴드'이니까.

 

 

 

중학교 시절 TV 흑백영화에서 내 마음 속으로 들어 온 배우가 있었다.

그가 나온 영화를 많이 보지도 못했으면서 뭐가 그리 좋았는지 문방구에서 파는 컬러사진을 액자에 넣어 내 방 벽에 걸어두고 거울 보듯이 날마다 들여다보고 또 보았다.

언젠가 들춰본 나의 오래 된 앨범 한켠에는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젊은 시절의 모습 그대로 있었다.

그 시절 ‘위대한 개츠비’는 영화로도 못보고 순전히 레드포드 때문에 책을 사서 읽었는데 제목이 그래서 그런가 그 이후로 내게는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한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만큼이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작가로 각인되어졌다.

 

작년부터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출연하는 브래드 피트의 노인 분장이 심심찮게 화제가 되었다.

그 기사들을 접하면서 헐리우드에서는 어떻게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할까하며 젊은 레드포드를 보듯이 설레였던 브래드 피트의 선택에 적잖이 실망도 했었다.

제목부터가 굳이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내용을 미루어 짐작케 하는 뻔한 제목이 아니던가.

동화책 제목도 아니고 시간이 거꾸로 가다니.......

그러다가 이 영화의 원작이 있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작가가 ‘위대한 개츠비’를 쓴 그 위대한 스콧 피츠제럴드라니.

또 한 가지 의외인 것은 이 소설이 장편도 중편도 아니고 아주 짧은 단편이라는 것이었다.

돌연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던 벤자민의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영화에서는 그 내용이 사뭇 달라져 있으리라는 것을 다른 정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가 작가의 자전적 요소의 이야기라치면 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도 작가의 삶이 어느 정도 녹아 들어가 있다.

단순히 내 개인적 생각이지만 점점 젊어지는 남편을 감당치 못해 그를 떠나간 아내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던 작가의 삶을 닮았다.

젊은 시절 방황을 하고 미래에의 불확실성 때문에 환영받지 못하던 신랑감에서 일약 작가로서의 성공을 거둔 후에는 사교계의 총아로 떠올라 기행을 일삼았고 끝내는 해로하지 못하고 불우한 말년을 보낸 피츠제럴드 부처의 모습이 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속에도 쓸쓸하게 투사되어 있는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애초에 이 소설은 ‘슬프게도 인생은 최고의 대목이 제일 처음 오고 최악의 대목이 맨 끝에 온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익살스런 피츠제럴드에 의해 탄생한 벤자민은 겉모습만 늙은 애늙은이가 아니라 나면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며 자신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우윳병이 아니라 지팡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현명한 노인네에 가깝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성장할수록 젊어질 것이라는 사실만은 몰랐던 것 같다.

그는 점점 나이 들어감에 따라 젊어지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가족과 나중에는 그의 아내마저도 과거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양 현재 보이는 그의 모습만을 기억한다.

그들이 외면했던 혹은 그들이 열광했던 그 시간들은 모두 잊혀지고 오로지 지금 이 시간만이 그들에게는 진실인 것이다.

벤자민은 어려서는 할아버지의 친구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아버지와 함께였으며 나이들어서는 아들의 그늘아래 손주의 놀이친구로 늙어간다.

벤자민의 황금기에 사랑했던 아내는 결국 그를 떠나갔으나 그에게는 죽음마저도 감미롭다.

이미 나이들어 어려진(?) 벤자민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로 인한 아픔같은 것들이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기에 상실감도 크지않다.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희미해지듯 벤자민의 사고도 단순해지고 우유의 따스하고 달콤한 향기가 마음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던 날 그는 세상과 이별을 고한다.

그에게는 처음 태어나던 날 세상에 대한 불안감이 없었듯이 죽음 앞에서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인간이 죽음앞에서 평화롭고 부드러운 잠을 자듯 그렇게 스러져 간다면 과연 그 보다 더한 행운은 없을진대 그런 의미에서 벤자민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인 행복한 사람이었다.

세상의 모든 아기가 인생의 쓴맛단맛을 모두 아는 노인으로 태어난다면 자기 앞의 생을 미처 다 살기도 전에 자살을 생각하는 회의적인 아기(?)들도 상당수 될 것 같은데 다행히도 벤자민은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기에 그의 앞에 놓인 생을 성실하게 살았다.

작가는 황당한 모든 상황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상상에 따라 전혀 새로운 모티브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영화에서는 마지막이 감동적이라는데 감독은 과연 어느 시선으로 이 작품을 보았는지 과연 ‘우유의 따스하고 달콤한 향기가 마음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던 날’은 그의 마지막 날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는 모두 11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위대한 작가는 단순히 빚을 갚기 위해 단편을 썼다고도 하는데 한 편 한 편 읽다보면 모두 그 의미를 부여할 만 한 작가의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특히 낙타엉덩이같이 재치있는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은 기대치 못한 행운이었다.

영화의 영향으로 같은 제목의 책이 비슷한 시기에 여러 출판사에서 쏟아져 나왔다.

어떤 책은 만화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어떤 책은 영한대역본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이왕 피츠제럴드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단편모음집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위대한 개츠비
F.스콧피츠제럴드 저/김욱동 역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저/김선형 역
피츠제럴드 단편선 2
스콧 피츠제럴드 저/한은경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