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살 만지기(companion )

다 성격탓이야.

hohoyaa 2008. 12. 10. 11:52

 

 

 실밥을 풀고 한 컷. 세수는 분명 했건만 머리를 못감아 그런가 얼굴이....ㅠㅠ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에라도 홀린 것처럼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날, 일요일엔 온 가족이 오랜만에 바람을 쐬자고 부푼 가슴을 안고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이미 전 날 남편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은 내 자전거를 사 왔고 시험 운전을 해 본 남편은 쇼바가 있는 내 것이 역시 오래 달리기에도 좋다고 나보다도 더 흥분했었다는게 맞는 말일게다.

나도 새 자전거를 타고 더 추워지기 전에 아이들에게 한강 바람을 쐬어 주고 싶었다.

남편은 상혁이의 자전거 안장을 손 봐주고 나와 하나는 먼저 골목을 빠져 나와 바람을 가르며 마구 달렸다.

우리 앞에는 강아지를  끌고 산책나온 아저씨와 아줌마 둘이 자전거를 타다가 내려서 걷다가 하면서 가고 있었다.

우리가 가려는 진로를 방해하며 가고 있으니 당연히 나는 조급증이 생겼다.

앞뒤로 가는 것도 아니고 옆으로 나란히 얘기하며 길을 가로막고 가는 아줌마들을 피하노라니 한 옆으로 마주오던 차는 나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고 안그래도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해야 하는 부담감에 얼른 이 길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더구나 자전거는 잘 타지만 이 길이 초행인 하나가 뒤에서 따라 오고 있으니 잘 오고 있을까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예 가속 페달을 밟고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남들은 아무도 몰랐지만 그건 일종의 화풀이였다. 쌩하고 지나가는 바람이 내가 그들에게 보내는 화풀이였다.

새 자전거는 성능도 좋지~!

경사 급한 내리막을 지나 개울을 건너고 오르막을 힘있게 잘도 오르고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가슴이 탁 트이는 한강 고수부지가 보일 것이다.

앞에서 길을 가로 막으며 자기들 생각대로만 가고 있던 아줌마들을 따돌린 기쁨도 잠시 .

아뿔싸.

공사중인 두번째 내리막길에 이르러 후회가 되었지만 자전거는 이미 그 길로 내려가고 있었다.

늘 공사중이었어도 그 아랫쪽 바닥은 단단한 바닥이었는데 그 날은 그 바닥에 커다란 돌들이 깔려 있었고 나는 그걸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브레이크도 소용없이 나동그라진 나는 그 와중에 새 자전거 핸들을 손에서 놓지 않고 그대로 한바퀴 굴렀나보다.

작용반작용으로 요동치는 자전거를 제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젤먼저 내 머릿속에서는 그 아줌마들이 떠올랐다.

그 아줌마들에게 화를 낸다며 쌩 달려 왔건만 난 보기좋게 넘어지고 만 것이다.

어디가 아픈지 부러졌는지도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른 일어나려고 했는데 자전거 밑에 깔린 몸은 말을 안 듣는다.

가까스로 내 얼굴위에 보이는 핸들을 들어 다리를 빼낼 공간을 마련하고는 벌떡 일어섰다. 순식간이다.

그리고 길에서 안 보이게끔 돌아서서 옷의 먼지를 터는데 익숙한 장면이 보였다.

안경에 금이 갔나? 잔 금이 보이는 듯 하더니 그 위로 붉은 피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며 퍼지는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시야에 한가득 들어왔다.

'이건 완전히 CSI 화면이다.'  그 와중에 드라마 생각을 하며, 뒤에서 하나가 놀라며 뛰어오는 소리와 지나던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어 오는 소리에 그 아줌마들의 모습도 상상되어진다.

난 하나가 피를 보면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그러면 그 아줌마들이 가까이 다가 올까 봐 얼굴을 수그리며 남이 들을까 작은 소리로 "엄마는 괜찮아.다리에 흙이나 털어 줘."하는데 하나가 갑자기 "엄마, 피."하며 울기 시작한다.

"울지 말라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뒤이어 상혁이와 남편이 왔다.

그제서야 난 얼굴을 들어 멋적게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날 아침 남편은 혹시 아이들에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며  여행용 티슈 한 통을 챙겨 들었었다.

그 티슈로 내 얼굴의 피를 닦아 보더니 많이 찢어졌다고 응급실로 가야겠다고 한다.

모처럼 맞은 휴일 우리 가족의 한강 고수부지 자전거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불행은 늘 꼬리를 물고 온다고 했던가?

병원 응급실에 가기위해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는 상혁이가 다니는 태원도장의 차량을 만나게 되었다. 

몰골이 말이 아닌지라 외면하면서 상혁이에게 '상혁아.너의 태권도장 차다. 아는 척하지 말고 조용히 해.' 했건만 요 녀석은 뒷말은 듣지도 않고 얼른 경례를 붙이며 "태.권.안녕하세요? 관장님."한다.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날이로군. ㅠㅠ

집에 와서 급하게 씻고 흙묻은 옷을 대충 갈아 입고 남편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가는 차안에서는 모두 말도 없이 있으니 분위기가 무거워 부드럽게 풀어주려고

 백미러를 보면서 짐짓 우스갯소리를 했다.

"아휴~, 이마에 흉이 생겨 나중에 재혼할 때 흉잡히겠다.ㅋㅋ^^;"

아무도 대꾸를 안하는데 울 상혁이가

"엄마, 그러니까 인제 재혼의 꿈은 접으시고 고집좀 그만 피우세요.(ㅡㅡ)"

짜식이 그저 웃자고 하는 말인데 정색은.......

병원에서는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다고 하니 뇌진탕이 의심된다고,그리고 상처의 깊이로 봐서는 충격이 있었을거라고 CT촬영을 하자 했다.

난 바닥에 머리는 안 부딪쳤고 이마의 것은 아마도 자전거 핸들이 깨지면서 생긴 것 같고 오히려 오른 쪽 무릎이 평소에도 그리 미덥지 못했는데 넘어진 후로는 손만 스쳐도 자지러지게 아프니 무릎 사진을 좀 찍었으면 했다.

또 파상풍 주사도 맞아야 하고 항생제를 쓰려면 또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니 반응 검사도 했다.

결과는 모두 좋게 나와 아무 이상이 없었고 다만 오랜 기다림 끝에 성형외과 의사가 와서 7 바늘을 꿰매고 끝이 났다.

병원비가 30만원 가까이 나왔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점심으로 맛있는 짜장면을 사주겠다고 한 그 날의 약속은 하루종일 응급실에 누워있던 나 때문에 찬바람 솔솔 병원 로비에서 쪼르르륵 소리가 나는 곯은 배들로 대신했다.

나는 그래도 따뜻한 곳에 있었는데 아이들은 휴일이라 썰렁한 병원 로비에서 추위와 굶주림,그리고 엄마의 얼굴에서 피를 본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새 자전거는 핸들이 망가졌고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돈은 돈대로 깨지고 식구들만 괜히 고생시키고. ㅠㅠ

응급실에서 나와 저녁으로 먹게 된 중국 음식,아이들은 너무 놀라서인지 배가 많이 고팠는데도 제대로 먹질 못했다. 정말 미안하다. 얘들아.

 

넘어져 다쳤다고 겁을 내고 안 타면 다음에도 타기 힘들다고 해서 남편과 나는 다음 날 또 자전거를 탔다.

전 날 사고가 났던 현장에 가 보니 '공사중'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전 날에는 분명히 없었다.

경황이 없어 증거 사진을 찍어 두지 못해 억울한 마음 뿐.

공사중인데도, 그 길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휴일이라 간판 세우기를 미루다 월요일이 되어서야 세웠다고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투덜거렸다.

그리고 새 자전거가 너무 잘 나갔던게 화근이라 했더니 남편 말이 내 성격이 문제라고 한다.

왜 그렇게 혼자 급하게 갔느냐고, 평소에는 그 공사장에서도 중간에 내려서 건너더니 무슨 마음으로 앞뒤 살펴 보지도 않고 그저 내달렸느냐고.......

그 아줌마들처럼 천천히 가면 차도 알아서 비켜 가는데 문제는  간판도 아니고 그 아줌마들도 아니고 내 앞에 누가 얼쩡(?)거리는 것을 못 참는 내 성격이 문제란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중간에 무언가가, 누군가가 끼어들어 차질이 생기면 순간 욱하고 부아가 치밀어 올라 곧 후회되는 행동을 하고 만다.

그 날은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평화로운 나들이를 하려고 한 것 뿐인데 그 계획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고 저 사람들 때문에 늦춰진다고 생각하니 슬며시 열이 올랐던 것이다.

그래,인정을 한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왜 그 날따라 티슈는 준비를 했느냐고, 그래서 다친 것 같다고 우겨 봤다. *^^*

 

치료 중 이마에 거즈를 붙이고 다니는게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얼굴로 공방에도 가고, 마트에도 가고, 백화점에도 갔었고, 머리를 못 감아서 미장원에 가서 감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내 옆에 있던 남편에게는 그게 참 불편했었나 보다.

남들이 보면 밤에 쥐어 박히고 낮이면 다정한 척 손잡고 다니는 사이코 부부인 줄 알거라나?

우린 농담삼아 그런 말을 하며 킥킥댔었는데, 중간에 소독하러 병원에 가기로 한 날, 소독같은 것 안 해도 된다는 나를 억지로 앞세워 남편이 따라 갔었고 실밥을 뽑으러도 마침 시간이 있던 남편과 함께 갔더니 의사가 한마디 한다.

"두 분이 늘 같이 다니시네요."

그 말에 또 다른 생각을 해 봤다.

'저 남편이라는 사람. 여자가 가정폭력으로 신고할까 봐 따라 다니는 것 아냐?' 하고 의사가 오해했을까?

 

어쨌든 평소 이유없이 머리가 아프면 내 뇌속이 궁금했었는데 아무런 이상 징후가 없다하니 다행이다.

오른 쪽 무릎은 버스를 오를 때 좀 힘들어 서러웠는데 관절염도 특이 사항도 없다하니 안심이다.

일요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다며 일기꺼리 찾아 헤매던 상혁이가 이 일로 두페이지 가득 일기를 쓰고는 아주 만족해 했으니 그것이 가장 기쁘다. ^^;

 

 

연하가 아니라 다행이야.   http://blog.daum.net/touchbytouch/16839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