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오늘도 무사히...
오늘은 상혁이 학교 개교 기념일이라 학교엘 가지 않았다.
평소에는 깨워야 일어나는 녀석이 오늘은 6시가 되기 전에 깨어서 불을 켜고 책을 보고 있었다.
늘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대로 읽는 책이라 머릿속으로 들어 가는지 귓구멍으로 빠져 나오는지 옆에서 보는 나는 혼란스럽다.
오늘 하루도 빈둥빈둥 온 집안을 헤매고 다닐 녀석을 생각하니 차라리 공방에나 데려가자라고 결론을 냈다.
공방에 같이 가게 책을 몇권 챙기라고 했더니 대뜸 수학 익힘 책을 챙긴다.
"아니 무슨 공방에서 공부를 해? 그냥 쉬엄 쉬엄 놀다가 책 보다가 그러고 와."
"그래도 이거 숙젠데......."
"갔다 와서 하면 되잖아."
속으로는 얘가 또 공방에서 엉뚱한 질문을 해가며 이 엄마를 괴롭히려고 하나 싶어 서둘러 미리미리 단속을 했다.
질문을 해서 설명을 해 주면 그 설명에서 또 질문, 그걸 이해 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으면 또 다른 곁가지 질문을 끊임없이 해 가며 사람 열불나게 하는데 집도아니고 공방에서 공부를 하겠다니.
남편을 위한 서랍장이다.
남편이 원하는대로 바퀴를 달았다.
바퀴를 달아 놓으면 가구 옮기기가 수월해서 좋기도 하지만 아래에 통판이 들어 가므로 무겁기도 하고 나뭇값이 좀 나간다.
생각끝에 저렇게 지지하기로 했다. 버티겠지 뭐.......
옆 면과 윗 면을 사포하고 칠까지 하고 오면 좋았을텐데 상혁이가 공방이 갑갑하다고 몸부림을 치며 바퀴 달린 의자에 배를 깔고 누비고 다니는 바람에 사포만 해 놓고 왔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왜 몸을 가만 두지 못할까?
돌아오자마자 태권도장에서 땀을 흘리고 와서 밥도 잘 먹고 수학 익힘 숙제를 한다고 좀 앉아 있는 것 같더니
어느 새 '엄마,엄마'부르는 소리가 애절하다.
"왜애?!"
"엄마,어림하면 정확하면 안 되죠?"
"뭐라고? 뜬금 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수학 익힘에서 어림하라는데 그러면 정확하지 않은거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이상해요."
"뭐가?"
"이거요."
상혁이가 내민 수학 익힘책을 본다.
"내가 학교에서 처음에 8cm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틀렸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7cm라고 했는데도 틀렸대요."
"이거 자로 재 봤어?"
"자로 재면 안되요.어림하는 거니까."
"그래? 그래도 한 번 재 보자."
자로 재어 보니 8.5cm다.
"이거 8.5 라고 적어야 되는거 아냐?"
"아니에요.자로 재는게 아니고 어림하는 거거든요.혹시 9cm 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지 않니? 8도 아닌 걸~!"
"그래도 올림하면 9cm잖아요. 아닌가? 7도 아니고 8도 아니고 9도 아니면 답이 뭐지?"
"아무리 어림해도 수학이니까 8.5가 아닐까?"
"8.5는 아니에요.그거는 어림하는게 아니잖아요."
"8.5로 어림할 수도 있지 뭐. 상혁아,그 때 형아가 준 전과 있지? 그거 갖고 와봐."
학원 강사인 조카가 상혁이를 생각해 어렵게 구해서 보내 준 교사용 전과엔 정답이 나와 있을까?
상혁인 이제까지 여기에 이렇게 정답 풀이가 되어 있는 걸 몰랐는데 이번 일을 기회삼아 앞으로 종종 애용하면 안 되는데~~^^;
여기엔 정답이 9cm로 나왔다.
"엄마, 그런데 이상해.어림했으니까 8cm도 맞는거 아니에요? 정확한 것만 안 쓰면 되잖아요."
"그러게. 엄마 생각에도 그런데. 상혁이 말대로 아마 반올림을 해야 하나 봐."
"그런데 어림했으니까 8.5cm라는 걸 몰랐을거잖아요."
"그러게~? 자로 재어 보기 전엔 알 수 없지. 어이쿠~! 그나저나 우리 상혁이 .아주 어려운 공불 하고 있었구나. 엄마도 헛갈리는걸? 대단한 상혁이네."
결국 이렇다하게 납득을 못 시키고 대충 얼버무렸다. ^^;
잠자러 들어간 녀석이 갑자기 윗배가 아프다고 한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배는 아니고 내일이 걱정되서 아픈 것 같단다.
"내일이라면 받아쓰기 시험?"
"아니, 국어 쓰기."
"그건 또 뭐야?"
"내가 학교에서 썼는데 선생님이 '검'자 도장을 안 주셨어. 그래서 걱정이야."
"다 지난 일인데 무슨 걱정이야?"
"그런데에 다른 건 다 도장을 주셨는데 이것만 안 주셨거든.그래서..."
"그야 선생님이 깜박 잊으셨을 수도 있지."
"아니에요. 여기 보면 앞에랑 뒤에랑은 다 도장이 있어요.그러니까 이게 잘 못 한거라 도장을 안 주신거에요."
"그럼 그 때 여쭤보지 그랬어. 아마 너무 짧게 써서 그런게 아닐까? 그리고 제목도 안 썼네?
여기엔 제목도 쓰라고 나와 있는데."
"어? 정말?"
"어떻게 할래? 엄마가 지워 줄테니까 다시 써 볼래?"
"응."
다시 쓰고 나니까 배도 안 아프고 이젠 마음 놓고 잘 수 있겠다고 다시 얼굴이 환해졌다.
누나보다도 힘이 센 상혁이의 혀.
그래서 그 힘이 센 혀를 움직이느라 말을 할 때 그렇게 뜸을 들이고 느릿느릿 엄마 속터지게 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