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2003/03/25 09:54:18
하나가 학교에서 맞고 왔다.
알림장을 쓰면서 휘파람을 분다고 선생님께 불려나가
종아리와 등짝을 맞았단다.
그리고 종례시간 내내 칠판앞에서 뒤돌아 서 있었기 때문에 알림장 내용도 제대로 기억을 못하고,혼자 남아서 교실
청소까지 하고 왔단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팅팅 부었다.
황당했다.
요사이 하나는 휘파람을
잘 불고 싶다면서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사실 하나가 부는 휘파람은 휘파람 수준이 아니라 그저 입으로 "휘~휙"하는 정도다.
아마도 너무 못
불어서 선생님의 귀를 자극했을까?
마치 내가 맞은 기분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리고 괜히 애꿎은 하나한테 화를 냈다.
그 이야길 들으신 친정 어머니는 혀를 끌끌차신다.
"그러게 학교에 가서 선생님도 만나고 했어야지,너처럼 무심하게 딸을 키우면 남들도 애를
우습게 보는게다."
나중에 곱씹어 생각해 보니 가장 상처받고 괴로운 사람은 당사자인 하나인데 못난 엄마는 따뜻하게 감싸지는
않고 오히려 내 수치심 때문에 아이를 더욱더 닥달을 했으니...부끄럽다.
한참이 지나서야 도대체 왜 휘파람을 불었느냐고
물었다.
"오랫만에 토요일이라 기분이 좋아서요."
"..."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까
더이상 묻지 마세요."
ㅡㅡ; 선생님도 그 이유를 아셨더라면 그렇게 심하게 때리지는 않으셨을텐데...
<개인 홈피에서>
2003년이니까 3학년 때이네요.
예나 지금이나 학교 찾아가는 일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지라,몹시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당장 학교로 가서 선생님 비위를 맞춰야 할까? 아니면 선생님이 잘못 되었다고 폄훼해 버릴까 했는데,
일단 학기 초라서 우리 하나를 잘 모르셔서 그렇지 일단 너를 알고 나면 달라지실거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었지요.
그리구 잘 불지도 못하는 휘파람, 끊던지 연습을 더 하던지 하라고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엔 촌지에 대한 부담감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그 유혹을 끝내 뿌리치고, 시간이 지나자 하나도 잘 적응하는것 같았고 여전히 학교가기를 즐겨하더이다.
그리고 몇달 후,
우리 부부가 태국 여행을 다녀온 사이 하나가 상을
탔습니다.
누누히 밝혔지만 1학년때부터도 숙제를 도와 주지 않는 엄마여서인지,하나는 상장하고는 거리가 있었는데...
순전히 자기
힘으로 만들어 낸 "문집"으로 우수상을 타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써 놓았던 일기 3점과 독후감 3점을 엄마,아빠의 도움
없이 혼자 워드로 문집을 꾸며 낸것두 기특하지만 그 일로 인해 담임과 촌지에 대한 기우가 씼겨 나가는 떳떳함이 더 기뻤다고
할까요?
만일 그 때 제가 학교에 찾아 갔었더라면 아마도 그래서 상을 받았겠거니 하고 오해를 했었을 것입니다.
하나의 능력도 무시되었을 것이고요.
그리고 그 해에 제 오기도 원없이 부려 보았습니다.
같은 반 친구가 백혈병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어서 성금 모금을 하길래 눈 딱!감고 20만원을 봉투에 넣어 보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일은 하나와 저만의 비밀이었는데,,,하나아빠와 의논도 없이 저지른 일이거든요.
그 전에 하나가 희귀한 병에 걸린적이 있어서 그 마음을 알아서이기도 하지만 제 마음 한구석엔 '촌지'에게 앙갚음을 하는 심정이었답니다.
졸지에 비상금을 날린터라 덕분에 몇달간 허리띠 바짝 졸라매고 살았지요...ㅡㅜ;
이제 벌써 마지막 학년 6학년이 되었네요.
이번 담임 선생님은 점심 시간에 섹서폰을 연주해 주시는 낭만적인 30대 남자 선생님이라고 날마다 자랑에 침이 마릅니다.
늘 이맘 때면 학교 갈 일때문에 전전 긍긍하는 옆의 지인들을 봐 왔기에 옛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엄마들 화이팅! ^ ^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