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hoyaa 2008. 3. 7. 09:20

난 초등학교 때 반장을 해 보지 못했다.

회장과 부회장은 해 봤으나 반장은 해 보지 못 했고,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나 해서는 안 되는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시절엔 여자는 반장, 회장앞에 '부'자가 꼭 따라다녔으니 할 수도 없었다.

엄마가 늘 말씀하시는 친정 오빠의 성격이 있다.

준비물을 사야 한다고 해서 돈을 주면 몇십원 남은 것까지 정확하게 고하고 남은 돈을 엄마한테 드리는 정직과 함께 새로운 곳을 가게 되면 늘 그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서 미리미리 준비하는 치밀함.

그리고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찍은 오빠의 초등학교 사진은 어쩌면 겁쟁이처럼도 보이는데 그게 틀리지 않다는 걸 엄마는 반장이야기로 증명해 보이셨다.

오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전 엄마는 무슨 믿음이 있으셨던지 절대 반장은 하지 말라고 하셨단다.

그냥 흘러 보낸 듯 한 말속에서 오빠는 어린 나이에 뭔가를 느꼈을까?

같은 반 여자 친구 엄마에게서 오빠가 반장이 되었음에도 한사코 안 하겠다고,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다른 아이가 반장이 되었다는 이야길 전해 들으신 울 엄마.

한 편으론 반장엄마가 안 되서 서운하기도 하셨고,곧이 곧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아들이 답답하기도 하셨을 터.

그러나 당시 어려웠던 생활 형편에 공무원인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반장의 자리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안도감도 들었다 하신다.

그런 이야길 들으며 큰 나도 반장 선거엔 누가 추천해도 반갑지 않았고 돈 안 들고, 엄마 손이 안 가고, 학급회의나 진행하는 회장단 정도가 나한테 어울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간혹 미화 부장을 할 때도 있었는데 그 때엔 엄마가 학교에 화분 하나라도 사 와야 하는 걸로 알고 있었으니 그렇게 해야하는 엄마에게나 그렇게 못 받는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었고 대신 나는 환경정리할 때 열심히 선생님을 도왔고 다행히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는 담임을 만나보지 못했다.

 

반장 할 아이들은 무언가 달라 보일까?

입학 후 반 배정을 하고 반장을 뽑아 놓으면 하나같이 반장을 할 만한 아이들과 엄마들이 반장이 되었다.

우리 친정 조카들만 해도 다 반장을 했는데 우리 아이들은 반장을 못 해봤고

역시나 올케들은 나보다 아이들 학교에 관심이 많은 엄마들이었기에 학교 돌아가는 사정에 훤했고 정보도 많았다.

그런 올케들의 눈에도 하나의 성격 상, 모두들 학교에 들어가면 반장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하나에게 늘 주의를 주었다.

반장은 하면 안 된다.

엄마는 회사 나가느라 바쁘니까 학교 찾아 갈 시간도 없고 소풍이나 운동회에 선생님 도시락까지 싸는 건 너무 힘들어.

다행히 학교에는 늘 적극적인 엄마들이 있어서 혹시라도 반장이 될까 걱정하던 내 우려는 김칫국을 마신 꼴이 됐다.

별 탈없이 학교에 다니던 하나가 6학년 때의 일이다.

새학년이 되어 집에 온 하나는 자기도 마지막으로 반장을 해 보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난 네가 반장을 한다고? 어떻게? 이제까지 한 번도 안 해 본 반장을 무슨 수로?

그건 1학년 때부터 해 온 아이들이나 하는거야.했더니

하나는 자기도 이제까지는 엄마의 말을 듣느라 반장을 안했는데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

경험삼아 한 번쯤은 해 보고 싶단다.

나는 나대로 중간에 전학 온 학교에서 뜬금없이 출마한 하나가 반장이 되지는 않을 거란 계산이 있었기에 맘대로 해 보라고 했다.

며칠 후 하나는

"엄마, 엄마는 내가 반장이 되면 뭐 해 줄 수 있어요?"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고 있던 나는

"뭘 바라는데?"

"그냥, 피자나  햄버거..그런거..."

"아니 반장이 되면 반을 위해 봉사해야지,무슨 피자?"

"아니 그냥 한 번 물어 본 것 뿐이야."

 

반장 선거가 있던 날 하나는 출마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왜 안 했느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아무것도 안 해 준다고 해서 안 했단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반장이 된다고 엄마가 뭘 해주느니 안 해 주느니 하는게 어딨니?

하나 말로는 자기네 반에 5학년 때까지 반장했던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자기가 반장이 되면 한 달에 한 번씩 롯데리아에 애들을 데리고 가서 셋트 메뉴를 사 주겠다고 공약을 했고 그 아이 엄마가 이미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반 아이들을 불러 몇차례 먹였다고 한다.

그 맛을 본 아이들이 하나에게 우리가 너를 뽑아 주면 넌 우리한테 뭘 해 줄거냐고 물었고 하나는 내게 들은대로 아무것도 못 한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어른들 선거가 진흙탕처럼 되는 걸 보고도 너희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우리 어린이들은 깨끗하고 순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이들은 너나 잘 하셔~하는 식으로 무시를 하고 다른 후보자에게 가서 거래를 하더란다.

그래서 자기는 그런 식으로 선거를 치르고 싶지않아서 포기했단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친구들에게 그 흔한 피자 한 판을 못 사서 배신을 당한 하나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후 중학생이 되더니 하나는 자력으로 반장은 아니어도 부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너무나 좋아했다.

자기가 친구들에게 아무것도 안 사줘도 아이들이 자기를 뽑아 줬다며 역시 개념없는 초딩과는 다르다며 세상을 다 얻은 듯 의기양양했다.

하나도 이젠 세상 물정을 알 나이니까 요즘은 제법 신문을 제방으로 가져다가 읽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세태를 비판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껏 비주류로 살아 온 자신의 인생을 투사하는 것 같아 안스럽기도 하다.

 

엊그제는 또 상혁이의 반장 선거가 있었나 보다.

1학년에 들어와서는 모든 학부모가 모인 자리에서 자원자가 없어서 선생님이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자모에게 반장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기에 모두들 이견이 없었다.

2학년이 되어서 처음 선거라는 것을 해 본 상혁이.

자기는 반장이 되고 싶은데 안 됐단다.

그래서 반장이 뭐가 좋은데? 하니까

차렷,열중 쉬엇도 하고 떠드는 아이들 이름도 적고 그리고 반장한텐 아이들이 꼼짝 못한다고 한다.

반장은 이제 감투가 아니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