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숙제
방학마다 나눠주는 방학계획표.
하나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번째 방학이 오고 두번째 방학이 오고,
시간이 없는 나같은 직장맘 ,아니 솔직히 고백하면 방학숙제 정도는 알아서 혼자 하는것이라고 누누이 말하며 별생각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 숙제라는것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이 혼자서 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았다.
박물관 견학-우리동네에 애가 혼자 차타고 쉽게 다녀 올만한 박물관이 있던가?
서울 시내에 있는 박물관에 가려면 회사 결근하고 아직 어린 아기였던 상혁이를 들쳐 업고 아기용품 들어간 큰 가방까지 들고 길을 나서야 하니 포기.
곤충채집-채집할 곤충이라면 모기나 파리 정도?
가족신문 만들기-평소에 NIE수업을 아이와 함게 꾸준히 해 온 부모가 아니면 참으로 머리 복잡하고 어려운 숙제다.
지금은 다 생각도 안 나는 다양하고 흥미있는 방학숙제를 다 해간다는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졌고 앞집,뒷집 모두 방학숙제가 너무 힘들다며 그게 엄마 숙제지 애들 숙제냐며 안 한다고들 했다.
난 또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개학을 하고 며칠이 지나자 앞집 순이도 뒷집 철이도 상장을 하나씩 들고 왔다는 소식이다.
엄마들이 그래도 숙제니까 종이접기로 입체액자 만들고,지점토로 화병 만들고,등등 내가 입을 딱 벌릴 정도로 훌륭한 숙제를 해 갔던 것이다.
지나치게 잘 해온 숙제보다는 볼품없어도 아이가 혼자 한 것에 상을 줘야 하는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우리 하나는 무능력한 엄마를 만나 상을 못 받았다.
내가 어릴 땐 방학 숙제에 수집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당시 물자가 귀해서 모으는 것을 좋아했을까?
우표는 물론 과자 봉지도 모아 보고,이쁜 언니들이 있는 잡지책도 싹뚝싹뚝 잘라내어 무조건 모아 붙였었는데 난 알록달록 이쁜 헝겊에 마음이 끌렸었다.
그래서 해마다 그 헝겊 수집이란 방학숙제를 해 갔었고 혹 그 항목이 없어도 무턱대고 숙제로 제출했다.
그게 그 만큼 재미있었다.
수집은 했으나 어떻게 정리를 해서 숙제로 내는지 알지 못했던 나는 처음엔 그저 이쁜 천을 네모나게 오려서 스케치북에 붙였었다.
그 때만해도 동네마다 한복집이나 양장점이 있었고 그 곳에 가서 헝겊 쪼가리 남은것을 달라하면 두 말않고들 주셨었다.
제법 많은 양을 모아서인지 상도 받았다.
다음 해에도 그걸 했는데 이번에 좀 더 정성을 들여 종이를 동그랗게 오리고 그 뒤에 헝겊을 붙여 보기에도 이쁘고 정리 된 헝겊 수집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게 참 할수록 재미있었다.
그래서 자꾸 연구를 하게 되고 관심을 갖다 보니 한복집에서 얻은 천과 양장점에서 얻은 천이 다른 느낌이라는것을 알게 되고 이번엔 두가지로 분류를 해서 또 이쁘게 꾸미고 한복감,양복감 이름도 쓰고,여름용 천과 겨울용 천으로 따로 붙여 보기도 했다.
물론 구멍도 원이 아닌 하트 모양,별 모양등 온갖 유치찬란한 방법을 동원해 열심히 했다.
학년이 높아지자 제법 머릿속 생각도 자라 헝겊의 종류가 아주 많다는것을 알게 돼 면,모,견,나일론등으로 또 분류하고 고학년이 되어서는 어렴풋하게 능직,수자직,평직등 직조에 따라 실의 얽힌 모양이 다르다는것도 알게 되어 짜임으로도 분류를 해 보고......
그게 정확한지 아닌지는 다음 문제이고 나는 그저 그 숙제에 취해서 하고 또 했던것이다.
해마다 같은 숙제를 냈는데 한번도 같은 내용은 없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내가 기특할 따름이다.
그래서 종종 하나에게도 그 이야기를 들려 주며 혼자 해 보라고 하면서도 차라리 내가 해 줄까?하는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아 어느 해 방학에 우리 하나에게도 상을 안겨 주리라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겼다.
마침 회사일도 바쁘지 않고 상혁이도 제법 자라 한결 고무된 시작이었다.
내친김에 미니어쳐까지 만들어줄까 하다가 다음 방학을 대비해 비장의 무기로 남겨놓고 일단락을 짓고는 손꼽아 개학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기도 썼고 독후감도 그림까지 그려서 썼고 박물관 다녀 온 티켓이랑 전철표까지 신중하게 붙여서 현장학습보고서도 준비하고 나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숙제를 했는데 개학을 하고 봄방학을 하고 학년이 바뀌고 하는 동안 상은 커녕 방학숙제를 그렇게 열심히했던 엄마들도 이번엔 별 관심을 안 갖는 것이었다.
아~! 난 그 때서야 알았다.
여름 방학 숙제만 상을 준다는 사실을.
그러고 보니 학년이 바뀌고 분주한 2월에 무슨 상을 주겠냐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그 이후로는 아예 방학 숙제 해주는것과 인연을 끊었다.
그런데 이번에 중학생인 하나가 생태관찰에 대한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뭘 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하다가
나에게 생태관찰로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 오고 나 역시도 언뜻 생각 나는게 없어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다가 우리집 다육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야, 다육식물 잎꽂이로 하면 되겠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없네. 그런거라면 진작에 얘길 했어야지. 이제 시작해서 뿌리나 제대로 내릴런지 모르겠다."
"ㅎㅎㅎ 엄마는...... 엄마가 맨날 네일은 네가 알아서 하라고 그러고,또 내가 이런것 좀 해 달라 그러면 짜증 낼까 봐 말을 안 하고 있었지."
"ㅎㅎㅎ그랬나?"
이참에 하나와 상혁이 숙제까지 해결했다.
같은 날에 잎꽂이를 했어도 어느 녀석은 뿌리를 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어느 녀석은 만사태평 케쎄라쎄라식이다.
어느 것이 성공을 해서 2세를 볼런지 우리 모두 흥미진진하게 지켜볼것이다.
하나에게는 이게 끝이 아니라고 했다.
만약 앞으로 3주안에 별 변화가 없어도 실망하지 말고 겨울을 기다려보자고,다육식물은 사실 여름이 휴면기이고 겨울이 성장기니까 지금부터 꾸준히 관찰하고 겨울 방학 숙제로 내라고 했다.
하나가 하는 말이 겨울 방학 숙제로 이런게 없으면 어쩌냐고 한다.
난 당연히 있을거라고 했다. 그리고 없으면 어때? 재밌잖아? 더 관찰 하다가 2학년 여름방학 숙제로 내도 되고.
ㅎㅎㅎ 예전 초등학교적 가락이 살아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