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어제 오늘 머리가 아프고 계속 토를 하는 바람에 거의 누워 지냈다.
날씨가 궂을 때면 간혹 있는 일이라 아는 병이다하면서도 몸은 역시 힘들다.
어젠 저녁 준비도 못하고 있는데 하나 아빠가 들어왔다.
남들은 다 괜찮은데 이상하게 혼자만 예민한 마누라가 귀찮기도 할텐데 오자마자 머리는 어떻느냐며 뭘 좀 먹었느냐고 묻는다.
만약에 바뀌어서 하나 아빠가 누워 있다면 난 무슨 남자가~하면서 가볍게 넘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생각으로라도 그렇게 성의 없게 무심한 내 행동을 잠시 부끄러워 했다.
그러면서 대답은 잘도 나온다. 먹고 또 토할까 봐 안 먹었다고.
저녁 생각도 없다는데 기운 없어 안 된다며 나가서 외식을 하자한다.
사실 머리 빗고 옷 갈아 입고 나갈만큼 컨디션이 좋지도 않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집에서 밥을 먹자고 했더니 옆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혁이에게 슬쩍 뭘 먹고 싶냐고 물어 본다.
상혁이는 한 참을 생각하며
"말하기가 좀 그런데,,,"하면서 운을 뗀다.
"외식하면 엄마가 아파서 힘들 것 같고,집에서 먹으면 엄마가 다 해야 하니까 또 힘들것 같고...모르겠어요."
아이고~. 살가운 우리 집 남정네들.
억지로 일어나 동네 한바퀴 돌고 시원한 냉모밀을 먹고 나니 정신은 좀 나는 듯하다.
내친 김에 안경점에 가서 안경 렌즈도 새로 하자해서 갔더니 내 몰골이 얼마나 추한지 안경점 사장님이 다 못 알아 볼 정도였다.
게다가 요즈음 부쩍 책읽기도 힘들어져 다촛점 렌즈를 맞추고 나니 이젠 내가 정말 늙는구나 싶고,우리 부부가 같이 산지도 13년이 되었는데 의외로 내가 남편에게 해 준것이 없는 것 같아 황망한 느낌이다.
남편은 똑부러지게 정확한 사람이고 난 그렇지 않아 늘 불만을 품고 살았던 세월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변변치 못한 마누라를 만나 속깨나 썩었을 동갑내기 남편이 가여워 보이기도 하면서도 아직도 그 어깨에 기대고만 싶으니 정말 난 이기적인가 봐.
하룻밤 자고 나면 좀 나으려나 했는데 여전히 오늘 아침도 두통으로 시작했다.
애들을 다 보내고 시름시름 앓는 내게 밥 세끼만 먹고 고기를 너무 안 먹어서 그렇다느니,과자라도 열심히 먹으라느니 하면서 채근을 한다.
오늘은 세무신고를 해야 하는데 맛있는 것 사 줄테니 세무서에 같이 가자고 한다.
그 소리에 언뜻 작년 일이 생각났다.
남편은 부당한 것을 보면 못 참는 성격이라 관공서에 가서 공무원들이 불친절하고 뻣뻣하게 나오면 반드시 큰소리가 나온다.
그런걸 한두번 본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가슴이 뛰어 난 마치 모르는 사람인양 멀찍이 떨어져 있고 상황은 늘 남편의 KO승.
올해에도 혹시 그런 일이 생길까 싶어 그냥 인터넷으로 하자고 얘길하고 내가 컴 앞에 앉아 에러가 나서 안 된다는 남편것과 자료가 도착하지 않은 내것을 전화로 물어가며 두 개 모두를 해 치웠다.
씩 웃으며 남편이 하는 말 "자기,내가 가서 싸울가 봐 겁나서 얼른 했지?"
"그려~. 내가 그래서 병이 난다니까..." 그러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무슨 소리에 잠이 깼다.
남편이 바깥에서 가지치기를 하는 아저씨들과 무슨 얘길 주고 받고 전지 가위를 받아 쥐고는 베란다 창밖으로 나가 가지를 치기 시작하더니 내친 김에 직접 내려가 일을 시작한 것이다.
내가 입버릇처럼 베란다 창이 울창한 나무때문에 너무 어두워 우울해진다고 할때마다,여름엔 나름 괜찮다더니 아마 자기도 그 나무가 신경쓰이긴 했나 보다.
며칠 전 관리소에 가서 가지 치기 얘길 했다 한다.
사다리타고 나무에 올라가 가지에 간신히 기대고 서서 전지를 하는 그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위험하니까 그만 내려오라는 아저씨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우리 집 앞이니 제가 좀 하면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하면서 시원스레 이발을 시켜 줬다.
남편은 내가 화초에 신경쓰는 것을 별로 달가워 하지 않았었다.
화초는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데 그런건 집에서 애들 다 키워놓고 시간 많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것이라 했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화초를 들여 놓고 가꾸고 하는 동안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어느 새 남편의 눈도 화초에 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것 같다.
어느 날에는
"오늘,허브 화분 2개를 5000원에 준다고 해서 사 올까 하다가 자기 하나로 충분하지 나까지 물들면 안될 것 같아 참았어."
스파티 필름에 흰 꽃이 핀걸 보고는 꽃인 줄도 모르고
"이거 자기가 이렇게 칠 해 놓은거야?" 하면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햇빛 좀 받으라고 실외기 위로 이사한 다육이를 보더니
"저 선인장은 비 맞으면 안 되는것 아닌가?"하면서 걱정도 한다.
그래서 오늘 가지 치기를 한 것이다.
내가 챙기는 울 집 화초를 위해서.
난 가끔가다 차 내부청소좀 해 달라는 말에도 '내차가 아니고 자기차니까 자기가 해~.'하면서 얄밉게 굴었는데...
아플 때마다 깨닫고 뉘우치고 또 실수하고... 난 이게 병이다.
모처럼 베란다 창을 활짝 열고 보니 우리 눈의 사각지대에 벌집이 하나 세들어 있었다.
아무리 쫓으려고 해도 필사적으로 날개짓을 하며 절대 제 집을 떠나지 않고 있다. 알을 낳으려는 것일까?
쫓으려고 무기를 휘두르는 사람에게 공격을 안 하는것으로 봐서 말벌은 아니것 같고,당분간은 좀더 두고 보기로 했다.
가까이서 벌집을 보니 참 잘도 만들었다.
요 녀석은 혼자 집을 지었나? 해가 져도 돌아오는 벌이 없으니 슬쓸하게 밤을 지내겠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